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오일장 풍경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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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오일장 풍경 너머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2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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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구경도 오랜만이다. 긴 입구로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우뚝 서 있어 궁금하던 차, 가까이 가보니 공영주차장이었다. 늘 주차하기 힘들어 오일장을 꺼렸는데 큰 주차장이 자리해 있고, 우연히 만난 지인한테서 이용료가 공짜라는 말을 들었다. 반가워 그 말이 사실인지 되묻자 그렇다는 말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뭔가 횡재한 기분이다. 
사람들로 복작대는 입구로 몸을 틀자 길게 열린 초입에서부터 오일장 모습이 확 다가온다. 오가는 사람들과의 어깨 부딪힘, 물건을 양손에 사 들고 오는 사람과의 나란한 보행의 불편함, 트럭 앞에 진열된 물건에 팔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듯 상자 한 면을 아무렇게나 잘라 만든 가격표가 길게 붙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필요할지 모르나 문수대로 길바닥에 진열해 놓은 검정 고무신과 운동화, 엄마 따라나선 걸음에서 제 얼굴보다 더 큰 솜사탕을 먹느라 바쁜 아이의 크게 벌린 입 안으로 고운 하늘도 따라 들어간다. 
비닐봉지에 담아 ‘오천 원’이라고 써 붙여 놓은 가격표 앞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한 보따리에 만 원, 오천 원’이라며 호객하느라 치는 손뼉 사이사이로 물건 가격이 절묘하게 튀어나온 싱싱한 목소리도 그것도 재주인 듯하다. 
초입에서 본 꽃시장은 갖가지 계절 꽃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거기다 꽃 구경하는 사람들도 제 취향대로 이 꽃 저 꽃의 향기에, 모양에, 크기에, 색깔에, 꽃이 지고 난 후 열매까지 생각하며 흥정하고 또, 산 것을 포장하느라 왁자하다. 자잘한 별 모양의 앙증맞은 꽃부터 채소 모종까지 푸른 잎을 가진 것들은 모두 모인 것 같다. 
딱히 물건을 살 요량으로 온 것이 아니라 발길 가는 데로, 마음 흐르는 데로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는데 눈에 닿는 장바닥에서 파는 모든 것들이 꿈틀거렸다. 흥정하는 모습, 뭔가를 사 들고 먹는 모습, 물건을 고르는 모습, 파는 모습 나름의 팽팽한 모습들이 모두 싱싱하다. 
양품부라는 곳에 들러 데일리 룩 하나쯤 사 볼까 뒤적이기도 하고, 인견 소재라는 속바지를 들었다 놓기도 했다. 어느 작가가 맨 스카프가 너무 예뻐 보였던 나머지 나도 매면 덩달아 예뻐질 것 같아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하나 매어 보기도 했다. 옆 잡화 코너에서는 손톱만 한 머리핀이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꽂아 보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쓸어 올리는데 아뿔싸! 염색 벗어진 곳으로 흰머리가 핀을 꽂으면 핀보다 흰머리카락이 더 강조될 같아 슬며시 놓고 나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다 고소한 냄새에 끌려 바라보는데 오호 호떡집에 불났다. 이 불더위에 호떡 맛을 보려 길게 줄 서 있는 것이다. 그 줄의 끝점 한자리에 서서 기다리는데 차례가 왔다. 호떡을 받아 들고 돈을 지불 하려는데 호떡 먹을 생각에 눈에 안 들어왔던 모습이 온통 시선을 강탈한다. 
세숫대야처럼 커다란 양푼에 호떡값으로 받은 돈을 아무렇게나 담아 넣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받아서 넣는 것도 아니고 기름이 묻어 그런지 손님이 직접 넣고 있었다. 어떤 글을 읽다 우연히 만난 글귀가 생각났다. ‘부를 얻는 데는 일정한 직업이 없고, 재물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다.’는. 
잠시 본 생경함에 역시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절대 공감하며 내 돈인 양 즐거웠다. ‘돈을 양푼에 넣다니…’ 그 모습에 취하여 늘 허기져 쩔쩔매기만 하던 스스로에 대리만족했던 시간, 즐거운 생각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기다리는 다음 순번을 위해 비켜서 줘야 했다.
먹을 때 설탕물이 녹아 줄줄거릴 것에 대비해, 센스 있게 종이컵에 넣어 준 것을 들고 걸음마다 한 입씩 베어 먹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동창과 우연히 만났다. 그도 크게 한 입 뭔가를 먹고 있었다. 서로는 마주 보며 같은 생각, 같은 모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가움보다 웃음의 자리가 더 컸다.
사람 구경도 구경이거니와 먹거리가 풍기는 냄새는 늘 오가는 사람을 유혹한다. 아까 먹은 것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붕어빵 집 빵틀 앞에 발이 머물렀다.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이 풀빵 냄새는 언제나 고소해 코를 킁킁대며 생각을 유년의 기억으로 소환한다. 어찌나 맛났던지 배곯던 유년 어느 한때는 내가 돈 많이 벌면 원 없이 풀빵을 사 먹겠노라 생각한 적도 있었지 않은가. 
장터엔 돈으로 살 수 있는 많은 것과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이들의 추억과 기억들이 좌판만큼이나 널려 있어 좋다. 그 숱하게 널려 있는 것 중 감성 하나만 건드려도 생각들은 포도처럼 송이송이 알알이 톡톡 터지며 상큼함이 배어 나와 생각들을 만진다. 그 만지작거림은 뭔가 딱히 살 것이 없다 하더라도, 부디 거기까지 가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음에도 생각은 발을 잡아끈다. 
복작대는 그곳엔 내 삶과 생각 일부도 그곳에서 복작거리고 있을 것 같은 미련들로 걸음을 유혹하고 마음을 가볍게 띄워 놓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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