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에 남은 중ㄱ구 성지순례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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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에 남은 중ㄱ구 성지순례기<下>
  • 김상식(불탑사 신도)
  • 승인 2007.07.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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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산·오아시스 공존하는 천년 ‘불교 성지’



   
 
   
 
돈황의 세계적 불교 유적지 막고굴에 이어 실크로드의 주요 관문이었던 양관과 돈황 남쪽에 자리한 명사산 또한 놓칠 수 없는 곳으로 독특한 사막 환경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양관은 옥문관과 함께 한무제가 서방으로부터 수비를 위해 성벽을 쌓은 서쪽 끝 변방의 중요 군사기지였는데 당나라 때 국경으로서, 돈황이 중국에서 서역으로 가는 경유지가 되면서 서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검문하는(출입국수속을 하는) 관문이 되었다.

우리가 간 양관은 실크로드의 남쪽 관문으로 이곳을 나서면 작은 오아시스 국가들이 이어지고 본격적인 실크로드의 아득한 사막길이 시작된다. 아!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상인들이 꿈을 안고 목숨 건 기약 없는 이 길을 떠나갔으리라. 지금은 박물관과 당나라 때 모습을 재현한 병영과 막사, 높이5m의 봉화대 잔해만 사막을 지키고 있다.

명사산(鳴沙山),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모래산. 옛날 명사산 아래 두나라가 전쟁을 벌였는데 어디선가 모래 바람이 불어 두 군대를 모두 파묻어 버렸다고 한다. 그 뒤 우는 소리가 났다는 씁쓸한 전설이 있지만 바람에 날리는 모래 소리가 마치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혀졌다고 한다.

낙타를 타고 명사산을 향하는데 마치 실크로드를 가는 대상이 된 듯 하다. 모래결이 희고 가는 정도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심한 모래바람으로 겨우 눈을 뜨고 몸을 가누면서 한발 한발 힘겹게 움직여 네발로 기다시피 산을 올라갔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산 아래 풍경이 그림 같다. 명사산 가운데 있는 도교사원과 파란 하늘을 담고 있는 마르지 않는 샘 월아천. 월아천은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 명사산과 한 쌍의 연인처럼 천년을 두고 같이 공존한다. 샘물은 푸르러 산을 비추고 산은 샘물을 보호하여 바람이 불면 위에서 아래로 부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위로 불면서 아래로 내려온 모래를 부지런히 산 정상으로 올려 보내서 월아천의 새파란 샘을 지키고 있다. 드디어 명사산 꼭대기다.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면서 멀리 모래언덕 넘어 수많은 모래언덕으로 첩첩이 이루어진 모래산이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사막이 펼쳐져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모래바람은 물결을 만들어 낸다. 모래능선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란 또다른 풍경을 연출하면서 감탄을 자아낸다. 내려올 때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사막에서의 썰매라 가히 눈썰매 못지않은 스릴 만점이다. 이 썰매를 타면 1년 동안 액운을 다 소멸한다니 신명이 이 보다 더하랴.

사막의 아름다움과 지독했던 모래바람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하나가 되고 있었다.

투루판으로 가기 위해 야간열차를 탔다. 투루판은 중국에서 제일 덥고, 건조하고, 해발이 낮고, 과일이 달다고 한다. 또 세계에서 당도가 제일 높은 포도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종류만도 200여 가지다. 그래서 인지 지나는 곳곳에 흙벽돌을 엇갈려 통풍이 잘 되게 만든 사각형 포도건조장이 풍경을 이루었다.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은 예전에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국가들로 옛 성터 유적지이다. 두 개의 강이 교차는 교하고성은 진흙을 파고 깎아서 건물을 만들었는데 고창고성보다 보존상태도 좋고 깨끗했으며 황폐한 도시를 본다기 보다는 온통 황토빛으로 물든 자연 속을 걷는 듯했다. 한때 번성했다는 고창국 고창고성은 거의 허물어져 형태를 알 수 없는 흙무더기, 흙벽돌, 흙먼지가 폐허의 도시를 연상케 했다. 우리는 삼장법사가 불교경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도중 이곳 국왕의 간청으로 한달간 불법을 설했다는 곳을 둘러보며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고창국 귀족들의 공동묘지인 아스타나고분에는 미이라가 있었는데 날씨가 워낙 건조해 미이라가 된다고 한다. 또 의미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사람이란 자고로 옥처럼 맑은 마음으로(玉人) 언행을 삼가고(金人) 돌처럼 흔들림 없이 진중하게(石人) 살아야 나중에 죽을 때에 무명인(無名人) 즉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벽화가 인상 깊었다.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화염산 북쪽 기슭 절벽에 만들어진 불교석굴사원이다. 남북조시대부터 원나라때 까지 만들었는데 여기도 막고굴에 마찬가지로 이슬람 침략과 외국 탐험가들 그리고 문화혁명 시대 홍위병들에 의해 벽화나 경전 등이 약탈되거나 많이 훼손됐으나 불타는 듯한 붉은 화염산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투루판은 년 강수량이 16㎜ 밖에 되지 않아 사람이 살거나 농사를 짓기가 매우 어려워 후손을 생각하며 원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천산에서 투루판까지 우물(칸얼정)을 파고 우물과 우물사이를 잇는 지하터널을 파서 투루판까지 지하로 물을 끌어 들이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카레스 박물관은 지하수로 건설의 역사와 현재 지하수로를 보여주고 있다. 우물은 1200여개를 팠는데 현재 1000개를 사용하고 있으며 우물 깊이는 1m부터 약 70m, 우물사이 지하수로는 높이 약 1m 넓이 0.8m정도며 길이는 3km부터 8km로서 총연장 5000km가 된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만리장성,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3대 공사의 하나라고 한다. 그 옛날 전등도 장비도 없는 시대에 얼마나 어렵게 공사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흐르는 지하수로 물을 두 손으로 떠올려 보니 차고 깨끗했다.

투루판 시내는 수로를 따라 집과 포도밭 있고 여자들이 집 앞 수로가에 앉아 빨래를 하고 있다. 지붕 위에는 포도넝쿨(겨울에 연료로 사용)이 쌓여 있고, 모기가 없고 이슬이 내리지 않아 밖에서 자기 때문에 옥상이나 길가에 허름한 담요가 깔린 낡은 침대가 눈에 띈다.

다시 우루무치로 향하는 길에서 수백 개가 넘어 보이는 풍력발전소의 하얀 세발 풍차가 파란 하늘과 함께 장관을 이루었다. 아름답게 펼쳐진 천연 박목지 남산목장에서 승마체험도 하고 하얀 설산의 천산과 아름다운 고산호수 천산천지에서 배도 타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우루무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홍산공원을 거닐고, 위그르족의 전통 민속공연을 관람하고 늦은 밤 긴 여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제주공항. 모두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부처님의 가피와 스님의 노고 그리고 강행군의 일정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주고 서로 도와주면서 한마음이 된 일행들 덕분에 즐겁고 재미있는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버스 안에서 울려 퍼졌던 반야심경이 가슴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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