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5) - 세상에나 이렇게 큰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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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5) - 세상에나 이렇게 큰 배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0.1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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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1월 3일 흐림

그 얼마나 맘 조렸던 지난 시간인가? 
해적을 만나 윗도리를 벗긴 채 대롱대롱 나뭇가지에 매달렸을 땐 피가 거꾸로 돌며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장선비는 그래도 지도자였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도 일행 28명을 생각하는 갸륵한 정성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가시고기 아빠 심정이랄까?

주)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구분이 없다. 강이나 호수, 연못에 사는 우렁이는 알을 낳아 새끼들이 부화하면 어미의 몸을 파먹고 자란다. 어미는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주고, 반대로 토종 민물고기 가물치는 알을 낳고 나면 눈이 멀어 먹이를 찾을 수 없는데 부화한 수 천마리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어미의 입으로 들어가 먹이가 되어 어미 가물치의 생명을 살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 부른다.
이 이야기가 모성애와 효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가시고기는 부성애를 상징하는 물고기이다. 가시고기는 새끼를 낳고 떠나 버린 어미 자리를 지키며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한참 가시고기란 소설이 유행처럼 번질 때도 있었다.
이 두 이야기는 일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를 상기시키는 장선비 맘이랄까?

장선비 꿈에 고향을 그린다.
세상사 그렇지만 죽을 때가 되면 아무리 버렸던 곳이라도 고향이란 곳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랄까? 코끼리가 그렇다.
「나는 고향에 있었다. 감나무 잎들이 조금 자랐고, 버드나무 그늘 정취도 막 무르익었다. 집 아이가 손으로 앵두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무릎 위에 놓고 감싸 안았다.」
장선비가 꿈을 깼다.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니 희미한 등불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김서일을 발로 차서 깨워 일으킨 뒤에, 꿈속의 일을 말해 주었다.

장선비 해몽(꿈의 내용을 풀어서 좋고 나쁨을 가림)해몽을 해 주었다.
“푸른 버들과 붉은 앵두는 본디 4~5월의 물건이니, 올여름에 돌아가기를 기약할 수 있다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이에 더더욱 장선비는 고향 생각이 간절하여, 몸을 뒤척이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디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장선비는 기뻐하며 사람 사는 세상에 도착한 것으로 생각했다.
김서일에게 부탁하여 다른 방에서 자는 사공 이창성을 불러오게 했다.

장선비와 김서일, 사공 이창성이 마주 앉았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배 안이 시끄러워졌다.

두건을 쓴 이가 세 사람을 보러 왔다.
장선비가 닭 울음소리가 나는 까닭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우리는 배 안에서 닭과 개를 기르고 있소. 그 때문에 소리가 들렸을 뿐이오. 사람 사는 세상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 거리가 1만 리가 되오.”
그 닭 울음소리는 배 안에서 나는 소리임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만큼 큰 배였다.

사공 이창성이 나머지 일행을 데리고 장선비 있는 방에 와서 절을 했다. 
지난번 단단히 주의를 시킨 명령에 따르며, 예의에 맞게 공손하게 나를 대접함에 기분이 좋았다.
이를 보고 큰 배에 탄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떠들고 웃었다. 
장선비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하고, 김서일을 제외한 일행 27명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흉을 보는 건지 재미있어하는 건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장선비 일행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아마 우리나라의 예의 바른 모습을 가리키며 칭찬하는 것이리라.

장선비가 글을 써서 긴 두건을 쓴 사람의 성명을 물으니 그는 임준(안남 상선의 통역자)이라 했다.
“배 위에는 변발(머리 뒷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 하지 않고 두건을 쓴 사람도 많고, 또한 머리를 깎고서 천으로 두른 사람도 많은데, 왜 모습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이오?”
그가 대답했다.
“안남은 남쪽 바다 바깥에 있고, 중국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소. 명나라가 어지러워 나라가 불안하니 명나라에서 안남으로 도망쳐 간 사람들이 아주 많소. 저 변발을 하지 않고 두건을 쓴 21명은 모두 명나라 유민들이오.”
“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있던 섬은 무엇이오?”
“유구 지방의 호산도요.”
장선비와 두건 쓴 사람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나 글은 통했다.
두건을 쓴 다른 두 사람이 글을 써서 내게 물었다.
“그대 나라는 신하를 칭하면서, 청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있소?”
장선비는 답변하기가 곤란했지만, 글을 써서 대답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왕이 계신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소. 우리는 시골서 자라나서 아직 한양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소. 무릇 조정일과 관련된 것은 모두 잘 알지 못하오.”
잠시 시간을 내 임준과 같이 온 사람의 성명을 글로 써서 물어보니 ‘호당’과 ‘진중’이라 했다.
장선비는 배의 얼개를 알고 싶었지만, 추녀와 난간이 촘촘하고 빽빽하게 겹쳐 복잡하므로 글로 설명하며 물어보기가 어려워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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