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의 교학과 수행➂ “인도와 티벳 불교의 수행은 문聞, 사思, 수修 골조가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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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불교의 교학과 수행➂ “인도와 티벳 불교의 수행은 문聞, 사思, 수修 골조가 전통”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2.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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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입문한 불교초심자들은 불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해탈과 열반의 길로 이끌었을까? 제주불교는 석가모니 제세시의 가르침을 이어온 인도 나란다불교, 그리고 나란다에서 넘어온 티벳불교의 전모를 살펴보고자 티벳교학의 체계를 소개한다. 이 원고는 조계종 사회부 주최 '2023해외불교세미나'에서도 발표되었다. / 편집부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

문(聞) · 사(思) · 수(修) 전통이란?
인도 나란다의 수행 전통은 문(聞), 사(思), 수(修)의 세 가지 큰 골조를 가진다. 나란다 불교를 계승한 티벳 불교도 같은 방식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문·사·수의 세 가지 단계가 가지를 의미를 살펴보자. 이에 대해 쫑카빠는 『광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행할 내용을 먼저 타인으로부터 듣고 배워[聞], 즉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 배운 바를 스스로 경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여법하게 사유[思]하여 자신의 힘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배움과 사유[聞思]를 통해 알아가고 점차 의심이 끊어지면 그것에 반복적으로 습을 들이는 것을 '닦음[修]'이라 한다.

쫑카빠의 설명대로 첫 번째 단계인 문(聞)은 청문을 통한 배움을 의미하며 폭넓은 지식을 함양하여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법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단계이다. 다음 단계인 사(思)는 배움과 앎을 기반으로 사유를 통해 지성을 훈련하며 자신의 앎을 체화하는 과정이다. 고도의 지성을 통한 치밀한 분석과 통찰은 모든 의심을 끊고 확신을 갖게 한다. 마지막 단계 수(修)는 닦음의 과정으로 앞서 모든 의심과 의문을 해소하여 확신에 이르게 된 바를 반복적으로 닦아 완전히 습을 들이는 과정이다. 이러한 일련을 과정을 거쳤을 때 마지막으로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좀 더 알기 쉽게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이러한 구조에서 첫 번째 문(聞)은 모든 수행의 기본 바탕이 된다. 따라서 배움의 과정 없이 그 다음 단계의 사(思)와 수(修)로 나아가는 것은 이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티벳불교가 교학을 통한 배움과 수행을 무관한 것으로 보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본질적으로 배움의 연장선상에 사유와 반복적 수습이 이루어져야 하는 구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재 안에서는 전통적으로 문·사·수 가운데 첫 번째 ‘聞’의 단계로써 문에 속하는 교학을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그 전통적 명맥이 티베트 교학 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와 단계를 이해하더라도 그처럼 오랫동안 교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광론』에서 다음과 같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들음[聞]이 많아지면 들음에서 생기는 지혜[聞慧]가 많아지고, 문혜가 많을수록 사유[思]가 많아지며, 사유가 많을수록 사유에서 생긴 지혜[思慧]가 많아진다. 이 사혜가 많을수록 닦음[修]이 많아지고, 닦음이 많으면 허물을 차단하고 공덕을 이루는 방편이 많아지는 까닭에 수행에서 문사의 중요함을 경론에서 거듭 말씀하신 것이다.

