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염각지(念正覺支)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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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염각지(念正覺支) 1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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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sati)는
눈·귀·코·혀·몸·마노[意]의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는 덧문

칠각지의 첫 번째는 염각지입니다. 빨리 어로 ‘sati sambojjhaṅga(사띠 삼봇장가’)라고 하고 우리말로 염정각지(念正覺支)라고 표현합니다. 반야심경에 ‘삼막삼보리(samyaksambodhi)'라는 말이 있듯이 삼봇자(sambojjha)의 의미는 이른바 정각(正覺)이라는 뜻입니다. 즉 올바르게 깨닫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깨닫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사띠(sati, 念)입니다. 염念은 빠알리어 사띠(sati)의 한역인데, 초기불전연구원을 중심으로 이 원어를 ‘마음챙김’으로 옮겨서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알아차림’으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고, 영어로는 mindfulness로 표기합니다. 사띠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일(법)만 알아차린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향하는 일 없이 현재에 머물 수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지금의 순간 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모두 “지금, 지금, 지금 …”입니다. 지금을 놓쳐버리면 인생은 헛되게 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고 있다면 ‘책을 읽고 있음’,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지금 이야기를 듣고 있음’, 차를 마시고 있다면 ‘지금 차를 마시고 있음’이라고 끊임없이 지금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거의 지금을 알아차리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걷고 있을 때 걷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습니까? 대체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제의 일이나 수개월 전에 친구라고 싸운 것, 오늘 밤 저녁은 무얼 먹을까? 내일 일정이나 아내나 남편의 일……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서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즉 지금을 알아차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식사 때는 어떨까요? 먹으면서 TV를 보고, 혹은 신문을 읽고, 혹은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하고, 혹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등등. 이런 행위들은 지금을 알아차리지 않았다는 상태입니다. 그래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어떤 기사를 읽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릅니다.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영양분이나 칼로리를 제대로 계산해서 하루에 필요한 양을 섭취했다고 해도 뇌세포는 건전하게 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신체에 들어 온 음식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알지 못하고 잘 소화 흡수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올바르게 소화 흡수하기 위해서는 뇌가 ‘무엇을 먹는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영양분이 없는 음식이라도 ‘먹음’이라고 분명하게 알고, ‘씹음, 맛봄, 삼킴…’ 등으로 잘 확인해서 먹으면, 뇌는 제대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소화 흡수도 적절히 순조롭게 행해집니다. 과식할 것도 없고, 적당량으로 자연스럽게 멈출 수가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의 일이 소홀하게 되고 현실과 멀어져 마음은 망상하기 시작합니다. 망상하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능력을 발휘 못하고 타락 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머리가 나빠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능률이 다운되고, 아름다운 사람은 추악해지고, 체력이 있는 사람은 체력이 점점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망상하면 확실히 타락하며 성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망상을 그만두기 위해서는 ‘지금을 알아차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지혜가 일어나 마음이 오염되거나 선정의 장애가 없어집니다. 지금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마음은 청정해집니다.

지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의 각지를 완전하게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 때 첫 번째의 염각지를 올바르고 충분히 실천하고 있으면 나머지의 여섯 각지는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즉 염각지 하나만을 완성시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와서 지혜가 완성한다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첫 번째의 사띠(sati)를 잘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을 알아차린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을 알아차린다고 하는 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지금의 1초만을 알아차린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의 1초뿐이라면 매우 구체적이고 단순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앉아 있다면 앉아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추우면 춥다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허리가 아프면 허리의 아픔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빨을 닦고 있을 때는 이빨을 닦고 있는 것을, 얼굴을 씻고 있을 때는 얼굴을 씻고 있는 것을, 걷고 있을 때는 걷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일로 머리를 혼란시키지 않고, 지금보다 1초전의 일에도, 1초후에도 걸리지 않고, 다만 지금의 1초, 지금의 1초, 지금의 1초만을 오로지 끊임없이 알아차리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혜가 있는 인간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능력도 자연스럽게 따라 옵니다.
반대로 과거나 미래에 걸려서 이것저것 망상만 하고 있으면 마음은 혼란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마음은 매우 까다로운 기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망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곧바로 망상이 일어납니다. 곧바로 불필요한 일을 생각해 버립니다. 특히 좌선하고 있을 때는 망상이 빙빙 돌며 골치를 썩입니다. 수행을 하고 있는지 망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끊임없이 망상이 일어납니다.
이 때 가능한 한 빨리 ‘망상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상이 일어날 때마다 재빨리 알아차리고 확인합니다. 망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빠르게 망상을 확인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만약 확인을 하지 않고 또 망상해 버려서 집중할 수 없었다, 생각에 빨려 들여가 버렸다. …”는 등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해서 낙담해 버렸다면, 그 사람은 수행에서 게으름 피우고 있던 것이 됩니다.
수행 중에 망상은 잇달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망상이 나왔을 때 망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망상이 싫다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나에게 지금 망상이 일어났다.”라고 명확하게 알아차려서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빳사나 수행은 이렇게 알아차림(sati)에서 시작됩니다. 사띠의 확립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것인가는 실천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띠를 실천해도 아직 부족하다, 아직 부족하다 하는 것은 흔히 경험하는 얘기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단지 알아차리는 일 뿐이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차리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위빳사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배가 팽창하고 수축할 때에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확인하는 것으로서 염정각지(念正覺支)의 실천을 시작합니다. 또한 단순히 걷는 것, 앉는 것, 먹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왼발을 위로 들어 올리며 들어 올림, 옮기면서 나아감, 아래로 내리면서 내려놓음, 오른 발을 위로 들어 올리며 들어 올림, 옮기면서 나아감, 아래로 내리면서 내려놓음이라고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을 알아차려 갑니다. 앉아 있으면 앉아있음, 누워 있으면 누워있음, 먹고 있으면 먹고 있음 이라고 알아차립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현재의 상태를 우선 가능한 한 관찰해 갑니다. 이것이 사띠 실천의 시작이며 첫 번째 각지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띠(念)을 정각지(正覺支)로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아차리는 작업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잡념의 공격도 받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의 집중력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래도 체념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실천을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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