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 東師列傳 ④ 자장법사전慈藏法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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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 東師列傳 ④ 자장법사전慈藏法師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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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법사 진영
자장법사 진영

스님의 속성은 김씨이다. 신라 진골 출신으로서 소판(蘇判)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없자 천부(千部) 관세음보살 앞에 나아가 자식을 낳게 해 주면 속가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法)의 바다에 나루가 되게 하겠다고 기도를 하였다. 어머니가 별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으며, 석가세존이 오신 날과 같은 4월 초파일에 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선종(善宗)이라 했는데, 그는 일찍 부모를 잃고 논밭을 희사하여 영광사(寧光寺, 『삼국유사』에는 원영사(元寧)으로 되어 있다.)를 짓고 출가했다.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10년, 신라 선덕여왕 인평(仁平) 3년 병신(636)에 당나라로 들어가 종남산 운제사(雲際寺)의 원향(圓香) 선사를 알현했다. 원향 선사가 말하였다.
“너희 나라는 날마다 전쟁이 심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다고 하니, 탑을 세우고 사찰을 지어 산수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진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장 스님은 청량산(淸凉山) 문수보살의 소상(塑像) 앞에 가서 정성껏 예배를 드린 후 꿈속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게송을 받았는데, 그 게송은 이러했다.

일체의 법을 깨달아 알면
자성에는 아무것도 
존재하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법의 성품을 이해하면
곧바로 노사나 부처님을 뵈리라

또 가사 1령(領), 그리고 사리 100매(枚)와 부처님의 머리뼈와 손가락뼈(指節)·구슬(珠)·보배(金)·나뭇잎에 쓴 패엽경 등을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 나라 영취서산(靈鷲栖山) 아래에 독룡이 살고 있는 못이 있으니, 거기에 금강단(金剛壇)을 쌓아서 그 용을 편안하게 해 주어라. 그리하면 부처님의 법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천룡(天龍)이 옹호해 줄 것이다.”
자장이 배를 타고 신라로 돌아오는데 용왕이 예배하며 말하였다.
“본국 황룡사에서 부처님 법을 옹호하고 있는 용은 저의 아들입니다. 나라 남쪽 강 언덕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워 주시면 제가 동해 용왕과 함께 날마다 세 번씩 가서 탑을 돌고 부처님의 법을 듣고 부처님을 옹호하겠습니다.”
대사가 귀국하여 임금을 배알하고 그간의 일을 아뢰자 왕은 스님을 국통(國統)에 임명하여 황룡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워 부처님을 봉안했으며, 월정사·태화사·대둔사를 차례로 건립했다.
축서산 아래에 독한 용신이 살고 있는 못으로 가서 법을 설하여 용을 조복받고 그 못을 메우고는 거기에 단을 쌓고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그 절의 이름을 통도사라고 하였다. 이는 곧 불가의 종가인 셈이다.

통훈대부 행사헌부 지평 유해(柳堦)가 지은 「비슬산용연사여래사리비(毘瑟山龍淵寺如來舍利碑)」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신라 스님 자장이 서쪽 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올 때 사리 약간 과를 받들고 와서 양주 통도사에 간직해 두었던 것이 무릇 두 상자였는데 각 함마다 각각 2과씩 들어 있었다.
만력 임진년(1592) 난리에 왜적이 탑을 훼손하고 사리를 꺼냈는데, 송운(松雲) 대사 유정(惟政)이 격문을 보내 화복(禍福)의 형상으로 깨우쳐 주니 왜적이 두려워하면서 그냥 돌아갔다. 송운 대사가 함을 받들고 금강산으로 가서 서산 대사 휴정(休靜)에게 여쭈었다. 마침내 그 상자는 문인 선화(禪和) 등에게 주어 태백산 보현사(普賢寺)에 봉안하게 하고 또 한 함은 송운 대사에게 주어 통도사에 돌아가 탑을 개수하여 봉안하게 하였으니 대개 그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때 영남에 새롭게 병란이 일어나자 대중들은 모두 새나 쥐처럼 흩어져 숨어 버렸으므로 공사를 일으킬 겨를이 없었다. 송운 대사가 어명을 받고 일본에 갈 일이 생겼는데, 송운은 (통도사에 봉안하려고 했던 사리를) 받들어 원불(願佛)을 삼았다. 얼마 있다가 돌아온 송운은 그 함을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 두도록 했는데, 그의 제자 청진(淸振)이 비슬산 용연사(龍淵寺)에 옮겨 봉안하였다. 그 후에 대중들이 탑을 만들어 보관하였다가 1과는 통도사에 돌아가 봉안하고, 1과는 남겨 용연사 북쪽 기슭에 봉안하였다.
통도사에 처음 봉안한 지 940년이 되었으며, 왜적들이 꺼냈다가 그들이 다시 돌려준 지 또 80여 년이 되었는데, 통도사의 옛탑과 비슬산 용연사에 나뉘어 봉안되어 그대로 지내 오고 있다. 명(銘)은 이러하다.

비슬산은 울창하고
낙동강은 넘실대는데
우뚝 서 있는 저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간직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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