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염각지(念正覺支)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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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보리분법 -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의 로드맵- 염각지(念正覺支)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20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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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감관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마음을
사띠(알아차림)의 밧줄로 꽁꽁 묶여 두면
제각각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다가 지쳐서
앉거나 눕게 되고, 결국 길들여 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명확하게, 보다 정확하게, 보다 세밀하게 사띠를 실천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걷는 동작’을 말하면, 왼발에 마음을 집중하여 왼발을 의식합니다. 그 다음, 발을 들어 올린다고 명칭을 붙이며 듭니다. 들어 올릴 때는 들어 올리는 동작을 완전히 의식합니다. 옮김이라고 말하고 옮기는 일을 완전히 의식합니다. 내림이라고 내릴 때도 의식합니다. 그 다음에 (땅에) 디딤이라고 의식합니다. 그러고 나서 오른발이라고 명칭을 붙이고 의식을 완전히 오른발로 가지고 갑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는 신체의 각 부분에 의식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행은 흔히 수행을 몇 달간 했다는 사람이라도 이전의 방법은 먼저 잊어버리고 정해진 시간, 정해진 수행 시간을 짜서 천천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매우 엄밀히 해야 합니다. 처음 부분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여간 왼발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왼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인 것입니다. 그 밖의 것은 아무것도 몰라도 좋습니다. 머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상관없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은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느낌입니다. 왼발만을 의식하여 들어 올림, 옮김, 내려놓음 합니다. 이번에는 오른발을 명확히 의식하여 오른발에 명칭을 붙이며 오른발로 의식 에너지를 가지고 옵니다. 그렇게 해 나가는 동안에 점차 스스로 이해하게 됩니다. 속을 들여다보듯 알게 됩니다. 의식이라는 엄청난 에너지가 오른발로 가는 감각을 알기 시작합니다. 그 때 들어 올림이라고 하며 들어 올립니다. 들어 올릴 때도 완전히 의식합니다. 들어 올린다고 하는 것을 들어 올린다고 의식하고 나서 옮김이라고 의식하면서 옮기고, 내려놓음이라고 의식하면서 내리고, 내려진 것이 완전하면 디딤이라고 의식합니다.
 
이것은 힘든 일입니다. 한 쪽 발을 움직이는 동작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을 모르고 있다면 아직 집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행하기 힘들다고 느낄 만큼 이 수행법은 까다로운 것이고, 벅찬 일이라고 깨닫게 되면, 의식을 발에 확실히 매어 두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충하고 있으면 간단하다, 단순하구나라고 생각하여 그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이라는 식으로 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깨달음이 넓어지리라고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성격이 훌륭하게 바뀐다거나, 장사가 잘 된다든가, 여러 가지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든가, 신체의 건강이 좋아졌다던가, 인간관계가 좋아졌다던가 등등, 여러 가지 이익이 되는 일이 나타나지만 그러한 것은 다만 세속적인 이익이며 그런 부분을 불교에서는 그렇게 달가운 이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어버리면 그런 것은 모두 끝이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모았어도 죽을 때는 모두 이 세상에 두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은 세속적인 이익이며 세속적 이익을 뛰어 넘는 이익을 목표로 하는 경우는 꼼꼼히 매우 힘든 일을 해야만 합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근육이 힘들다는 것이 아닙니다. 근육은 그다지 힘들지 않으므로 근육을 피로하게 하는 수행은 방법 자체가 틀린 것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근육이 피로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걸을 때 발에 의식을 매어 두는 것, 그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런 식으로 왼발 오른발이라고 하며 걷는 것, 그렇게 하면 사띠를 상당히 숙달되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좌선을 할 때 평상시는 배가 불러오고 꺼지는 것만 관찰하고 있다가, 망상이 생기면 망상, 망상이라고 하며, 통증이 생기면 통증, 통증이라고 하면서 관찰합니다. 그러나 매우 짜임새 있고 상세하게 경행을 할 수 있게 된 사람이라면 좌선하고 있을 때에도 꼼꼼하고 엄밀하게 사띠로 확인하는 작업을 합니다. 앉고 나서도 일일이 다리를 포개고 한 손을 놓고 자세를 고치고 한 발을 놓는 이런 세밀한 것들이 극히 중요합니다. 사띠를 하나라도 빠트리지 말자라는 굳은 각오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앉고 나서 배가 팽창할 때도 팽창이라고 압니다. 팽창이 시작하면 팽창, 팽창, 팽창이라고 모두 알아차립니다. 끝나면 팽창이 끝난 것을 느낍니다. 팽창이 끝나면 다음의 수축, 수축, 수축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게 됩니다. 
 
우리들이 물을 가지고 어딘가로 운반하려 할 때에 물 그것만을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용기에 넣어서 가지고 가야 됩니다. 물만을 가지고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느낌으로 수행에서는 이 신체의 움직임과 사띠가 언제든지 함께 하도록 노력합니다. 특별히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훈련하기 나름으로 노력에 의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면 팽창, 수축이라는 것은 용기이며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 용기에 넣는 물이어서 그것들이 분리되면 안 되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도록, 그 정도로 조심스럽게 팽창, 팽창, 수축, 수축이라고 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처음으로 좌선 수행을 하는 사람은 졸리고, 다리가 아프고, 등이 아프고, 안절부절 해지고 등의 이유로 앉아있기 힘듭니다. 부단히 노력하여 가만히 앉아 있게끔 되고, 아무런 통증 없이 앉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더욱 신중하게 팽창과 수축이라고 하는 용기에 사띠라는 물을 넣고 있다는 느낌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가지고 갑니다.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마음은 복잡한 기능을 갖고 있어서 여러 가지 망상이 나타나거나 마음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럴 때에는 가능한 한 신속히 확인하고, 할 수 있는 한 팽창과 수축으로 돌아갑니다. 이와 같이 높은 단계는 아니더라도 보다 엄밀하게 사띠를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그것이 바로 제1단계인 염각지가 일단 성공한 것입니다. 일곱 단계로 되어 있는 칠각지의 최초의 단계인 염각지를 완성했다라고 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숙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곧이어 잡념망상이 거의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의 실천이 가능하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확인 없이는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까지, 또는 몸이 미묘하게라도 움직이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지까지 나아갑니다. 사띠의 실천이 자신과 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실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까지 알아차림의 실천이 가능하게 되면 그 실천은 칠각지의 첫 번째인 염각지의 실천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것으로써 무엇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세속의 인식은 진리의 인식이 아닙니다. 합성된 인식입니다. 실제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색깔과 모양(色形)’인데도 우리에게는 ‘사람이 보인다. 사물이 보인다. 꽃이 보인다.’ 등으로 압니다. 귀가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소리(音)’라는 파동임에도 우리에게는 ‘말이 들린다. 노래가 들린다. 새의 지저귐이 들린다.’ 등으로 압니다. 사띠에 의해서 이것을 강하게 잘라냅니다. 제멋대로의 합성을 멈추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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