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주위는 컴컴하다. 갑판 기둥에 기대어 조금 있으니 동쪽이 슬슬 밝아 온다. 해가 뜨려나 보다. 해가 뜰 무렵 동북쪽에 큰 산이 보였다. 한라산이었다. 언뜻 보면 멀지 않은 듯하지만, 한라산이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개 비가 오려면 멀리 있는 물체도 가깝게 보이는 법이다. 장선비 일행은 먼발치서 보이던 한라산이 가까워지자 기뻐서 소리 질렀다. 장선비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슬프게도 우리 부모가 저 산꼭대기에 올라 내가 오기를 애타게 고대하는구나! 슬프게도 내 아내와 자식이 저 민둥산에 올라 바라보며 애타게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구나!”
장선비가 큰소리치자 어떤 사람이 일어나 한라산을 향해 절을 하면서 큰 소리로 빌었다.
“흰 사슴을 탄 신선이시여, 나를 살려주십시오. 나를 살려주십시오! 설문대여신(할망)이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탐라 사람들로 전해오는 말로는 신선 할아버지가 흰 사슴을 타고 한라산 위에서 노닐었다고 한다. 또 전해오기를 태초에 설문대여신이 있었는데,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노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설문대여신과 흰 사슴 신선에게 살려달라고 빈 것은 다른데 하소연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장선비 또한 슬픔과 기쁨이 마음에 가득해 일이 잘못될 것을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했다.
장영주(설문대할망, 2012)에 의하면 설문대신화는 탐라(탐라국 이전)를 창조한 제주도 최초의 신화로 보았다. 장한철의 『표해록』(1771) 「초닷새 일기」를 보면 설문대신화를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해가 뜰 무렵, 큰 산이 보인다. 동북쪽에 있다. 바로 한라산이다. 보기엔 먼 것 같지 않지만, 한라산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저 하늘에 비 올 기색이 있으면 바다 위에 보이는 산도 모두 가까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표류하던 우리 일행은 문득 한라산을 가까이 눈앞에 보고는 기쁨이 지나쳐 저도 모르게 목을 놓아 호곡한다. “슬프다. 부모님이 저 산봉우리에 올라가 보셨겠지. 처자들이 저 산에 올라가 기다렸겠지.” 혹은 일어나 한라산을 보고 절하며 축원한다. “백록선자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선마선파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대저 탐라 사람에게는 세간에서 전하기를 선옹이 흰 사슴을 타고 한라산 위에서 놀았다 하고, 또한 아득한 옛날에 선마고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서 한라산에서 놀았다 한다(정병욱 옮김, 1979 : 79).」
위 인용문에 나오듯이 뱃사람들이 백록선자/선마선파(설문대여신)에게 살려 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오래전부터 제주인들은 설문대여신의 존재를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에게 전적으로 위탁하여 살려달라는 간절한 호소 장면을 보면 설문대여신은 제주도를 지켜 주는 수호신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또 전해오기를 태초에 설문대여신이 있었는데,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노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설문대여신과 흰 사슴 신선에게 살려달라고 빈 것은 다른데 하소연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나 또한 슬픔과 기쁨이 마음에 가득해 일이 잘못될 것을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했다.
우리 일행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곧장 탐라로 가는 길을 택한다면 한 끼니 먹을 때 만한 시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어느 해에나 가능할지 알 수가 없으니 곧바로 이 배에서 떠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 아내와 자식에게 무슨 죄이며, 부모는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나도 어찌 그런 마음이 없겠소? 그렇지만 그대들은 그렇게 혼줄 난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물려 상처를 입어서도 밤길을 경계하지 못하는 것이오?”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우리 일행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내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쪽 사람들이 우리가 소리 지르며 우는 것을 보고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