상기의 내용대로라면 들어서 배우는 것이 많아지면 그것에서 생기는 지혜인 문혜가 많아지며, 문혜가 많으면 깊고 다양한 사유를 하게 된다. 그처럼 다문(多聞)과 풍부한 사유는 그에 상응하는 문혜와 사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사혜는 다양한 닦음[修習]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많은 허물을 정화하고 공덕을 이루게 되어 수행의 결과를 얻게 만든다. 이처럼 문·사·수는 인과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풍부한 교학의 배움은 풍부하고 다양한 수행력을 갖추게 하므로 오랜 기간 깊이 있는 교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점의 변화를 통한 수행의 시작
한편으로 티벳불교는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는 변곡점은 바른 앎을 통해 끊임없는 사유와 체득의 과정 속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한 변화는 세공장인이 금과 은을 제련하여 원하는 장신구를 만드는 것에 비유한다. 이것을 『광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컨대 세공장인(匠人)이 금과 은을 반복 하여 불에 넣고 반복해서 정제수에 담그면 때와 불순물이 모두 없어져 서 세공 가능한 부드러운 상태가 되며 그런 후에야 귀걸이를 비롯해 원하는 장신구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먼저 근본번뇌와 수번뇌(隨煩惱) 그리고 죄행들에 대한 악업의 과보와 윤회의 고통 등을 사유할 때 관찰지로써 그러한 해악을 거듭 사유함으로써 온 마음이 윤회에 대해 고뇌하거나 싫어하는 생각[作意]이 생긴다. 이러한 생각은 마치 금을 불에 태우듯 마음을 나쁜 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허물을 정화하는 것이다. 또 한 선지식의 공덕과 가만의 가치, 삼보의 공덕 그리고 선업의 과보와 보리심의 공덕 등을 사유할 때처럼 관찰지로 그 공덕을 거듭 사유함으로써 마음이 유연해지고 맑아지는 작의가 일어난다. 이러한 작의가 금을 정제수로 씻듯이 마음을 선한 쪽으로 향하게 하고 좋아하게 하므로 이러한 선법들이 마음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학의 배움을 통해 악업의 과보와 윤회의 고통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사유하면 윤회를 싫어하는 염리심이 일어나게 된다. 행복을 추구하고 애착하던 윤회의 세계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한 내적 변화는 배움을 통한 바른 앎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사유 속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사유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부정적인 요소들을 잠재우고 일체 현상을 직시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수긍과 포용을 일으켜 내면의 평화와 마음의 유연함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한 변화는 결국 본격적인 수행으로 이어져 좋은 결과를 성취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신심을 닦고 사무량심(捨無量心)과 보리심을 수행하거나 무상함을 관하고 고통을 관하는 수행 또한 교학의 배움과 사유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티벳불교는 교학의 배움은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참된 수행을 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티벳불교의 수행은 선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훈습하는 것
티벳불교가 인도불교의 전형을 그대로 간직한 정통 불교라는 것은 티벳의 승가교육 제도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티벳의 4대종파의 교육과 특히 겔룩파의 승가교육은 인명, 반야, 중관, 아비달마, 율을 주제로 한 인도나란다대학의 오부론을 계승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정리하면 인명은 진나와 법칭의 저술을 배우고 반야는 미륵과 사자현의 저술을, 중관은 용수와 월칭의 저술을, 아비달마는 세친, 율은 덕광의 저술을 배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근본 교전과 주교재는 모두 나란다 논사들이 저술이다. 이것으로 인도 나란다불교의 전통이 승가교육 안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티벳의 승가교육은 최소 10년에서 겔룩파처럼 최대 17~18년까지 교학을 배우는 학제이다. 그처럼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교학과 수행의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고 보는 관점에서 기인한다. 티벳불교는 선의 대상을 반복적으로 훈습하는 것을 수행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교학의 배움 없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반복적으로 훈습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그것을 알지 못하면 원하는 수행의 결과를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성을 수행할 때 공성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반복적인 훈습을 통한 지혜가 일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뿐만아니라 교학과 수행의 연관성은 문·사·수의 세 가지 단계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데 그 세 가지의 인과적 관계를 알면 교학의 배움의 연장선상에서 수행이 가능하며 원하는 깨달음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알게 된다. 다시 말해 교학과 수행은 불가분의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겔룩파의 종조 쫑카빠는 교학과 수행의 긴밀한 연관성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배우고 사유한 내용과는 별개의 것을 수행하게 되거나 부처님의 교설을 배워도 수행에 적용하지 못하거나 교설 밖에서 따로 법을 구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고 개탄하였다.
또 교학의 배움을 시작으로 깊은 사유가 가능해지며 사유를 통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한 내적 변화는 마음에 자리 잡은 부정적 요소를 없애고 일체 현상에 대한 수긍과 포용을 일으켜 내적 평화와 마음의 유연함을 가져오게 한다. 결국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고 참된 수행을 하기 위해 교학의 배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티벳 승가교육제도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티벳불교도들은 천 년 이상 체계적인 탄탄한 교학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뛰어난 수행자와 성취자를 배출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많은 선지식과 뛰어난 스승들, 풍요로운 배움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티벳의 승가 교육제도는 티벳불교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고 현재 망명하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인도로부터 전승받은 정신적 유산을 지키기 위해, 불교의 미래를 위해 망명지에 사원을 건립하여 승가교육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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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님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4대 달라이라마의 한국어 공식 통역사로 활동했다. 티베트 강원에서 전통 교육을 받고 달라이라마는 물론 까르마빠17세 등 유명 린포체들을 곁에서 지켜봤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불교학부에 출강 중이며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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