[도대불] 가는 봄, 붙잡을 수 없는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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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가는 봄, 붙잡을 수 없는 이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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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남편과 는개비 내리는 평화로를 달린다. 어머니가 저녁 식사 후 누워서 말씀을 나누시다가 대답이 없다는 시누이의 연락을 받고 달려갔는데,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이미 긴 이별의 여행을 시작했다. 주무시듯 고요한 모습으로 평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방안에서 늘 사용하던 이부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새벽 다섯 시에 입관이 진행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입안에 넣어드리려고 10여 년 전에 진주를 준비하였다. 장례지도사의 진행에 따라 어머니 입안에 진주와 쌀을 넣어드렸고 저승 가는 길에 노잣돈을 하시라고 다라니도 관속에 넣어드렸다.
장례식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고 어머니가 한평생을 지내셨던 집을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양지공원으로 향하였다. 100년을 넘게 살아왔던 세월을 뒤로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아버지와 나란히 안장되셨다. 어머니를 양지공원에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결혼생활 38년 동안 보아 온 어머니를 회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에 꽃가마를 타고 시집에 오셨다 한다. 삶이 어려운 시절에 칠 남매를 키우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터인데 늘 얼굴에 인상 쓰는 일을 본 적이 없다. 며느리가 하는 일을, 며느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다. 늘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진정한 나의 지지자이자 인생의 스승이시다. 이제는 어머니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생의 저편에 계시기에 그리움만 가슴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은 유독 할머니를 좋아했다. 어쩌다 우리 집에서 주무시는 날에는 한 방안에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곤 했다. 딸아이가 결혼하기 전날은 마지막으로 딸아이와 잠을 잘 수 있도록 어머니를 모셔오시라고 남편을 보냈다. 남편이랑 집에 도착하고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손녀 시집가기 전에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많이 기다렸다 하신다. “아덜이 나 태우레 오난 막 지꺼져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얼굴에는 함박웃음 가득하였다. 언젠가 우리 집에 오셔서 “손지덜이 결혼 해부 난 이제 누게 허고 자민 되느니.”라고 하신다. “어머니 이제는 저하고 주무시면 됩니다.”라고 했더니 얼굴에 미소를 보내온다. 둘은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소곤거리다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오늘 저녁은 사뭇 시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면 음식마다 맛있다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하신다. 늘 긍정적인 마음이기에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가 식사하실 때 식탁에 마주 앉아서 어머니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드리면서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던 생전 모습이 그립다.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은 늘 그랬다. 남의 눈을 의식하기 전에 며느리로서 시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머니 마음에 내 마음이 스며들었고 내 마음속에는 어머니 따뜻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가끔은 배게 하나를 꺼내어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어머니 살아온 세월을 역사처럼 들려주시곤 하였다.
올 어버이날에는 어머니 뵈러 시댁에 갔는데 어머니가 밥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집에 가는 길에 밥을 사서 먹고 가라며 돈을 주신다. 그 돈은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어머니 마음이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도 과수원을 돌아보면서 풀을 뽑을 정도로 건강하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몸소 보여주시고 자식들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지금도 어느 별에서 어려운 이웃을, 아픈 이웃을 위해 어머니는 아낌없는 빛을 내려주시겠지.
102년 동안 정들었던 고향 산천을 두고 메밀꽃이 피는 계절에 아쉬움을 남기고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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