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불 - 아버지의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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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 - 아버지의 붓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1.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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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문예회관에서 광주 · 제주 서예 한마당 전시회가 있는 날이다. 제주 한글서예묵연회 작가와 광주무등 한글서예연구회 작가의 교류전이다. 문예회관 제1 전시관에서 개막했다. 하지만 조카의 결혼식으로 인하여 1부 행사인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저녁에 2부 행사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시를 두 편 낭송했고 이어서 작가들의 현장 휘호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서슴없이 붓으로 일필휘지(一筆揮之) 써 내려가는 것을 보고 감동이 일렁인다. 내가 어쩌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거장(巨匠)들과 함께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붓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가 사용하는 문방사우(文房四友)에 관심이 많았다. 늘 붓을 갖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자랐다. 그러다가 청소년기부터 붓글씨를 조금씩 쓰기 시작하였다. 결혼 초에 친정에 갔는데 마루 한쪽에 놓여 있는 벼루 상자를 구경하다가 그 옆에 놓여 있는 여러 자루의 붓에 관심이 생겼다. 그중에 한 자루를 아버지가 주셨다. 그때 아버지가 주신 붓 한 자루를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서재(書齋)에서 서예를 하다가도 이유 없이 그 붓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붓털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 붓은 그리움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세심하고 꼼꼼하면서도 지혜롭고 검소하셨다. 아버지는 약주(藥酒)를 하고 오시는 날에는 잠자는 아이들의 머리맡에 앉아서 시조창을 읊어주시기 일쑤였다. 그 소리에 잠을 깨고 이불속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들으며 따라 하기도 하였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 아버지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 옆에 계셨으면 궁금증이 풀렸을 터인데 아버지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을 하셨다.
지금의 내가 붓글씨에 한없이 빠졌던 것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붓글씨를 위해 어린 나는 연적(硯滴)으로 물을 옮겨서 먹을 가는 날이면 내 몸과 마음을 감싸주는 먹 향기를 선물로 받았다. 지금도 그 시절의 먹 내음은 잊을 수가 없다. 
30여 년 전 서울에 갔다가 예술의 전당 서예전시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서예를 집중적으로 시작할 즈음에 예술의 전당 전시 관람은 나에게 큰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시관에서 국전지작품을 관람하면서 관람하는 동안 신천지(新天地)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종일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머무르다 보니 묵향이 내 몸에 스며들어 몸도 마음도 정화되는 듯 마음은 고요했다. 벅찬 감동에 마음은 터질 것만 같았고 세상을 모두 얻은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돌아오는 길 비행기 안에서 서예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되었고 나도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 내 작품을 올리겠다는 큰 포부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을 하는 주부이지만 자투리 시간만 나면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작품을 출품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다른 날 보다 일찍 일어나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는가. 예술의전당에 서예작품을 올리게 되었고 붓을 놓지 않고 꾸준하게 공부하다 보니 나만의 ‘서체개발’도 하게 되었다.
우리 집 서재에는 다양한 종류의 붓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루씩 사 모으다 보니 이제는 많은 붓이 붓걸이에 걸려있다. 그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붓 한 자루가 있는데 그 붓은 아버지가 주신 붓이다. 오늘 교류전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아버지의 붓이 아른거린다. 집에 도착하고 먼저 서재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붓을 들고 쓰다듬었다. 아버지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보고 싶다.
처음 서예를 시작할 때 마음은 환갑까지만 서예를 하고 마무리하겠노라 하면서 시작했건만 환갑을 넘은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서예를 하다 보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시간이 되어 몸도 마음도 가볍다. 명상을 따로 시간 내서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중하여 종일 붓으로 글을 쓰다 보면 명상을 한 듯 홀가분하다. 이 매력에 환갑이 지나도 붓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오늘도 서예작품을 위하여 먹을 갈아본다. 연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연꽃에 대한 시를 적어 나만의 방법으로 시서화(詩書畵)를 즐기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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