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의 교학과 수행➁ - “수행이란 휘둘리지 않는 자재함을 얻어 선의 대상에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기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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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불교의 교학과 수행➁ - “수행이란 휘둘리지 않는 자재함을 얻어 선의 대상에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기 위한 것”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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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입문한 불교초심자들은 불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해탈과 열반의 길로 이끌었을까? 제주불교는 석가모니 제세시의 가르침을 이어온 인도 나란다불교, 그리고 나란다에서 넘어온 티벳불교의 전모를 살펴보고자 티벳교학의 체계를 소개한다. 이 원고는 조계종 사회부 주최 '2023해외불교세미나'에서도 발표되었다. / 편집부

오부론 수학의 의의
지난 호에서 겔룩파의 교학교육을 살펴보았지만, 티벳의 다른 종파인 닝마파와 까규파, 싸꺄파에서 채택하는 텍스트는 겔룩파에서 이뤄지는 오부론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티벳 교학 교육의 요체를 오부론의 수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티벳에서는 통상적으로 오부론을 다섯 가지에 비유한다. 불교 논리학인 인명은 교법을 지켜주는 울타리이고, 아비달마는 교법을 빛내주는 장엄이며, 반야는 교법의 기둥이고, 중관은 교법의 심장이며, 율부는 교법의 공덕을 얻는 곳간과 같다고 한다.
또 오부론을 계·정·혜 삼학에 배대하면 인명과 중관, 그리고 아비달마는 혜학에 속하며 반야는 정학, 율부는 계학에 속하므로 오부론을 공부하면 자연스레 사택수(思擇修, dpyod sgom), 즉 관(觀, 위빠사나)수행과 안주수(安住修, 'jog sgom), 즉 지(止, 사마타)수행을 하여 지관(止觀)을 성취하고 삼학을 모두 실천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사상(lta ba)과 실천(spyod pa), 수행(sgom pa)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오부론의 수학을 설명하기도 한다.
대승의 견해 또는 사상은 중관과 인명을 통해 설명되고, 대승의 실천은 반야부를 통해 설명되며, 소승의 사상과 실천은 아비달마를 통해 설명되고, 대·소승 공통적 실천은 율부를 통해 설명된다. 대·소승의 수행은 사상과 실천의 내용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오부론을 배우면 대·소승의 사상과 실천, 수행을 종합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티벳의 논사들은 이 오부론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학할 것을 강조하며 나란다 불교를 계승한다는 전통적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스승들의 경험적 조언에 따라 오부론의 배움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티벳대장경은 산스크리트어에서 곧바로 역경을 하여 한자대장경에 비해서 원문을 이해하기가 용이하다
티벳대장경은 산스크리트어에서 곧바로 역경을 하여 한자대장경에 비해서 원문을 이해하기가 용이하다

 

티벳 승가의 규모와 생활, 그리고 학제
승가교육을 받는 학인의 규모는 1959년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다. 티벳 본토에서 승가교육을 받던 대중의 규모는 일반적으로 대풍사원 7천7백, 세라사원 5천5백, 간댄 3천3백 명으로 알려져 있다. 달라이라마가 망명하면서 모든 승가교육의 중심이었던 대사원의 강백과 학인들도 대거 인도로 망명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현재에 남인도 까르나따까(Karnataka) 주에 대사원이 건립되었다. 문드곳(Mundgod)에는 대풍사원과 간댄사원이 건립되어 각각 5천5백 명과 3천명의 학인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벨라꾸뻬(Bylakuppe)의 세라사원에는 4천2백 명, 따쉬훈뽀 사원은 5백 명 정도의 학인들이 공부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현재 남인도에 승가대중의 수는 겔룩파의 대사원에서만 1만 3천명 이상의 학인들과 벨라꾸뻬에 있는 닝마의 유명한 승가대학인 남될링의 5천명, 훈수르(Hunsur)의 규메 밀교 사원까지 포함해 그 수가 2만 명에 육박한다. 현재 인도에서의 승가교육은 남인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티벳 본토에서 각 종파의 대표적 사원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던 닝마, 까규, 쌰까파도 망명하면서 학제를 크게 쇄신하여 북인도 쫀뜨라(Chauntra) 지역의 종싸르(Dzongsar) 쎄다(shedra 강원), 데라 둔(Dehra Dun)의 싸꺄college, 까규 college 등 다양한 지역에서 승가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티벳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망명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인도로부터 전승받은 정신적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망명지에 사원을 건립하여 승가교육에 힘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천 명이 넘는 대규모의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학인들의 일상은 종파와 사원에 따라서 조금씩 상이하지만 독경과 논강, 대론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을 보낸다는 점에서는 거의 동일하다. 댄싸에서는 대부분 6시에 기상하여 경전을 암기하고 7시에 아침식사를 한 후 9시까지 독경과 간경을 반복한다. 이후 9시부터 11시 30분까지는 ‘최라(법의 울타리)’라고 불리는 대론장에 가서 열띤 논쟁을 벌여야 한다. 11시 반에 점심을 먹으면 오후 1시 반까지는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때 각자 부족한 것을 공부하거나 암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오후 1시 반부터 5시까지는 경전 강의를 듣는다.
오후 5시에 저녁을 먹은 후에 7시까지 저녁에 있을 대론을 준비하기 위해 독경과 간경을 반복한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기도하는 시간이며 그 후 9시부터 11시까지는 대론을 위한 시간이다. 여기까지가 학인의 공식적인 하루 일과이다. 매일 이러한 일과를 보내지만 때로는 설날과 같은 명절이나 석가탄신일과 같은 불교적 명절과 안거 해제일과 같은 날에는 휴식기를 갖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을 반복하며 기초과정 2~3년, 반야부 7년, 중관 3년, 구사 2년, 율장 2년 해서 총 17~18년간 공부를 하면 모든 기본과정을 마치게 된다. 

