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위빳사나 수행에서의 삼매의 개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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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위빳사나 수행에서의 삼매의 개발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1.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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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진용스님께서 (사)21세기불교포럼에서 월 2회 정기적으로 ‘37보리분법’이라는 주제로 법문하신 내용으로 50여 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마음의 안정에는 사마타 수행이 효과적입니다. 사마타 수행으로 선정을 경험한 바 있다면 좋습니다. 제1선정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장애[五蓋]는 수면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위빳사나 실천이 가능하게 됩니다. 
사마타 수행의 경험이 없는 위빳사나 수행자도 곤란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빳사나 실천 속에도 사마타 수행의 특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빳사나 실천만으로도 사마타 수행을 병행해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사마디(삼매)는 8종류(아비담의 분류에서는 9종류)입니다. 어떤 사마디에 도달하든 반드시 두 가지의 단계를 밟습니다.
① upacāra-samādhi(우빠짜-라 사마-디, 近行定)
사마디 수행을 하면 마음이 사마디에 완전하게 닮은 상태에 도달합니다.
② appanā-samādhi(압빠나- 사마-디, 安止定)
마음이 사마디 상태에 도달합니다. 

upacāra(近行)라는 말은 ‘닮아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upa는 ‘근처에서 어슬렁어슬렁’이라는 의미이고, cāra는 ‘걷고 있다’라는 의미이므로 우빠짜-라는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다’가 됩니다. 가운데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upacāra-samādhi(近行定)은 사마디(선정)에 거의 근접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마디는 아닙니다. upacāra-samādhi는 욕계의 마음이 다듬어진 상태입니다. 보통의 마음이지만 다듬어져 있습니다. 사마디 상태와 같이 안정되어 있는 마음을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욕계심입니다. 사마디의 근처를 걷고 있는 상태입니다. 
appanā-samādhi는 진짜 사마디를 얻은 마음입니다. 중국에서는 安止定(안지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마디에 들어서 안정되게 그곳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수행하면 근행정은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모두가 거의 만족해서 멈추어 버립니다. ‘이제 마음은 청정해졌다. 좀처럼 성나지 않는다. 좀처럼 욕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온갖 대상을 보아도 안정되어 있다’라며, 수행으로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면 안심해버립니다.
그러나 진짜 사마디의 체험이 없으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아직 타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사마디를 이 두 종류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행정으로 만족하고 ‘아! 이제 됐다’라고 하면서 앞을 내다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디라는 특별한, 욕구의 차원을 부수고 위로 비상하는, 경험 없이 단지 납득이 간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지정은 인식의 패턴으로 ‘부셨다’라고 마음의 무엇인가가 끊깁니다. 그 무엇인가가 끊긴 상태, 무엇인가를 부순 상태, 더 이상 되돌아가지 않는 상태를 체험해야 합니다. 사람은 장시간 욕구가 없는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으나 특별히 수행이나 명상을 하고 있으면 청정한 마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셨다’라는 상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껍질을 부수고 뛰쳐나온 상태가 생기지 않았다면, 그것이 생길 때까지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사마디를 둘로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자를 위한 것입니다.

마음의 흐름을 보면 parikamma, upacāra, anuloma, gotrabhū까지의 4개는 근행정입니다. 근행정에는 많은 마음이 들어갑니다. 그 다음은 선정심禪定心이거나, 깨달음[悟]의 도심道心과 과심果心이거나, 어떤 것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를 안지정이라 합니다. 정말로 껍질을 부순 상태입니다.

근행정의 첫 번째인 parikamma란 열심히 명상을 하고 있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두루두루 잘 노력하며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편작遍作’이라고 합니다.
2번째의 upacāra란 ‘다가간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마음은 앞으로 생겨나고자 하는 선정에 다가가는, 비슷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근행’이라고 합니다.
3번째의 anuloma는 ‘거의 닮아 있다’라는 상태, 즉 거의 비슷한 상태입니다. 사마디에 찰싹 따라붙는다는 의미로 ‘수순’이라고 합니다. 

4번째의 마음도 사마디에 거의 닮아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gotrabhū라고 부릅니다. gotrabhū는 gotra와 bhū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gotra는 가족입니다. 어떤 족보라는 가계의 의미입니다. bhū는 ‘되었다’라는 의미로 ‘태어났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마음이 어떤 ‘가계家系로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gotrabhū 즉, 種姓(종성)’입니다. 어느 종족의 성姓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일까요?
‘차원을 초월한 사람들의 가계에 들어갔다’라는 의미입니다. 선정에 들기 직전의 마음에는 선정에 드는 일체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격이 갖추어지면 그 순간에 자동적으로 선정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gotrabhū의 마음이 생겨나면 다음에는 반드시 선정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①parikamma, ②upacāra, ③anuloma, ④gotrabhū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마디 수행을 해서 선정에 드는 선정의 심로(心路 : 마음의 인식과정),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깨달음에 드는 도(道)의 심로, 양쪽 모두 통하는 말입니다.

근행정(近行定 upacāra-samādhi)의 경우는 수행자가 수행 중이라면 문제가 없으나, 수행을 중단하면 그 상태도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안정합니다. 근행정에서 안지정(安止定 appanā-samādhi)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사마디입니다. 그 정신 상태는 수행을 중단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서 생활하지 않으면 수면상태가 된 번뇌가 깨어날(각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번뇌가 눈을 뜨면 사마디 상태가 깨어집니다. 그러면 재차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해탈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는 근행정이나 안지정이 필요합니다. 사마디를 닮아 있는 상태나 사마디에 도달한 상태를 왜 ‘마음을 청정하게 한 상태’라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계율·도덕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번뇌가 부단히 이빨을 드러내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계를 지키면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편히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는 활성화된 채로입니다. 단지 계율에 막혀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마음속에서는 번뇌가 휘젓고 다닙니다. 그래서 수행을 합니다. 수행을 성공하여 선정에 이릅니다. 선정에 이르렀다는 것은 활성화하고 있는 번뇌가 수면상태로 되는 것입니다. 

불교심리학에는 오개五蓋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마음이 초월상태로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5가지의 덮개를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탐貪·진瞋·치痴를 의미하지만  탐·진·치가 아니라, 오개라고 표현하는 경우에는 마음이 초월상태로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활동을 일컫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름이 아닌 택시기사, 교사, 의사 등으로 불리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어떤 직업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명보다는 직업을 일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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