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4) - 팔공총림 동화사 주련柱聯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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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4) - 팔공총림 동화사 주련柱聯 이야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1.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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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至道無難(지도무난)
​唯嫌揀擇(유혐간택)
但莫憎愛(단막증애)
洞然明白(통연명백)

신심명信心銘의 첫 네 구절입니다. 신심명은 중국 선종의 3조인 승찬 대사께서 깨달음에 관한 요체를 사언절구 총 146구 584자의 게송으로 줄여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인데, 일체의 편견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서기 6C 무렵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신심명은 한·중·일 등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퇴옹 성철 큰스님을 비롯하여 충주 석종사의 혜국 선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말 해설서가 많이 나와서 1,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불법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독송하고 있는 수행의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팔공총림 동화사 법화당의 기둥에 붙어있는 주련에도 신심명의 첫 사언절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주련은 대개 5자 내지 7자씩 된 시구詩句를 나무판에 새겨서 기둥에 붙이는 것으로, 영련楹聯이라고도 합니다. 사찰의 주련은 불교문화의 고유성과 예술사적 측면에서 보면 어느 국보나 보물 못지않게 문화·교육적 가치가 높습니다. 신심명의 일관된 가르침은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양변兩邊에 치우치는 증애심憎愛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덕숭총림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봉정사 극락전 등을 제외한 전국 명산대찰의 대웅전과 법당 등에는 주련으로 장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한자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한글세대, 영상문화에 익숙한 젊은 층은 해독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 서체도 예서, 해서, 행서 등 다양하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글을 읽기도 어렵고, 뜻 파악이 어려워 주련이 갖는 불법 메시지는 쓸모가 없는 듯합니다. 

새해 벽두에 승찬 대사께서 ‘揀擇(간택)·憎愛(증애)’의 네 글자에 빗대어 우리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확증·편향적 사고로 인해 무명의 바다에 빠진 사회지도층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선택과 버림은 끊어지지 않고 상속되고 있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의식주를 구하거나 친구를 사귀거나 직장을 선택하거나 종교를 믿거나 정치적 의사표현을 함에 있어서 ‘간택揀擇을 해야만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간택에서 ‘간揀’이란 아닌 것을 가려내서 버리는 것이고, ‘택擇’이란 옳은 것이나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의 ‘​唯嫌揀擇’의 참뜻은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마음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TV조선의 퓨전 사극 ‘간택’(여인들의 전쟁)의 줄거리는 왕세자비 간택을 놓고 벌어지는 온갖 음모와 사건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처럼 간택은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배척하는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아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이 그것입니다. 
아상을 갖고 있으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단선적으로 결정해버립니다. 건전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일상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자기애, 아만, 사견에 기초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부정적 측면은 우리사회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로남불’이 자기에 속한 조직이나 정당에 적용된 것이 이른바 ‘진영논리’입니다. 진영논리는 확증편향과 결합해서 부정적 시너지 효과를 낳는데 이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고 ‘악마 화’하는 전체주의적 언어로 귀결됩니다. 여의도 정치판이 이와 같아서 우리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지진이 난 듯 요동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서로 다른 것이고 진리의 문제가 아님에도 진보는 보수를 ‘친일파’, 보수는 진보를 ‘빨갱이’라고 서로 비난합니다. 이는 신심명에서 마음 쉬라고 강조하는 ‘憎愛’(밉다 곱다 구별하는 차별심)입니다. 
증애심이라는 말에는 이 세상 모든 상대성과 모든 갈등이 다 들어 있습니다. 
파스칼(Pascal, B.)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어리석은 범부중생들에게 일어난 한 생각은 대부분 증애심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의 마음을 내야만 단막증애의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불교적 안목에서 볼 때, ‘내로남불’이나 가짜뉴스는 모두 사견邪見입니다. 영零을 수만 번 곱해도 영은 영일 수밖에 없듯이 오온五蘊이 공空인 이 몸뚱이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도 등은 모두 공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범부중생들은 취함과 버림을 반복하고 마치 그것을 자기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롭습니다. 마음에 든다 하여 선택해도 잠깐이고 무상한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공한 줄 깨달으면, 그 공의 세계에서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므로 간택할 필요가 없고 간택할 실체도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두고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몸뚱이는 형성된 것이고, 조건 지어진 것입니다. 우주법계 역시 인과법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원인과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언제나 서로 의존할 뿐, 실체가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없으니 현재가 없고, 가고 옴이 없으니 가고 오는 주체도 없습니다. 
나와 나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분별망상을 만들어내고, 무명과 갈애에 추동되어 확증 편향적 사고를 양산하고 우리사회를 쪼개고 찢어내고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은 정치를 지목합니다. “진영정치는 증오의 정치를 낳고 있다”면서 극단의 유튜브 방송 등은 그 확증편향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엄동설한에 팔공총림 동화사 법화당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기는 오로지 엄마를 볼 뿐, 자기 엄마가 예쁜지, 미운지를 식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엄마라는 사실만이 관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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