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7) - 도시로 들어가 설법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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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7) - 도시로 들어가 설법 하소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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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비구들이여, 나는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역시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유행을 떠나라. 둘이서 같은 길로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법을 설하라. …(중략)… 눈에 먼지가 적게 들어간 중생들이 있다. 법을 듣지 않으면 그들은 파멸할 것이다. 그러나 법을 들으면 그들은 법에 대해 구경의 지혜를 가지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우루웰라에 있는 세나니가마(장군촌)로 법을 설하러 갈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전도傳道 선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세존의 말씀인데, 그 원문은 『상윳따 니까야』의 「마라의 올가미 경」(S4:5)에 실려 있습니다.
『율장』에 따르면. 세존께서 바라나시(Bārānasi)의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첫 번째 안거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바라나시는 부처님 당시 인도 중원의 16국 가운데 하나였던 까시(Kāsi)의 수도였고 지금도 힌두교의 대표적 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이시빠따나는 부처님의 초전법륜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고 현재의 사르나트(Sārnath)로 바라나시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입니다. 
바라나시의 좋은 가문 출신인 ‘아사’의 출가를 시작으로 그의 절친한 친구인 ‘위말라’, ‘수바후’, ‘뿐냐지’, ‘가왕빠띠’ 등을 포함한 바라나시의 청년들 50명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초전법륜지인 녹야원에서 첫 번째의 우기 동안에 60명의 비구가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참으로 경이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강 무적의 담마(dhamma, 법) 군단, 즉 승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60명의 아라한들을 세상 속으로 내보내면서 “사자처럼 당당하게 진리(법)를 선포하고, 사슴처럼 온화하게 움직이며, 진리가 모든 것을 이기나니, 법으로 세상을 정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60명의 비구들을 각기 인연 있는 마을과 도시로 보내고 자신은 우루웰라 마을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6년간 머물며 고행을 했던 ‘아란야’(고요한 숲속)입니다. 

그 당시 우루웰라 마을에는 깟사빠(가섭) 3형제라는 브라만이 베다(Veda)를 읽고 불을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며, 불의 신 아그니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주력呪力을 갖고 있었고, 마가다국과 그 동쪽에 인접한 앙가 국의 백성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으며 10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배화拜火 교도들입니다.   
세존께서는 세나니가마(장군촌)에 있는 장남 우루웰라 깟사빠의 처소로 가셔서 화광삼매에 들어 배화교도들이 섬기는 독룡의 불꽃을 제압함으로써 가섭 삼형제와 그 제자들 1000명을 교화하여 비구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마가다 국의 가장 큰 교단이 부처님께 귀의했다는 미증유의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 시에 불교는 평등했습니다. 수드라(노예계급)과 불가촉천민을 차별하지 않고 어떤 카스트도 배척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받아들이고 대접하며 그들의 내면에 타오른 탐·진·치 삼독심의 불꽃을 꺼버리도록 교화시켰습니다.
불교는 힌두교의 이론적 · 사상적 토대를 이루는 철학적 문헌의 집성체인 「우빠니샤드」처럼 비의적秘義的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불교는 초창기에 마을과 도시와 상인들의 상로商路 주변에서 퍼져나가면서 먼지와 때에 찌든 어리석은 사람들이 승가의 전도 선언을 듣고 불법승 삼보에 귀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2월 24일(음력 1월 15일)은 동안거 해제일입니다. 선방에서 3개월 동안 수행의 비[雨]로 목욕을 한 눈 푸른 납자들이 선방에서 나와 대중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진리의 혓바닥에서 불을 뿜어 세상의 어둠을 불살라야 할 때입니다.
오늘날 출가사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전법입니다. 사성제의 진리, 법을 전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위해 길을 떠나라고 독촉하면서 당신께서도 몸소 전도의 길에 나섰습니다.
성도 후 45년간 중생 제도를 위해 맨발로 길에서 길로 유행하며 단 하루도 편안히 쉬지 않고 법을 전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걸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붓다 로드’를 본받아 다함께 전법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불교는 법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입니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에도 스스로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물리라고 하셨고, 45년간 사부대중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하셨으며, 반열반의 마지막 순간에도 법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고 유훈을 하셨습니다.

다수의 불교학자들은 현재를 말법末法시대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탈종교 현상이 가속화되고, 2050년대에 들어서면 박물관 불교가 된다고 예언하는 종교학자들도 있습니다.
해마다 출가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종립 승가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절에서 젊은 스님들을 뵙기 어렵고 불교교양대학에서 불법을 배우겠다는 학생 수도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이정표로서 역할을 해 온 불교가 오늘날 무기력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딱 한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전법의 힘이 부족한 탓으로 여겨집니다. 

원효 대사는 파계 후 머리를 깎지 않고 속세의 옷을 입으며 스스로를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며 저자거리로 들어가 낮은 민중, 중생들과 함께하는 대중 교화를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삼국유사> 중, ‘원효불기元曉不羈’에는 “무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일컫게 하였으니 원효의 교화는 참으로 커다란 것이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화두참선을 통해 ‘부처되기’를 하였다면, 시방 세계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부처로 살기’가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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