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6) - 입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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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6) - 입춘기도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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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2월 4일은 입춘입니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처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절기라 해도 아직 동장군이 물러나지 않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나흘 계속 비가 내리고 예년에 비해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입춘에 맞춰 뜰 안의 능수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능수버들처럼 아래로 축 처진 나뭇가지에 한두 송이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하더니 이제 만개하여 마치 동안거 해제 후 만행에 나선 눈 푸른 납자들의 해맑은 웃음꽃을 닮았습니다.
제주시 관덕정 목관아 앞마당에선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봄맞이 민속축제인 ‘입춘 굿 놀이’가 신명나게 행해졌고, 집집마다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복을 바라는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란 글귀를 써서 입춘첩立春帖을 붙이고 있습니다.
입춘에 삼재三災 풀이를 하는 전통문화가 오늘에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삼재는 도교에서 비롯된 관념으로 태어난 해에 따라 주기적으로 겪는 세 가지 나쁜 운수를 일컫습니다. 
예부터 ‘띠’의 변화는 입춘 날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사찰에서는 입춘기도의 방편으로 삼재 소멸 기도를 올려주고 부적에 해당하는 다라니주를 나눠줍니다. 2024년 갑진년 삼재(날 삼재) 띠는 원숭이띠, 쥐띠, 용띠입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바라는 벽사기복辟邪祈福의 마음은 모든 이들에게 현존하는 심리상태입니다. 입춘기도 후 사찰에서 처방하는 부적이야말로 현대인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케 하는 유익한 방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다라니(진언)’에는 불자의 믿음에 호응하는 불법의 위력이 담겨 있으니 시중에 나도는 보통의 부적에 비할 바 없기 때문입니다.  
입춘의 세시풍속 가운데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도 있습니다. 한 해 동안의 액厄을 면하기 위해 선행을 하되 드러내지 않고 몰래 꼭 한다는 말입니다.
‘축구경기에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나쁜 운수를 부적이나 다라니로 막아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의 삶을 살라고 대승불교는 강조합니다. 
저 역시 입춘 날에 선업善業에 대한 열의를 일으키고 소유의 번뇌 망상에 대치對治하기 위해 참회기도문을 작성하여 두 손을 모아 읊조려 봅니다. 

“헐벗은 이웃에게 재물 주어 
구난救難 공덕 하였나요.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越川 공덕 하였나요.  
부처님께 공양 드려 
염불 공덕 하였나요.
염라왕의 사자가 이미 가까이 왔는데
친척이나 친구가 무슨 도움 되오리까.
공덕만이 유일한 보호자라 하는데
이마저도 저는 쌓지 못하였나이다.”

세존께서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한다. 뭇 삶은 달리는 수레가 축에 연결되어 있듯이 행위에 매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무엇이 착한 업이고, 무엇이 나쁜 업의 기준일까요.
어느 선승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말고 중도를 지키라.”고 말했지만, “업(業, kamma)은 나의 모태이자 상속자이다.”라는 붓다의 사자후를 염두에 두면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 좋고 나쁨이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붓다는 ‘선업’이란 궁극적으로 여러 차원의 행복과 자유, 즉 욕계의 감각적 행복, 색계의 기쁨, 무색계의 정묘한 지복에 이르게 하는 모든 의도와 행위이고, ‘불선업은 불만족, 괴로움, 속박으로 이끄는 모든 의도와 행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다보니, 내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거머쥐기 위해 애쓰고 휩쓸리거나, 혹은 못마땅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상대방을 침묵시키기 위해 거친 말을 내뱉거나. 때로는 어중간한 입장에서 마음속으로는 시비를 가리고 누군가의 편을 들 때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거친 몸짓(폭력)이나(성내는) 말에 속하지 않지만 이는 몸이나 말로 저지르는 불선不善의 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명상 수행을 하면, 아주 예민한 심리상태까지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意], 말[口], 몸[身]으로 짓는 행위에 따라 자기의 성품과 습관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출가사문의 생활은 무소유의 삶이지만, 재가자의 삶이란 ‘소유’입니다. 무소유는 소유의 반대가 아니라 남과 자기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따로 ‘내 것’이 없다는 평등심을 깨우치는 것이 아닐까요.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돈과 명예와 권력 등에 대한 집착심을 버리고 자타의 평등성을 깨닫는 무소유의 출리심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보시바라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소유의 선행이 자기를 위한 복이 되고 그러한 신심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일체 중생을 위한 복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입춘기도는 그저 자신과 가족의 가피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해를 어떤 원력으로 살겠다는 다짐의 참뜻이 담겨 있습니다. 봄기운이 언 땅과 마른 나뭇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듯 우리 불자들의 입춘기도 또한 삼재팔난에 처한 모든 생명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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