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리치에게 불경을 틀어주는 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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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리치에게 불경을 틀어주는 질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0.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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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조카의 집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리치를 만났다. 리치는 조카의 가족과 함께 사는 반려견이다. 언젠가 설을 쇠러 갔는데 리치가 있어서 조금은 당황하기도 하면서 옆에 오는 것이 불편하였다. 지금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가서 만나다 보니 리치가 어떤 품종인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의 품종은 강아지라기보다는 몸집이 크고 귀가 늘어지고 점박이가 있는 ‘달마시안’이다.
리치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이상하게 리치에게 끌리게 된다. 리치의 눈빛을 보면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부에게 “리치는 참 영리한 것 같다.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어떨까”. 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문자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컴퓨터 교육을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물감을 풀어서 자주 만지도록 하는 것도 교육의 한 방법이 아닐까. 요즘 리치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리치와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리치는 여섯 마리 중 첫째로 태어나서 조카 집에 왔다. 조카는 강아지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리치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4권의 책을 샀다고 한다. 책을 통해 강아지에 대한 습성과 양육법을 배우면서 깨달음을 얻었고 강아지를 키우는 일도 아이들을 키우는 일과 똑같다는 마음으로 리치를 대했다고 한다. 안되는 부분과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기준을 정리하여 리치에게 교육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잘 알아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리치는 덩치가 커서 처음 보는 사람은 위협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청 순둥이다. 누구를 만나든 짖지도 않고 입질을 하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좋아한다. 출근 시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하고 퇴근 시 제일 먼저 마중하며 인사하는 리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리치를 만나면 큰소리로 리치를 부르면서 친구처럼 대하고 자기 강아지처럼 리치를 주위에 자랑하곤 한다. 리치는 공을 정말 좋아해서 공을 가지고 아이들과 놀 때 가장 행복해한다. 리치의 특기는 축구수비이고 때로는 사람들과 축구도 하고 썰매도 끌어주는 루돌프 역할도 한다.
매일같이 운동과 목욕을 시키면서 마음으로 나누는 정은 말을 할 수 없는 리치도 느꼈으리라. 말은 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이어지는 그것은 리치만이 알겠지. 리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늦은 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문밖에 와서 노크를 한다. 화장실 문을 열어주면 혼자서 볼일을 보고, 먹고 싶다고 소리를 낼 때도 “앉아있어”라고 하면 바로 앉아서 기다릴 줄 안다. 
언젠가부터 리치의 다음 생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반야심경을 틀어주는 질부, 기회가 되면 불경을 들을 때의 눈빛이며 행동을 보고 싶다. 그러면서 왜 매일같이 불경을 듣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리치에게 알려주고 리치의 다음 생애를 위해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다. 리치는 불경을 들을 때는 앉아서 듣는다고 한다. 불경을 자주 듣다 보니 요즘은 불경을 들으면서 목탁 소리에 맞춰서 꼬리로 탁탁 바닥을 친다고 한다. 불경을 지속해서 많이 들으면서 부처님의 법문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리치에게 매일 불경을 듣게 해주는 질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질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에 30여 년 전 일이 떠오른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바다가 인접해 있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마당 한쪽에서 미꾸라지가 튀어 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다. 달팽이도 많고 귀뚜라미도 유독 많았던 곳 그곳에는 모기도 아주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주위에는 밭이 있고 공터에는 풀이 우거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이들이랑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가까운 길로 가기 위해 골목길을 돌아서 다니는 날이 많았다. 
골목길을 지나가노라면 풀벌레도 많았고 뱀도 앞을 가로질러서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웃집 어르신은 “뱀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가 되어 땅으로 내려왔다”라는 말을 전설처럼 들려주었다. 그래서 뱀이 보이면 “관세음보살”을 여러 번 불러주라는 어른의 말이 생각나 나는 뱀이 보일 때마다 “관세음보살” 하면서 소리를 내 불러주었다. 내 앞에 지나가는 뱀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풀밭 근처에서 만났을까. 나와 잠시 만나는 인연으로 부처님의 가피가 이루어져 언젠가 용이 되어 승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은 20대의 나의 활동무대였던 시골 풍경이 그립다. 비 온 뒤에 풍겨오는 흙냄새도 그립고 푸른 산천초목도 그립고 늦가을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노란 향기가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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