대론을 통한 열띤 논쟁은 의문을 해소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습득하는 도구가 된다 .
대론을 통한 열띤 논쟁은 의문을 해소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습득하는 도구가 된다 .

기본적인 교육과정이 끝난 뒤에는 교육자가 되는 과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 시험과정을 ‘겔룩 귝뙤(dge lugs rgyugs sprod)’라고 한다. 이 과정은 오부론에 관해 2년마다 세 단계의 시험을 치르게 되며 6년간의 시험에 합격을 하면 교학에 박식하여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로서 ‘하람 게쎄(lha rams་dge bshes+박사)’라는 칭호를 부여 받게 된다. 이러한 시험의 기회는 경론에 박식한 모든 승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조건과 제한 때문에 티벳 본토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시험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망명 이후 게쎄 합격증이 일종의 학위처럼 타인에게 인정받는 증서로 여겨져 이 과정을 선호하는 승려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경제적 여건까지 갖춘 학인들은 대부분 이 시험에 응시하기 때문에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수의 게쎼들이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쎄가 된 이후에는 규메사원이나 규뙤사원과 같은 밀교 사원에 가서 마지막으로 1년간 밀교를 공부해야 한다. 그와 같이 밀교 과정까지 모두 마쳐야만 비로소 실질적인 과정이 모두 끝나게 된다.
겔룩파의 교학전통은 앞서 소개한 오부론을 모두 배우는 데에 기본적으로 17년에서 18년 정도가 소요되며 그 외 종파의 교학 교육도 9년에서 10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 때문에 다른 불교전통에 비해 교학을 수학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행의 과정에서 배움을 중요시하는 전통은 교학의 배움과 수행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관점 때문이다. 티벳불교가 말하는 교학의 배움과 수행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티벳불교에서 수행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티벳불교에서 수행의 의미
수행의 차제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을 교시하는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에서 수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수행이라는 뜻의 티벳어 곰(sgom)은 ‘닦다’, ‘단련하다’, ‘익숙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 ‘sgom pa’가 명사화된 것인데 그는 『광론』에서 곰(sgom)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행(곰, sgom)’이라는 이 유명한 말은 선(善)의 대상에 반복하여 마음을 기울이고 함양하는 것이다. 무시 이래로 내가 마음에 휘둘리었고 마음을 내가 휘두르지 못하였으며 마음도 번뇌와 같은 장애들을 뒤따름으로 인해 모든 잘못과 허물이 생겨났다. 수행이란 이러한 마음에 (휘둘리지 않는) 자재함을 얻어 선의 대상에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기 위한 것이다.

티벳불교에서는 이러한 쫑카빠의 말씀처럼 수행의 의미와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수행은 선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서 내적 품성을 함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대상으로 하여 어떻게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해야 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따라서 교학의 구체적 배움 없이는 무엇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이란 궁극적 결과가 도출된다고 할 때 어떠한 과정을 거친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것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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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님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4대 달라이라마의 한국어 공식 통역사로 활동했다. 티베트 강원에서 전통 교육을 받고 달라이라마는 물론 까르마빠17세 등 유명 린포체들을 곁에서 지켜봤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불교학부에 출강 중이며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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