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선거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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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 선거와 불교
  • 안종국 편집국장
  • 승인 2024.02.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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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철인이 통치하는 철인정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론’에서, 지혜로운 철학자들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그 철학자란 민중을 이해하고 공익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며 그로 인해 사회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권력에 무관심하고 이성과 지혜로운 설득력을 지닌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에게 수행자나 종교인의 청정함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가치중심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왕조시대에는 군왕의 자질과 덕목이 중요한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민주주의 시대이다. 대의제라는 제도를 통해 시스템에 의한 권력의 윤리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대의제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천부적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권력을 대신 행사하여 사회의 공공선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헌신하는 계층이다. 즉 특권이 아니라 공정성과 봉사정신이 기반이라는 뜻이다. 
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정치에 갈채를 보내는 국민은 별로 없어보인다. 형식은 발전된 모습을 가졌을지 몰라도 정치인들의 의식은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거를 한 달 여 앞두고 있는 지금도 새로운 정당이나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에 따라 위성정당을 만드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또 이해타산에 따라 당을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정객들도 정치권을 맴돌고 있다. 정치란 본디 성인이 아니면 도둑놈이 하는 짓이라는 것도 이젠 지쳐서 말하기도 싫을 지경이라고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권력은 봉사와 헌신의 자리가 되어야 함이 당연하다”고 하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취급을 당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금도를 넘었다. 국민들은 옥석을 가리기가 더욱 어렵고 정치인을 끝없는 탐욕을 갈구하는 포식자들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총선을 앞둔 불교계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종교의 미덕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 정치발전에 동참해야 하는가. 
찬반이 갈리겠지만, 그래도 불교계가 이번 총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맑은 정치 없이는 사회 어느 분야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종교도 정치와 결코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맑은 정치를 요구하는 국민의 욕구가 청정참구를 갈구하는 불자들의 염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불자들은 정치에 대해서 불교적 가르침에 뿌리를 두어야 하고 해결방법도 불교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치윤리나 지도자상에 대한 불교적 기준 제시와 함께 불자들이 공업의식을 갖도록 힘도 기울여야 한다. 무소유 정신과 불살생·불투도의 지계정신과 같은 소중한 불교적 가치들을 현실정치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테러와 양분된 진영논리로 갈등과 과격함이 도를 넘고 있다. 불교계는 이에 양극단보다 중도적 방법을 견지하면서 이번 총선을 맑고 도덕적인 인물들이 있어야 하고 또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구현해보자. 그래서 불자로서 종교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한 몫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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