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 균형 잡힌 수행의 다섯 가지 원리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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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 균형 잡힌 수행의 다섯 가지 원리 Ⅲ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0.1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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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5월 초부터 대략 20여 회에 걸쳐 진용스님께서 (사)21세기불교포럼에서 월 1회 정기적으로 ‘37보리분법’이라는 주제로 법문하신 내용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수행자의 마음이 산란하게 될 때 집중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대상을 분명하게 볼 수 없고 수행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려서 결국 대상이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이럴 때 단지 마음의 속도를 늦추며 느긋하게 하고 ‘믿음’ ‘믿음’ ‘믿음’ 또는 ‘자신감’ ‘자신감’ ‘자신감’하며 주의 깊게 알아차리십시오. 잠시 후에 마음은 다시 안정되게 됩니다. 그러면 집중을 얻을 것입니다.

① 또한 정진의 힘과 마음 집중(삼매)의 힘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 향상되어야 합니다. 
정진의 힘만 강하고 마음 집중의 힘이 약하면 수행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할 수 없어 항상 들뜸(uddhacca : 웃닷짜)이 자리 잡습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는 너무 열성적이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데, 중반부터 집중력이 약하여 마음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은 산만해지고 들뜨는 것입니다. 
그래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힘들이지 말고 일어나는 현상을 주의 깊게 사띠(sati)하면서 정진을 조금 줄입니다. 
즉 한가지씩만 하겠다고 마음먹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점차로 마음 집중이 쉬워지고 정진도 안정되고 확고해져 강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마음 집중의 힘만 강하고 정진의 힘이 약하면 활력이 떨어져 나태와 게으름(kosajja : 꼬-삿자)에 떨어질 것입니다. 수행을 오래 하면 마음 집중이 아주 많이 강해져서 사띠하는 마음은 별 노력도 없이 대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럴 때 충분한 정진을 가하지 않으면 사띠하는 마음이 점차 둔해지고 무거워지다가 혼침이나 졸음에 떨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허리가 펴져 있질 않고 힘없이 좌선할 때 많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는 마음 집중과 정진 사이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행수행을 더 오랫동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수행자만이 정진을 능가하는 마음 집중을 경험하므로 정진과 마음 집중을 균형 있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정진의 힘을 받쳐주는 수행은 경행이며, 마음 집중의 힘을 받쳐주는 수행은 좌선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수행 지도가 있기 전까지는 좌선과 경행에 같은 시간을 분배하여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사띠의 힘은 강하면 강할수록 좋습니다. 사띠는 믿음, 정진, 지혜의 힘이 강하여 들뜸에 빠지는 것을 지켜주고, 마음 집중의 힘이 강하여 게으름에 빠지는 것 또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사띠는 모든 경우에 요구됩니다. 마음은 사띠에 의지해 있고 사띠는 여섯의 감각기관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며 사띠가 없으면 마음이 정진하는 것도, 조절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사띠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그리하여 사띠가 끊어짐 없이 지속해서 순일하게 이어지게 되면 깊은 마음 집중이 생겨납니다. 
마음 집중이 깊어질 때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자연스럽게 펼쳐지며 몸과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전 과정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띠는 위빳사나의 바탕이고 삼매의 전제라고 합니다. 항상 사띠의 힘은 지속적이고, 강하고, 한결같고 끊어짐이 없어야 합니다.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들이 강하지만 균형 잡혀있지 않으면, 수행자가 꿰뚫어 보는 지혜를 얻어 번뇌의 소멸이라는 깨달음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을 예리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몸이나 건강에 관심을 갖지 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인내심 있게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오력의 균형을 위해서는 좌선과 경행의 비율이 균등하게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 초기불전연구원의 주석

『상윳따 니까야』 제5권 「사께따 경」(S48:43)에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의 기능이 곧 믿음의 힘이고 믿음의 힘이 곧 믿음의 기능이다. 정진의 기능이 곧 정진의 힘이고 정진의 힘이 곧 정진의 기능이다, … 통찰지의 기능이 곧 통찰지의 힘이고 통찰지의 힘이 곧 통찰지의 기능이다.” 
이러한 말씀은 기능들과 힘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기능들과 힘들은 단지 다른 두 각도에서 같은 요소들을 쳐다보는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능은 통제와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고 힘은 반대되는 것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확신 등의 측면에서 보면 믿음의 기능이 되고 불신에 흔들리지 않는 측면에서 보면 믿음의 힘이 됩니다.
정진은 분발하는 측면에서 보면 정진의 기능이 되고 게으름에 흔들리지 않는 측면에서 보면 정진의 힘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확립과 사띠를 놓아버림에 흔들리지 않는 측면에서 각각 사띠의 기능과 사띠의 힘이 되고, 산란하지 않음과 산란함에 흔들리지 않는 측면에서
각각 삼매의 기능과 삼매의 힘이 됩니다. 
꿰뚫어 보는 지혜와 무명에 흔들리지 않는 측면에서 지혜의 기능과 지혜의 힘이 됩니다. 이렇게 기능과 힘을 구분하는 것이 아비담마의 정설입니다. 
요약하면, 다섯 가지 기능들은 그 각각의 영역에서 지배하는 요소들이고 힘들은 반대되는 것들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고 이들과 함께하는 법들을 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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