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9) -법의 도시와 15분 도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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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9) -법의 도시와 15분 도시 제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2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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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항산 김승석

도시는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농어촌과 더불어 인간의 2대 거주형태이며, 사회경제적·정치적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도시화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도시화 율은 85%로 전체인구 5,170만 명 가운데 4,200만 명이 도시에 살고, 1,000만 명 정도가 읍·면에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인구 중 52%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모여 산다고 볼 때 인구 10만 명 이상의 중·대도시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고대 도시들은 왕궁 소재지인 정치 중심지로서의 도읍都邑과 상업 중심지로서의 저자(市場)의 두 가지 기능을 갖고 형성되었습니다. 
2,600여 년 전 인도의 중원에는 마가다, 앙가, 까시(와라나시), 꼬살라, 말라 등 16개의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강성했던 나라가 마가다와 꼬살라(수도 사왓티)였고, 부처님의 말년에 16개 나라는 이 두 나라로 통일이 되었고 다시 부처님의 열반 후에는 마가다가 인도를 통일하였습니다. 
마가다는 지금의 인도 비하르(Bhihar)주의 라즈기르(Rājgir)를 말합니다.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보디삿따(미래 붓다)가 출가 직후 방문한 도시이며 빔비사라 왕이 보디삿따를 발견하고 깨달음 후 방문해 주시기를 청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

현대 도시는 시간을 절약하고 여러 가지 생활 편익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교통체증을 겪으며 출퇴근하고, 쇼핑몰과 병원과 문화시설에 왕래합니다. 특히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현재의 도시는 보행보다 자동차 중심으로 계획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도시환경과 우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현대 도시는 생활 편의성을 추구하며 설계했다고 하지만 거기에 상주하는   우리에겐 쾌적한 느낌이 없습니다. 효율성만 고려한 도시계획은 거주 지역과 상·공업 등을 포함한 기타 지역을 분리시켰고, 여기에 역세권 등 접근성의 유·불리에 따른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 따라 서민들의 거주지는 도심과 멀리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도시인들은 집, 직장, 학교, 병원, 공원이 여기저기 흩어진 환경에서 수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도시정책의 화두로서, 세상에 알려진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는 프랑스 파리대학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창안하여 2020년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의 재선 공약으로 채택되면서 기후위기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캐나다의 오타와, 미국 포틀랜드, 호주 멜버른 등 세계 주요 도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5분 도시 파리의 개념은, 국토연구원이 제공한 <그림> 『내일의 도시 파리』(Le Paris de demain)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근거리 서비스에 터 잡아 도시 내 지구(혹은 동네) 주민끼리 길에서 서로 만나기가 쉽고, 함께 생활환경을 가꾸며 공동체를 말합니다.
부산광역시는 ‛집 가까이 좋은 문화, 깨끗한 환경, 이웃으로 즐겁고 행복한 부산’을 만들기 위한 15분 도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비전 가치의 3대 요소인 접근성(Accessibility), 연대성(Solidarity), 생태성(Ecology)은 파리의 15분 도시와 닮은꼴입니다.  

15분 도시는 시민 누구나 15분 이내에 보행과 자전거, 또는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여 도시의 인프라(문화, 복지, 건강, 교육, 의료시설 등)를 향유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사람 중심의 생활도시를 지향합니다.
‘15분 도시 제주’의 조성組成은 민선 8기 오영훈 도지사의 핵심공약입니다. ‘제주 형 15분 도시’의 구상은 콤팩트 시티(Compact City)의 순기능 외에 파리의 15분 도시가 추구하는 생활편익기능인 교육(Learning), 건강(Caring), 여가(Enjoying)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다 특히 돌봄 서비스의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다른 도시들에 대비하여 비교우위에 있다고 보여 집니다.

15분 도시의 구상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물적 인프라 구축에 방점이 찍혔지만, 부처님이 세운 법의 도시는 막강한 마라를 격파하고 무명에 사로잡힌 삿된 견해의 그물을 찢어버리고, 법의 횃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평화와 행복의 도시를 말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증지부) 「도시 비유 경」(A7:63)에서 세존께서는 “왕이 건설한 국경의 도시가 외부의 적들과 원수들로부터 정복당하지 아니하려면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 즉 요지부동이고 흔들리지 않는 기둥, 깊고 넓은 해자,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높고 넓은 길, 수많은 무기, 군대, 수문장, 높은 성벽 등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덧붙여, 마치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에 내부의 사람들을 잘 수호하고 외부의 적들을 격퇴하기 위하여 일곱 가지 도시의 필수품을 준비하여 저장해두듯이, “계戒는 기둥이고, 양심은 해자垓字이고, 수치심은 삼거리 또는 사거리이고, 해로운 법을 버리고 유익한 법을 개발하여 많이 배우고 호지하는 것은 수많은 무기와 군대를 갖는 것이고, 정진력은 망루이고, 법에 대한 믿음은 성벽이고, 마음챙김[正念]은 수문장이고, 통찰지는 성문 위의 누벽壘壁에 비유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원 전 2세기 후반에 서북 인도를 지배한 그리스인 메난드로스 왕(밀린다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과 인도 스님 나가세나 사이에 행해진 불교 교리에 관한 문답을 담은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밀린다 왕문경」(Milinda Paňho)입니다. 이 경(제5장)에서도 부처님이 세운 법의 도시에 대한 문답이 나오는데, 나가세나 존자는 비구들은 세존의 법의 도시에서 ‘법을 파는 사람’이라고 비유해서 말합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심에는 각 종단 등에서 운영하는 불교교양대학이 있습니다만 시설이 열악하고 또 교수진들의 역량도 부족한 듯합니다. 
오영훈 도지사는 재임 중, ‘국제명상센터’를 건립하겠다고 공약하였습니다. 교학과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멋있고 품위 있는 명상센터 두 개, 산북과 산남에 각 하나씩 건립한다면 물질적 풍요로움에 정신적 안락함을 더 보태여 ‘15분 도시, 제주’의 구상에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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