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26) - 배는 부서지고
상태바
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26) - 배는 부서지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21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71년 1월 6일 바람

장선비 일행은 무시무시한 광경(뱃사람 두 명이 강풍에 바다로 날려가는 모습)에 모두 배 한가운데 누워 팔을 걸고 떨어지지 않으려 단단히 붙어 있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아무리 외쳐도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뱃사람들을 구하려고 오는 이는 없었다. 아니, 주변엔 지나가는 배는 없었고 사람 살려 달라는 소리는 비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음이다.
갑자기 배 널판이 쪼개지는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 정도로 크게 났다. 이에 장선비 일행은 모두 실성해 애절하게 외쳐댔다. “배가 부서졌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아우성은 곧 장선비의 혼과 넋을 빼앗는 듯하더니 이내 뱃사람들과 어울려 형님! 동생! 아저씨! 조카! 를 불러 댔다. 배에는 이런 인간관계에 있는 사람이 더러 있었기에 죽음 앞에서 가족 친척을 부르며 애원하는 게 어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김서일이 숨넘어가듯이 다급한 소리로 비몽사몽인 장선비를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바다에서 떠돌 외로운 혼, 저들은 그나마 친척 가족의 연이 있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 위로 하지만 자네와 난 아무도 없는 홀홀 단신이니 이제 죽어 혼백이라도 자네와 의지하면 좋겠네.” 김서일의 말에 장선비 눈을 멀뚱거리며 심신은 이미 저세상이오, 오장 육부가 뒤틀어져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장선비와 김서일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밧줄을 당겨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죽어서도 같이 죽을 것을 다짐하며, 혼이나마 떨어져 있지 못하게 함이었으니 오직 천운에 맡겨진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지나도 배는 침몰하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강풍이 잦아들며, 장선비 일행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선비는 밧줄을 풀고 급히 사람들을 불러 물었다. “배 안에 물이 들어온 정도가 얼마나 되나요?” 그러나 아직은 혼이 덜 풀렸는지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여러 번 소리쳐도 응답이 없었고, 한참 후에 어느 사람이 대답했다. “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장선비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배가 완전히 파손되지 않았군요.” “아직 우리는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에 뱃사람들은 통곡을 멈추고 되물었다. “진짜입니까? 정말로 진짜입니까?” 장선비는 서로를 살펴보며 말했다. “배 널판은 반쯤 깨졌지만,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습니다.” 장선비는 일행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뱃전이 깨지고 부서졌지만, 다행히도 배 밑바닥은 깨져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를 살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고 겁먹지 말고, 부지런히 물을 퍼내는 일을 하십시오!” 장선비는 조금 안심한 듯한 뱃사람들을 보며 기운을 내기 위해 약간의 거짓을 덧붙였다. “해시(밤 9시~11시)에 살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뱃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모두 명령대로 일했다.
이때 비바람이 다시 어디서 불었는지 배는 요동치며 험하고 큰 파도가 산만큼 높아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파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절망적으로 회귀하고, 도저히 살길이 없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나마 뱃사람 김칠백이 조금 정신이 있고 매우 놀라지 않고 있었기에 장선비는 명령하여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자세히 살피도록 했다. 그러자 김칠백이 홀연히 뭔가를 보며 실성하여 슬프게 소리 내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나 죽어요!” 이를 본 뱃사람들도 다시 일제히 소리 내 울었다. 장선비가 놀라 일어나서 살펴보니, 바위섬 비슷한 것이 험악하게 삐죽 솟아 있었다. 배는 험하게 생긴 바위섬을 향해 빠르게 들어가고 있었다. 바위섬에 부딪혀 배가 파손될 형세였다. 
장선비가 김서일에게 말했다. “그대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으므로, 정신 바짝 차리게! 암초에 부딪혀 배가 부서지는 순간, 배에서 뛰어내려 헤엄쳐서 살길을 찾도록 하게.” “나는 헤엄칠 줄 모르니 죽는다고 결심이 섰네.” “알겠는가? 자네만이라도 살아 우리 영혼을 인도해 주게.” 옆에서 울던 김칠백이 끼어들며 말했다. “이것은 모서리입니다. 사면이 가파른 바위이고 암벽이 깎인 듯합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이럴 즈음에 배는 이미 험한 바위섬 입구로 들어섰다. 파도가 치는 대로 오르내리면서, 조금 나아가고 조금 물러나고 했다. 형세가 곧 바위섬에 부서지게 생겼다. 
갑자기 바람이 거꾸로 불었다. 배는 물결을 타고 1리쯤 뒤로 물러나니 바위섬에 부딪히지 않았다. 배는 바람을 타고 표류하면서 소안도를 지나 대모도와 소모도 사이를 지났다. 약 20리를 가자 또 한 바위섬이 있었다. 배의 항해가 매번 위험했지만, 한결같이 모서리에서 벗어났다. 이와 같은 곳이 네 군데나 있었으나 부서질 걱정을 면한 것은 다행스러움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