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③ - 의상조사전義湘祖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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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③ - 의상조사전義湘祖師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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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속성은 김씨1)이고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다. 29세에 황복사皇福寺에서 머리를 깎고 얼마 안 있어 중국으로 유학 갈 것을 생각하더니, 마침내 원효와 함께 길을 나서 요동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 붙잡혀 수십 일 동안 갇혀 있다가 돌아왔다.2)
당나라 고종高宗 영휘永徽(650년~655년) 초에 마침 당나라로 돌아가는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당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에는 양주楊州의 장군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가 관아에 머물기를 간청하고는 아주 융숭하게 공양을 올렸다. 다시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로 가서 지엄智儼3)을 배알하고 입실入室의 허락을 얻었고 『잡화경雜華經』4)의 미묘한 뜻에 대하여 논함에 있어서 의상은 깊숙하고 미세한 부분까지도 철저히 분석하였으니, 비유하면 마치 ‘쪽에서 나온 푸른빛이 쪽의 본래 색깔보다 더 푸르다’고 한 것과 같다.
당나라 고종 함형咸亨 원년 경오(670)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의봉儀鳳 원년 병자(676)에 태백산으로 가서 임금의 교지를 받들어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했다. 종남산 지엄의 문인 현수賢首가 찬술한 『화엄경수현소華嚴經搜玄䟽』와 편지를 동봉해 보내왔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서경西京 숭복사崇福寺의 승려 법장法藏은 해동 신라국 화엄 법사님께 편지를 올리나이다. 시자侍者가 한 번 서로 이별한 뒤로 30여 년 동안 희망을 기울이는 정성이 어찌 마음에서 떠나오리까? 노을 구름[烟雲]이 만 겹이고 바다와 육지로 연해 있는 길은 천 리나 되어 이 몸이 스님을 다시 만나 뵙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그리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의상은 10개 사찰5)에서 가르침을 전하고 또 「화엄법계도」 및 『화엄약소』를 지었다. 총장總章 원년 무진(668)에 태연히 열반에 들었다. 고려 숙종이 ‘원교국사圓敎國師’라는 시호를 추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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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고승전(宋高僧傳)』 「의상대사전기」에는 박씨로 되어 있다.
2) 『삼국유사』에는 “변방 병사(戍邏)들에게 간첩으로 오인 받아 갇힌 지 수십 일 만에 간신히 석방되어 돌아왔다. 이 사실은 최치원이 지은 「의상본전(義湘本傳)」과 원효 대사의 행장에 나온다.
3) 지엄(智儼)은 당나라 때의 스님이다. 600~668. 화엄종 2조. 호는 운화(雲華) 또는 지상존자(至相尊者)이고, 속성은 조(趙)씨이며, 천수(天水)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12세에 두순(杜順)의 문하에 들어가고, 14세에 출가하였다. 법상(法常)에게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배우고, 법림(法琳)에게 가서 연구에 전력하였다. 지정(智正)에게 『화엄경』을 배우다가 별교일승(別敎一乘)의 깊은 뜻을 깨우쳤다. 지정의 뒤를 이어 종남산 지상사에 있으면서 화엄종을 드날렸기 때문에 지상 대사(至相大師)라 불린다.
4) 『잡화경(雜華經)』은 『화엄경』의 다른 이름이다.
5) 10개 사찰은 공산(公山) 미리사(美理寺)·지리산 화엄사·북악(北岳) 부석사·가야산 해인사·웅주(熊州) 보원사(普願寺)·계룡산 갑사(岬寺)·삭주(朔州) 화산사(華山寺)·금정산 범어사·비슬산(琵瑟山) 옥천사·모산(母山) 국신사(國神寺)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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