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8)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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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68) - 사천성 검각劍閣 각원사覺苑寺 석씨원류 벽화 (36)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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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원사 대웅전 서쪽의 오른쪽에서 세 번째 벽은 석씨원류 벽화가 그려진 14개의 벽 중 12번째 벽이다. 이 벽에는 사 열 오 단에 총 20장면의 불전도가 그려졌다. 맨 아랫단의 네 번째 장면은 순타(純陀)가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리는 〈순타후공(純陀後供), 170번째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부처님의 열반 전후의 상황을 적은 『대반니원경』 권1 제3품 「장자순타품(長子純陀品)」에 실려 있다. 
「장자순타품」은 부처님의 열반지인 구시나가라에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다고 하자 구시나성의 장자 순타가 오백 명의 장자와 함께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을 받아 주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자신들을 위해 설법을 간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까지 모든 이의 공양을 거절하던 부처님께서 순타의 간청을 받아들이자 대중들이 환호하며 순타를 찬탄한다.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세상에서 부처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데, 부처가 열반에 들려고 할 때 마지막 공양을 올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우담바라가 피는 것과 같으니 근심하고 괴로워 말고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생사윤회에 미혹하지 말고 지혜가 밝은 이는 당신이 열반에 드는 것을 멸도한다고 보지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순타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지 말고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기를 간청한다. 그러자 문수사리보살이 그렇게 원하면 안 되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을 보면 지혜를 갖추고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자, 순타가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문수사리보살을 타박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문수사리보살이 순타의 말에 수긍하며 오래지 않아 순타가 불도를 이룰 것이라 찬탄한다. 그때 부처님께서 입으로 광명을 놓는 것을 보고 문수사리동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가 되었으니 늦지 않게 공양을 올리라고 청해도 순타는 응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제 때가 되었다고 두 번 세 번을 말씀하시자 그때야 비로소 순타가 슬피 울며 부처님께 또다시 세상에 머물기를 애원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은 물 위의 거품처럼 무상하고 공하다고 하며 평범한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며 자신에게 베푼 보시로 복전을 이룰 것이라 한다. 이에 순타는 피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따르겠다고 하며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린 후 최후의 공양을 올렸다.
이러한 내용을 석씨원류에서는 순타와 문수사리보살과의 문답은 생략하고 순타와 부처님의 문답 장면만 간추려 요약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타가 마지막 공양을 올리다(純陀後供)         
 
구시나국(拘尸那國)에 한 장자가 있었으니 이름이 순타였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오백 명의 장자와 함께 부처님께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원하옵건데 부처님께서 저희를 애처롭게 여기시어 저희가 올리는 공양을 받아 주시옵고, 저희와 모든 중생이 해탈의 은덕을 입게 해 주시옵소서.”
이에 부처님께서 순타에게 고하셨다.
“마땅히 그대의 최후의 공양을 받아들이겠다. 순타여, 그대는 이제 근심하고 괴로워 말고 크게 환희하여야 한다. 그대는 부처가 길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기를 청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보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중생의 자성도 그와 같으니, 비록 장수할 천명을 타고난 사람도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게 된다. 일이란 이루어지면 반드시 허물어지고, 존재하는 것은 모두 멸하고 만다. 장년은 늙음으로 허물어지게 되고, 강한 사람은 병으로 인하여 고단해진다. 사람이 태어나면 모두 죽음이 있는 법인데, 이 무상한 몸이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느냐? 처자와 코끼리, 말, 돈, 재물 등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친척, 권속들도 끝내는 모두 이별하게 되고, 오직 태어나 늙어가는 고통과 병들어 죽어가는 큰 근심만 있을 뿐이다.”
이에 순타는 큰 소리로 울면서 다시 청하였다.
“원컨대 중생들을 애처롭게 여기시어 오래 세상에 머물러 주십시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순타여, 울지마라. 울어서 스스로 그대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고,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유의의 세계에서는 단단하고 알찬 것은 없다.”
이에 순타가 아뢰길,
“부처님께서 저희를 애처롭게 여기시어 세상에 머무시지 않으면 세상은 공허해지는데, 저희들이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순타여, 지금 나는 너와 모든 중생들을 애처롭게 여겨서 열반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모든 부처의 법도 그러하며, 유위의 세계에는 일체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 

석씨원류에서는 「장자순타품」의 내용을 〈순타후공〉이라는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내용을 280여 자로 압축하여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문수사리보살과의 대승법에 관한 문답은 생략하고 그 내용을 부처님과 순타의 문답에 포함시켰다. 

(사진 1) 각원사 벽화 순타후공
(사진 1) 각원사 벽화 순타후공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순타후공
(사진 2) 석씨원류 판화 순타후공

이 장면을 각원사 벽화(사진 1)와 석씨원류 판화(사진 2)에서는 소 등 위에 연화좌에 앉은 부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음식을 올리며 간청하는 순타와 주변에 다른 장자들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각원사 벽화에는 장자의 수가 여섯 명인 반면 판화에는 다섯 명인 것 외에 큰 차이는 없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구시나가라에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는 공간은 강변에 있는 사라쌍수가 있는 숲이고, 부처님께서는 눕거나 앉은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배경과 모습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길가에서 소를 탄 상태에서 순타의 무리와 만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사뭇 경전 상의 내용과는 다르다. 아마도 화가가 요약한 경전의 내용만 보고 그림으로 그리면서 전후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나타난 오류일 것이라 추정된다. 석씨원류 400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불사에는 그 내용을 검토(증명)하는 경전에 해박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단순히 오류로만 보기에는 의문이 남는다. 문뜩 석씨원류가 명나라 초기인 15세기 초에 처음 편찬된 책이기 때문에 12세기 송나라 때 곽암선사가 완성한 사찰의 외벽에 그려지는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고려해 본다. 수행자의 방황하는 심리 상태를 길 잃은 소에 비유하여 잃어버린 소를 찾듯이 해탈을 구가하는 과정과 소를 찾고 집에 와보니 소는 간 데 없고 자신만 남은 상태로 방편인 소를 잊어야 한다는 가르침, 그리고 자신마저도 잊어야 공(空)의 경지에 이르러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내용이 부처님이 순타에게 설법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부처님께서 탄 소를 깨달음의 방편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가정해본다. 
벽암선사가 둥근 원만 그린 여덟 번째 장면인 ‘소와 자기 자신 모두 잊는다’는 ‘인우구망(人牛俱妄)’에 붙인 찬을 되새겨 본다. 

채찍과 소와 사람이 모두 공하니
맑고 푸른 하늘 멀고 높아 
소식 전하기 어려워라
끓는 솥에 어찌 흰 눈이 남아 있겠는가
이에 이르러 비로소 조종(祖宗)과 
하나가 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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