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3) - ‘반야용선’ 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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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3) - ‘반야용선’ 띄워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1.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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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통도사 극락전 외벽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통도사 극락전 외벽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푸른 용의 해입니다. 용은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고 권위와 권력을 상징합니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극락보전 외벽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벽화가 있습니다. 바다의 신, 용이 용두龍頭와 용미龍尾 사이의 선복船腹에 중생들을 가득 싣고 뱃머리의 인로왕보살과 배꼬리의 지장보살의 엄호 아래 생사윤회의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가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제천 신륵사 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반야용선 벽화는 좀 다른 데가 있습니다. 승선한 이들이 대부분 스님들이라는 점에서 반야용선이 단순히 구원의 배가 아니라 지혜(반야)의 배임을 나타낸 듯합니다. 반야용선이 최종적으로 정박할 곳은 깨달음의 세계이므로 수행 없이 극락왕생을 바라는 이에게 ‘승선 불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용은 사찰에서 가장 많이 장엄되는 축생입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임에도 법당 안팎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법당의 기둥, 들보, 벽화, 천장, 닫집, 수미단 등 여러 곳에 그림 또는 조각으로 장엄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신라의 삼국통일 시기에 문무대왕이 동해의 호국용으로 환생하기를 발원한 것을 계기로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호국에 대한 염원과 극락세계로의 열망으로 전국의 사찰 공간에는 용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게 된 것이 아닐까요.  
남방불교 사원에 가면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용왕인 나가(Nāga) 무칠린다의 조각상이 눈길을 끄는데, 부처님의 몸 뒤에서 머리를 들어 올려 킹코브라처럼 목 부위를 넓게 펴서 마치 양산을 든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용은 불교에서 천룡팔부를 대표하는 신중의 하나로서 호법신으로 나타납니다. 용은 삼귀의와 오계를 받은 최초의 축생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깨달은 축생이라는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용처럼 불·법·승의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지켜야만 재가불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다 보시바라밀을 행하면 그 공덕이 무량하여 내생에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계나 인간계의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고 부처님께서 보증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말고 지혜바라밀을 행하라고 누누이 강조하셨지만 현재의 말법 시대에 그 수행 풍토가 점점 황폐화되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탈종교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베버(Max Weber)가 말하는 합리적 사고가 종교적 세계관을 대체하는 ‘세속화’ 외에도 민주화, 과학기술의 발전, 정보화 사회의 출현, 다종교사회  등의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종교학자들은 말합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제도화된) 종교로부터 멀어지거나 개종하거나, MZ세대를 중심으로 비종교인 겸 종교적 세계관을 갖지 않은 이들이 동, 서양을 막론하고 많아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이정표로서 역할을 해 온 불교가 오늘날 무기력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새해 벽두에 숙고해봅니다.

해마다 출가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종립 승가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절에서 젊은 스님들을 뵙기 어렵고 불교교양대학에서 불법을 배우겠다고 입학하는 범부중생들도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초하루 또는 보름 법회 때마다 가득 찼던 법당이 텅 빈 것이 노인불자들의 자연 감소가 주된 원인일 수도 있지만 스님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한문과 전문적인 상투어로 의례를 행하는 것도 부수적 원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승가공동체의 무소유를 오염시켜 초기불교의 계율을 등한시하거나 탁발을 통한 중생들의 교화마저 단절함으로써 출가와 재가의 양분화가 고착화되는 나쁜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은 21세기 물질문명에 따른 피로감 때문에 물질과 정신이 상호 균형을 이룬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마음의 평화가 깨지자 전통적인 기독교신앙이나 기도만으로는 ‘평화 되기’에 한계를 절감하고 종교를 초월하여 스트레스의 해소책으로 불교명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석가세존을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식들에 의해 개발, 전승된 인간의 내적 경험에 대한 통찰 명상이 비로소 정당하게 평가받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밝고 새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몸은 건강해지고,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잠시도 쉬지 못하는 마음에 적절하게 진짜 휴식을 줍니다.

불교명상이 정신의학적으로 심리치료의 보조수단이나 ‘힐링’의 수단으로 개인화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템플스테이는 명상이라는 불교 수행법이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만인에게 공유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콘텐츠입니다. 21년의 연륜을 쌓아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몸과 마음에 쉼을 제공하는 휴식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제주도를 2005년 1월 27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습니다. 평화의 법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이고, 그 평화는 지혜와 자비광명을 밝힐 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교명상은 평화운동을 잘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불교명상이 사회 밖으로 나가거나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고 사회로 돌아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라면, 제주불교가 청룡의 해에 할 일은 템플스테이 생태계 조성에 진력하는 것입니다. 
이미 씨앗은 뿌려져 있습니다. 그 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면 탈종교 시대에 절을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절 밖에서 맴돌고 있는 무종교인들까지 스스로 절을 찾아와 108 참회기도를 하면서 반야용선에 승선하기 위해 절에 머물 것입니다. 
  
자연환경이 수려한 사찰별로 전문 강백을 양성하거나 초빙하여 템플스테이 특화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jeju-culture 활용 등에 기초한 프로그램을 계발하면서 제주국제공항 등에 상설 홍보관 운영, 유튜브 홍보 등을 실천해나간다면 반야용선의 선실은 가득 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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