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aaaaa흥룡사aa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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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aaaaa흥룡사aaaaa
  • 이병철 기자
  • 승인 2007.02.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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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룡’전설 품은 ‘용장굴’ 미륵도량

1933년 위봉사 제주도평포교소 설립인가…4·3당시 백인수 스님 희생·사찰 폐허

1952년 덕종화상 ‘흥룡사’ 개명 후 대웅전 중건…복덕행 보살 원세워 대웅보전 등 건립



   
 
   
 
지난 13일 오후 제주시 도평동에 자리한 ‘흥룡사(興龍寺·주지 지화스님)’가는 길. 오전에 그렇게 맑던 하늘이 동쪽에서부터 검은 구름을 몰고 온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바람까지 동행을 한다.

산문에 이르자 호지문(護持門) 양 측면에 사천왕이 쉬이 들어가지 말고 마음을 맑고 가지런히 가지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호지문을 나서 본 흥룡사는 가희 장엄하고 아름다워 도량 앞에 숨을 죽인다. 흥룡사는 들어가는 산문에서 봤을 때 ‘⊃’ 모양의 형세를 띄고 있는데 왼쪽은 대나무들이 즐비하고, 맞은편을 전각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2층 대웅전이 도량을 내려다보는 형세다.

주변지형보다 낮은 흥룡사 도량은 기암괴석들로 병풍을 쳐 놓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사각사각 대나무 이파리들이 부딪히며 맑은 바람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들으니 세속의 근심이 잊혀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대웅보전으로 향하길 길목에 귤나무가 서너 그루 모여있다. 이 나무는 500여년정도 수령이 된 것이라 한다. 귤보다 작은데 한의학에서 진피(陳皮)라 하여 말린 껍질을 이용해서 오래 묵을 수록 약효가 좋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126평 크기의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우 협시불로 문수·보현보살이 봉안돼 있다. 내외부의 조각과 불단위의 화려한 닫집 등은 세련미를 더해준다. 영정불단에는 빛바랜 사진이 보인다. 4·3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건립한 덕종 화상이 영정이 그윽한 눈으로 참배객을 감싸 안는다.

   
 
   
 
흥룡사의 역사는 1933년 김연선 스님이 위봉사 제주도평포교소를 설립인가를 받았다가 이후 1943년 6월 8일, 조계종 백양사 포교소로 변경 신고하게 된다. 당시 백인수 스님이 40~41년 백양사 김녕포교소에서 감원으로 활동하다가 이곳에 백양사 포교소사로 부임해 왔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는 이곳조차 빗겨가지 않았다. 1949년 1월 토벌대에 의해 백인수 스님이 총살되고 용장사는 폐허를 맞는다. 잿더미가 된 용장사 터를 다시 일으킨 것이 바로 1952년 덕종 화상이다. 이때 사명을 흥룡사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1972년 대웅전을 중건했으나 아쉽게도 스님은 세수 45세로 열반에 들게 된다. 그 후 복덕행(홍순녀·79) 보살이 불사를 계승했으나 1987년 다시 화재로 사찰이 전소되고 만다. 한동안 시름에 젖어있던 복덕행 보살은 부처님을 위한 여법한 도량 조성의 초심을 다시 상기하며 2년 뒤인 1989년 지금의 장엄한 대웅보전을 완공하기에 이른다.

   
 
   
 
흥룡사는 옛 지명으로 용장굴이라 불리며 오래전부터 영험한 기도처로 이름이 드높았다. 한라산에서 천룡이 내려와 이곳 용장굴에 몸을 감췄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또 흥룡사는 오래전부터 미륵도량이라 했으니 사찰의 역사는 오래 된 듯 하다. 아직도 흥룡사에는 동자석만한 크기의 음각으로 새긴 미륵불 3기가 모셔져 있다. 복덕행 보살의 말에 의하면 이 미륵부처 3기는 300년 전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제주의 무불시대 땅에 묻혀있던 미륵부처님을 모셨다고 한다. 미륵부처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자 이것을 시험한다고 미륵을 들어냈다가 사찰을 내려가는 도중에 벙어리가 됐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예전부터 영험한 도량임을 짐작케 한다.

흥룡사 대웅전 앞에 있는 귤나무는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올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대웅전 뒤편에는 억새밭을 이뤘고 그 앞으로 귤나무가 호지문 앞까지 귤나무밭을 이뤘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가늠케 한다.

지화스님은 흥룡사 불사계획도 밝혔다.

지화스님은 “우선 지금까지 흥룡사를 지켜온 복덕행 보살의 진정 부처님을 향한 원력을 이어나고 발전시키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라며 흥룡사의 역사인 복덕행 보살의 뜻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화스님은 대웅보전 앞에 사리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도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이 자연암석에 꾸밈없이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새겨나갈 예정이다. 경주 남산처럼 천혜의 자연경관에 노천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마애불의 은근한 미소가 살아 숨쉬고 흥룡사 만이 색다른 매력을 주는 장엄한 도량이 되길 기대해 본다.





흥룡사 주지 지화스님

“중생제도 원력 잇는 여법 불도량 만들 것”



   
 
   
 
“늪지에 목이 차오르는 곳까지 가서 카메라가 물에 닿지 않도록 고정합니다. 그 곳에서 좋은 그림이 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 역경을 딛고 한 컷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수없는 수행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이뤄진 듯 싶으면 어느새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초심 때는 하나를 알고 느꼈다면 세월이 흘러 무르익어 갈수록 그 섬세함에 차이를 느끼게 된답니다. 추사가 ‘명선(茗禪)’이라며 차를 마시는 것은 자기 수양이라 했듯 예술은 또 다른 수행의 방편인 셈이죠. 이처럼 수행과 예술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지난 2004년 주지로 부임한 지화스님은 사진, 대금, 서예, 범패 등 그야말로 천성적으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듯 하다.

특히 스님은 오는 3월 17일부터 22일까지 도문예회관 제1전시실에서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의 사계’란 주제로 사진 전시회를 갖는다.

대구사광회 사진클럽에서 활동해온 스님은 오늘에 이르러 사진을 통해 사바세계에 설법을 설하는 것이다. 수행자가 말하는 연꽃은 이런 모습이라고 말이다.

“흔히 일반인들은 연꽃의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만 찍으려고 합니다.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인고의 진정 아름다움은 배제 한 채 말입니다. 연꽃을 보면 생노병사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모든 인생처럼 말입니다.”

이번 사진전에는 법화사 연꽃, 애월읍 하가리 연꽃 등 제주 도내 연지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연꽃 사진의 집합체다.

물 위에 시든 연, 잔잔한 수면에 비친 그 모습 위로 해가 뜨고 달이 뜬다. 수행자가 찾은 또 다른 연꽃의 매력은 뭘까. 이번 전시회에서 그 감동을 느껴보는 기회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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