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연 스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불교이야기<35>반야바라밀 실천하는 자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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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연 스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불교이야기<35>반야바라밀 실천하는 자비의 미소
  • 승인 2008.12.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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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의 마음속에 생생한 불(佛) 보살님이 계십니다.

시련과 고통이 시작되나 보살은 그 시작하는 바 없이 일체 중생의 안락을 기원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가인 헤라클레이토스(B.C. 540∼480)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세계는 신이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로고스(logos, ‘수집되어 정리된 것’ 나아가 이성이라든가 세계의 이법(理法)으로 표현)에 의해 타오르고 그에 의해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었으며,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그는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설 수 없다.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두 번째로 들어설 때의 강물은 원래의 물이 아니라 새로 흘러온 물”이라고 말함으로써, 세계의 만물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운동 상태에 있으며, 모든 사물은 다 변화하므로 고정 불변하는 존재란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것은 존재하는 동시에 비존재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항상 움직이고 부단히 변화하며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물질적인 것이며 물질은 이처럼 생성소멸을 반복하는 것이므로, 무상한 변화의 실체를 놓고 보면 전체 세계는 영원한 공(空)의 세계입니다.


불법(佛法)은 위없이 깊고 깊은 미묘한 법입니다.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은 고해만리(苦海萬里)의 괴롭고 어두운 강을 건너 맑고 깨끗하며 즐거운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되, 핍박받고 소외당하고 고뇌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중생의 피부 속에 들어가 반야바라밀을 실천합니다. 일체 중생의 괴로움이 곧 보살의 마음이며, 중생이 없고서는 부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은 일상생활 속에 있는 만큼


삶에서 반야 성취하고 바라밀 실천해야”





“보살은 밤하늘에 온기 불어넣는 별빛되어


별 보는 자에게 자비의 미소 드리우게 해”






반야바라밀은 얻을 수도, 펴 보일 수도 없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있습니다. 삶 속에서 반야를 성취하며 바라밀은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피부 속에 흐르는 반야의 원천은 아집(我執)을 소멸하면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의 삼독(三毒)에서 비롯한 죄악의 뿌리를 대신 짊어집니다.


널리 사랑을 베풀고(布施), 계를 수지하고(持戒), 참으며(忍辱), 부지런히 수양을 쌓고(精進), 산란하여 흐트러진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禪定), 슬기를 개발(般若)하는 것입니다.


보살에게는 ‘너와 나’의 대립이 없습니다. ‘너’라는 게 있고 ‘나’라는 게 있다면 그 대립 속에서 모순이 반복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창과 방패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 팔았다. 말인즉 ‘나의 창은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여 어떤 것도 뚫을 수 있다’ 하고 이어 ‘나의 방패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여 어떤 것도 막아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당신의 그 창으로 당신의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에게는 ‘나(방패)’와 ‘너(창)’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와 ‘너’는 둘이 아니라는 불이원론(不二元論)을 따르고 믿습니다. 마치 화창한 봄날 산사의 은은한 풍경소리에 듣는 이의 마음 또한 고요하고 편안하게 조응(調應)하듯이.


보살이 평화로운 자비의 미소와 무한한 행복의 향이 되어 주변법계에 상주한다면, 더 이상 절대자에게 끌려 다니는 예속적 삶이 아닌 청정한 정토 도량을 가꿀 수 있을 것입니다.


보살은 밤하늘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별빛이 되어 별을 보는 자에게 자비의 미소를 드리워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 줍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은 마침내 유한(有限)의 세계와 절대적 무한(無限)의 세계를 자재하게 넘나드는 자비의 어버이가 되십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제존보살마하살.


<경인불교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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