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1) - 부처님께서 보증하겠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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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1) - 부처님께서 보증하겠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2.0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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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비구들이여, 한 가지 법을 버려라. 
나는 그대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보증하노라. 
무엇이 한 가지 법인가?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이다.”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저는 《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의 「보증품」(It1:1∼6)을 정독하면서 이처럼 새겨들었습니다.
재가불자로서 수행을 통해 이 여섯 가지의 해로운 마음씨들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재가자의 삶이란 번뇌의 정글에서, 번뇌의 광야에서, 번뇌의 결박에서 자유롭지 때문입니다. 그 번뇌의 뿌리가 탐욕[貪, lobha], 성냄[嗔, dosa], 어리석음[痴, moha] 세 가지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의 삼독三毒입니다.

이 경에서 탐욕이라 함은 강한 열망이나 욕심에서부터 미세한 취미나 모든 종류의 탐욕을 다 포함합니다. 재가자가 지켜야 할 오계 중 불살생계를 제외한 나머지 4계를 범하는 것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입니다.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은 불만족한 느낌과 분노와 함께 일어납니다. 불만족한 정신적 느낌으로는 “낙담, 우울, 실의, 고뇌, 슬픔, 비통” 등을 예시할 수 있습니다. 「아비담마」에서는 불만족은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는 성품을 드러내고, 분노는 악의나 짜증을 나타내는 성품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불만족은 느낌의 무더기[受蘊]에, 분노는 상카라의 무더기[行蘊]에 각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성냄을 억지로 참지 않고 밖으로 여과 없이 폭발시켰을 때 속이 시원하겠으나, 결국 그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를 파멸시켜 자신과 남, 둘에게 다 독毒이 됩니다. 원치 않는 대상이나 사람과 마주칠 때 괴로운 느낌이 일어남과 동시에 거친 몸짓과 함께 거친 말을 하거나 심지어 모욕을 주기도 합니다. 짜증을 부리며 조급하게 구는 것도 분노의 표현에 속합니다. 인색함은 탐욕을 근본으로 하지만 자신의 재물이 다른 사람과 연관됨을 참지 못한다는 뜻에서 성냄에 뿌리를 두고 있고, 다른 사람의 재물과 부귀를 시기하는 질투도 성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탐욕과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은 어리석음이 근원적인 뿌리로 작용하지만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배타적으로 이 두 가지 마음은 한 찰나에 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음은 지혜가 없다는 것으로 모든 해로움의 뿌리입니다. 삼계 윤회의 근본원인이 되는 무명, 즉 어리석음은 사성제에 대한 무지로 정의됩니다. 이와 반대로 사성제에 대한 지혜(ňāna)는 팔정도의 첫 번째인 바른 견해입니다.
‘참나, 불성, 일심, 주인공, 여래장’이라는 용어를 운운 하면서 자아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가진 자는 비록 선정을 체험했다고 하더라도 무명이 다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직 유신견 혹은 취착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여 초보 단계의 도와 과를 증득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상웃따 니까야』 중, 「자만심 경」(S45:162)에서 자만은 ‘내가 뛰어나다는 자만심, ‘나와 동등하다’라는 자만심, ‘내가 더 못하다’는 자만심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태생이나 족성이나 가문의 명성이나 아름다운 용모나 재산이나 학문이나 직업 분야나 기술 분야나 지식의 영역이나 배움이나 영감이나 그 이외 이런저런 근거에 의하여 ‘내가 뛰어나다.’라는 자만을 일으키거나, ‘나와 동등하다.’라거나, ‘내가 더 못하다.’라는 열등감을 일으키는 것을 자만이라고 정의합니다.
사견邪見이 내가 존재한다는 견해라면, 자만은 ‘나’라는 존재를 어떤 식으로든 남과 비교해서 평가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사견은 세속의 오온五蘊을 ‘아트만(자아)’이라 집착하고, 자만은 이 오온만을 ‘나’라고 인식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여섯 가지의 해로운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고, 철저하게 멸진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탐욕·성냄·어리석음·분노·모욕·자만을 버린 자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불환과)를 보증하셨습니다. 불환자(anāgāmi)는 네 부류 성자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며 이 경지에 도달하면 욕계 세상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증 경」(A4:182)에서는 늙음, 병듦, 죽음, 악업의 과보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보증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난 11월 27일(음력 10. 15.)은 동안거 결제일입니다.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는 “올 삼동결제에는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공부해야 하리라”는 법어를 내리면서 오직 화두일념이 뜨거운 불무더기가 되어 만마萬魔와 천불千佛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안거수행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재가자들도 대분발심을 일으켜 수행 정진함으로써 생사윤회의 종지부를 찍는 도와 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 시에 아라한은 아니지만 예류도에서 불환과까지 증득한 재가불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간화선이 어렵다면 지관수행, 염불, 주력염송, 독경 등을 행하면 됩니다. 근기에 맞는 수행방편을 선택해서 내 안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번뇌를 끊겠다는 결의로 번뇌의 실상을 바로 보고 번뇌의 생멸을 지혜롭게 잡도리하면 됩니다. 
번뇌(āsava)란 마음의 해로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원효 성사는 ‘자아에 대한 집착[我執]을 끊고 아공을 증득하고, 현상에 대한 집착[法執]을 끊고 법공을 증득하는 것이 번뇌를 멸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 팔정도는 이미 있습니다. 이 진리에 이르는 길을 수행자가 발견하였다면, 도道의 실현을 가로 막고 있는 번뇌를 칠각지의 계발과 완성을 통해 제거하면 됩니다.
욕망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늘 새롭게 흐르는 물처럼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마음씨를 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부처님의 보증을 믿고 수행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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