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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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5)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3)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20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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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벽은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1번째 벽이다. 이 벽에는 사 열 오 단에 총 20장면의 불전도가 그려졌다. 위에서 두 번째 단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장면은 부처님 상을 목욕시키는 <욕불형상(浴佛形像), 160번째 벽화>이고, 두 번째 단의 왼쪽 끝에는 마왕이 부처님께 열반을 청하는 <청불입멸(請佛入滅), 162번째 벽화>이 그려졌다. <욕불형상>은 그 내용이 『불설관세불형상경(佛說灌洗佛形像經)』, 줄여서 『관불경』 또는 『관불형상경』이라 불리는 경전이나 이역본인 『불설마하찰두경』에 실렸는데, 모두 한역 경전 중에는 이른 시기에 속하는 3세기 후반~4세기 초인 서진(西晉) 시대에 번역된 경전이다. <청불입멸>은 5세기 후반인 남제(南齊) 때 담경(曇景)이 번역한 『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에 실렸다. 


부처님의 상을 목욕시키다(浴佛形像)

부처님께서 마하찰두천(摩訶刹頭天)의 백성들에게 고하셨다.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고 무위의 도 또한 그러하며,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도 어렵다. 내가 본래 아승기겁(阿僧祇劫) 때부터 속인의 몸으로서 여러 겁 동안 공덕을 쌓았으니, 태어날 때마다 오도에 전전하는 것을 자책하여 재물과 보배를 탐내지 않았고, 몸까지 보시해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스스로 왕의 태자가 되어 4월 8일 밤중 샛별이 솟을 무렵에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걸으며 오른손을 들고 말하되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홀로 고귀하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케 하리라.’라고 하였다. 내가 태어날 때 땅이 크게 흔들렸고, 사천왕, 범천과 제석천이 열두 종류의 향을 넣은 물을 가지고 와서 나의 몸을 씻겼다. 후에 태자가 깨달음을 이루어 많은 사람을 제도하였다.”
이어 다시 말씀하셨다.
“4월 8일에 태어난 까닭은 그때가 봄과 여름의 끝과 시작의 때로 재앙과 죄업이 모두 제거되고, 만물이 두루 생성되었으나 아직 독기가 움직이지 않을 때이며, 춥지도 덥지도 않고 기운이 화평할 때여서 그날에 태어난 것이다.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가 입멸한 후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며 부처의 형상을 부처가 있을 때와 같이 목욕시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세상을 제도하고자 하는 이는 무위의 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고, 생사윤회 거치기를 바라지 않는 이는 용맹정진하여 무상지도를 이룰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짧은 경은 부처님이 4월 초파일이라는 날을 택하여 태어난 이유와 관불 의식의 공덕을 밝히고 있다. 4월 초파일 행사 때 스님이 탄생불의 머리에 물을 세 번 나누어 붓는 관불 의식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행사는 『보요경』 등 탄생 전후의 상황을 전하는 경전에 실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아홉 마리의 용이 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부어 부처님의 몸을 씻겼다는 내용을 근거로 일찍부터 인도에서 행해졌다. 이를 남아있는 조각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진1은 각원사에 그려진 <욕불형상> 벽화이다. 중앙에 단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탄생불을 모시고 물을 붓는 관불 의식을 표현하였다. 주변에는 의식이 행해지는 동안 절하고 합장해서 공덕을 비는 대중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진2는 석씨원류의 <욕불형상> 판화인데, 벽화와 다른 점은 탄생불이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들고 있는 점이다. 
이는 판각하는 각수가 불전의 내용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판에는 오른손을 든 형상으로 표현하였지만 판화로 찍었을 때 반대로 찍히는 현상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보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여 글씨처럼 그림도 반대로 새겼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초파일 행사 때는 지극한 마음으로 탄생불의 머리에 물을 붓는 공덕을 쌓아 보자. 

(사진1) 각원사 욕불형상 벽화
(사진1) 각원사 욕불형상 벽화
(사진2) 석씨원류 욕불형상 판화
(사진2) 석씨원류 욕불형상 판화

 

마왕이 부처님께 입멸을 청하다 (請佛入滅)

마왕 파순 파순(波旬)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전에 부처님께 열반에 들기를 권청했을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인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이 모두 구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반에 들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부대중 모두가 구족했고, 제도도 이미 마쳤으니 속히 열반에 들도록 하소서.” 이에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대답하셨다. “좋은 말이로다! 마왕 파순이여, 나는 지금부터 석 달 후에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자 파순은 자신의 요청을 부처님께서 들어주시자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천궁으로 돌아갔다. 부처님께서 마왕이 요청을 허락하고 석달 후에 열반에 든다고 하니 천룡팔부 대중들이 놀라고 두려워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부처님께서는 항상 사신족을 갖춘 사람은 능히 1겁 동안 세간에 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시고 떠나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일체의 행과 법이 모두 이같이 영원히 변치 않고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난은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는 혼란스럽고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슬피 울면서 이전에 부처님께서 보여주셨던 심증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고 자책하였다. 

석씨원류는 『마하마야경』의 위와 같이 일부 내용만 요약하였다. 사진3은 중앙에 표현된 마왕이 부처님께 입멸을 청하고 있고, 사진4는 석씨원류 판화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을 결정하시자 아난이 이전에 부처님과 함께 다니면서 하신 말씀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마음은 박인로의 다음 시를 생각게 한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그를 설워하나이다.

(사진3) 각원사 청불입멸 벽화
(사진3) 각원사 청불입멸 벽화
(사진4) 석씨원류 청불입멸 판화
(사진4) 석씨원류 청불입멸 판화

친구 이덕형이 보내준 잘 익은 홍시를 보고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부모님께 효도하려 하나 품고 가도 드실 부모님이 안 계시는 슬픔,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효의 실천을 강조한 시다. 부모님 살아계시면 후회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해드리자. 
사진5는 송나라 때 목계가 그린 여섯 개의 감 그림이다. 선종화로 선사들이 벽에 그려두고 보았던 그림인데 먹의 농담만 가지고 그린 이 그림은 박인로의 시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5) 송나라 선종화가 목계의 육시도
(사진5) 송나라 선종화가 목계의 육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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