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27) - 옷이 저절로 벗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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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27) - 옷이 저절로 벗겨지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0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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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1년 1월 6일 바람

밤빛이 칠흑같이 어둡고 풍파가 더욱 험해졌다. 배는 바람 따라 흘러가며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장선비가 해시에 가히 살길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 후부터 일행은 왜 그 시간이 안 됐는지 자주 물었다.
“추측하건대 시간이 이미 해시에 이르렀을 터인데 어떻게 살아날 길이 있을 것인가?”
이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해시에 들지 않았다오.”
또 다른 이는 부정적으로 말했다.
“점을 친 얘기를 어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서로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육지 상인 김칠백이 갑자기 놀라 일행에게 알렸다.
“저기 희미하게 큰 산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 사는 세계가 아니겠소?”
장선비는 놀라고 기뻐서 머리를 들어 바라보았다.
비바람에 깜깜한 밤하늘에 희미하게 큰 산이 보였다. 그러나 어느 지방인지 알 수 없었다.
“점을 친 결과가 이미 이와 같았고 사람 사는 세상이 또 저기에 있습니다. 해시에 살길이 있다는 게 어찌 영험한 점복(점괘에 나타난 복)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사람들은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연히 들어맞았음을 알지 못하고서 다만 점을 친 이치가 어긋나지 않았다고만 굳게 믿고 있었다.
별안간 배가 산 가까이 다가가며 나아가거나 물러가거나, 오르거나 내리거나 하였다.
성난 파도가 해안을 때리는 것을 보았는데, 집채처럼 큰 은빛 물보라가 허공을 뒤집었다.
이에 장선비 일행이 만에 하나일지언정 살아날 궁리를 하며, 해안 쪽을 향하여 모두 배의 동쪽 가장자리로 몰려 있었다. 그러자 배가 갑자기 동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뒤집힐 조짐이 있었다.
장선비는 혼자 배의 서쪽 가장자리에 앉아 급히 김서일을 불렀다. 그러나 김서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행이 자신만 살아나려고 여겼던 것은 모두가 자맥질하여 헤엄치는 재주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선비는 자맥질도 모르고 헤엄칠 줄을 모르기에 목숨은 이미 귀신에게 맡겨 놓은 셈이기에 각자 자기만 살아날 궁리만 한 것이다. 김서일 또한 내가 여러 번 불렀지만 응답하지 않은 이유이다.
장선비는 넋이 나가고 눈에 별이 보이며 어지러웠다. 희미하게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앞 다투어 배에서 바닷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얕은 물을 걸어서 건너는 모습도 보였다. 
‘해안이 가까워서 물이 얕으므로 사람들은 걸어서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장선비는 이런 생각을 하며 만약 배가 도로 뒤로 물러가 버린다면 해안가에 도착할 수 없으므로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에 대비하여, 급히 물이 얕을 때 건너야겠다고 판단하였다. 장선비는 배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배의 동쪽 가장자리로 기어가서 엉겁결에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곳이 바위섬의 들머리였기 때문에 바닷물이 허리로부터 가슴 정도까지밖에 차지 않았다. 장선비는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손과 발을 헤젓고 비틀거리면서 50여 걸음을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윽고 해안가로 나오게 되었고 땅을 밟아 오를 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산기슭의 바위 줄기가 해안가에 50여 걸음 들어간 것이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준 셈이다.
「진실로 신기하도다! 배는 파도가 치는 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면서,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뛰어내리기로 작정했을 때, 마침 우연히도 섬의 들머리에 몸이 걸렸던 것인데, 이 또한 기이하도다! 참으로 사람 목숨이 하늘에 있고 죽고 사는 것에 운명이 있음을 알겠다.」
장선비는 구사일생으로 육지에 올라 해안에 의지하여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혼미해져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놀라고 두려운 가운데, 사방을 둘러보니 적막하고 사람 자취가 전혀 없었다. 사나운 물결이 해안을 때리고 천둥소리를 몰고 왔으며 큰 파도가 허공으로 솟아 물보라가 눈 덮인 산을 뒤집어 놓을 뿐이었다. 
이윽고 어떤 사람이 헤엄치는 것이 언뜻 보였다 안 보였다 하더니 파도 사이에서 나왔다. 그 사람은 웃통이 벗겨져 있고 머리가 풀려 있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개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다보면 파도에 치이고 쓸려 옷이 저절로 벗겨지고 머리가 저절로 헤쳐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겨우 해안으로 올라왔다. 곧이어 쓰러져 눕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으면 대개 넋을 잃고 기운이 빠지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금 있자 일행이 물결 사이로 나오는 것이 혹 앞서기도 하고 혹 뒤서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가히 필사적으로 겨우 살아나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릇 자맥질하고 헤엄치는 사람은 능히 물에서 2~3리를 갈 수 있다지만 오늘 불과 50여 걸음 사이에서 겨우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파도가 거세게 끌어당겨 헤엄치는 힘으로도 능히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음을 이겨낸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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