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8) - 봄을 찾다(尋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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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8) - 봄을 찾다(尋春)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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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朧頭雲 (망혜편답롱두운)
歸來偶過梅花下 (귀래우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이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는 고려 말 나옹선사(1320∼1376)의 오도송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어떤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이라고 전해지는 ‘탐춘探春’이라는 시도 뜻은 같지만, 3행은 “歸來笑拈梅花臭(돌아와 웃으며 매화가지 집어 향기 맡으니)”으로 표현돼 있다는 점에서 나옹선사가 원元나라 유학 중에 니승尼僧의 오도송을 개작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시가詩歌로 탐춘과 심춘은 모두 뜻이 같으나 화자話者의 씀씀이에 따라서 뉘앙스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른 ‘계절의 봄’을 찾는다고 할 경우에는 탐춘이라고 하여 찾을 探자를 쓰기도 하고, 또 ‘마음의 봄’을 찾는다고 할 경우에는 심춘이라 하여 생각할 尋자를 사용합니다. 그리운 임을 찾거나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순우리말로 ‘봄보름’이라고 말합니다. 

계절은 어느새 춘삼월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매화는 이미 낙화한 지 며칠 됐고, 출리산방의 백목련은 비바람 눈보라 다 이겨내고 우아하게 봉우리를 내밀어 학처럼 고고한 자태로 당당하게 곧 꽃을 피울 태세입니다. 
봄을 기다리는 나목들도 따뜻한 봄날을 그리워하며 물과 양분을 빨아올려 연둣빛 새 생명의 얼굴로 화장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볕을 쐬러 나올 것입니다. 성미가 급한 수국은 새싹을 띄우고 이미 봄을 찾아 나섰습니다.

연못가 쪽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른 봄에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곡진하고 청아합니다. 한겨울 내내 참았다가 터트리는 소리이니 절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봄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입니다. 삼일절 연휴라서 그런지 산남의 ‘카멜리아 힐’(안덕면 상창리 소재)의 동백수목원에는 봄을 찾는 동박새들의 인파로 북적거립니다.    
봄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자 꿈입니다. 산방의 남쪽 뜰엔 겨우내 나목이 되어버린 감나무가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탐스러운 황금색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도 돈과 명예와 권력 등을 얻기 위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봄을 찾습니다. 

봄은 행복 찾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출가수행도 행복을 위해서이고 깨달음을 얻으려 함도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지극한 도와 과를 얻어 성불하거나 열반을 하고자 함은 세속적 행복을 뛰어넘는 궁극적 행복입니다.   
어느 선승이 봄을 찾아 하루 종일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저 멀리 구름이 걸린 언덕배기와 넓은 들판에까지 돌고 돌았으나 봄은 볼 수 없었습니다. 지친 몸으로 절에 돌아와 우연히 뜰에 심어진 매화나무 밑을 지나다가 매화향기를 맡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매화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니 매화꽃이 핀 것을 보고 봄을 느끼고 그 참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머물고 있는 절집에, 이 몸뚱이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옹선사는 24세 때(1344년) 중국 원나라로 유학하고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의 가르침을 받고 14년간 중국에 머물다가 공민왕 7년에 귀국하여 고려불교의 중흥을 위해 순천 송광사에서 주석하시며 적극적인 현실 참여와 실천하는 선禪으로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출가자의 삶을 영위하셨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재가불자들이 수행의 지침으로 애송하는 청산가, 즉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는 나옹선사의 참선곡입니다.  

이른 봄 매화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향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가사문의 계향戒香·정향定香·혜향慧香은 바람을 거슬러 사방으로 퍼집니다. 지금·여기 제주의 섬에도 이 세 가지의 향을 피우는 참사람이 머물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금강스님입니다. 고불총림 백양사의 참사람 수행결사, IMF 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회, 해남 미황사의 참사람의 향기, 홍천수련원의 재가자를 위한 무문관을 열고 세상의 행복을 위하여 「붓다 프로젝트」를 실천하였고, 지난해부터 참선재단 원명선원에서 ‘참선 명상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재가불자들에게 선禪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춘의 ‘尋’자는 선정의 다섯 가지 요소(尋·伺·喜·樂·定) 가운데, 첫 번째로 빠알리 어로 vitakka(위딱까)이고, 우리말로 일으킨 생각이라 합니다. 이것은 선정의 장애가 되는 마음의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고 불태우는 역할을 합니다. 불교적 의미에서 심춘은 선정의 기쁨과 행복을 일으키고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선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정에 들면, 마음은 과거로 가거나 미래로 떠돌지 않고 지금·여기 내안의 물심 현상에 머물며 여실지견의 지혜로 이끌어 줍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내안에 있는 봄을 모르고 멀리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남방불교의 예불문이자 재가불자들이 외우는 수호경인 『숫따니빠따』의 「위대한 망갈라 경」 중의 첫 번째 게송에는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출가사문)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길상)입니다.”라는 세존의 말씀이 있습니다. 재가불자들이 마음으로 찾아야 할 봄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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