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연 스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불교이야기<37>지금 여기 있는 당신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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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연 스님의 마음을 열어주는 불교이야기<37>지금 여기 있는 당신이 부처
  • 승인 2008.12.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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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불·보살님의 발자취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당신은 불·보살님께서 지나가신 발자취를 보게 됩니다.

육바라밀을 실천하고, 연기설의 이론을 배우며, 팔정도를 닦으면서 십선행(十善行)을 체험합니다.


새로운 것이 발생하는 인연법에 집착하지 않고, 함께 의지하며, 삶에 충만을 경험합니다.


당신을 미워하고 증오했던 마음도, 당신을 사랑하고 애착했던 마음도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처음으로 당신은 깨달은 사람들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일터거나 TV앞이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달은 분들이 말씀하신 뜻을 새겨, 마음 머무는 지금 이 자리가 ‘의상조사 법성게’입니다.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체) 證智所知非餘境(증지소지비여경)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일체진중역여시)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 一念卽是無量劫(일념즉시무량겁)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 生死涅盤相共和(생사열반상공화)-연기하는 법계는 둘이 아닌 한 덩어리 모든 법은 태어나고 사라짐이 없어 본래부터 열반이라.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일체 분별 끊겼나니 깨달아서 알바요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티끌이 시방세계 품고 있고 전체의 티끌을 안도 이와 같아라. 아득한 세월이 한 생각에 있고 찰나의 한 생각이 아득한 세월이라 지금 여기 발심할 때가 깨달을 때이다 생사와 열반은 항상 함께 하도다.’


새로운 차원의 문은 지금 여기에 항상 열려 있습니다.


이러한 문을 일컬어 니르바나(열반: 涅槃), 즉 해탈(解脫)이라 부릅니다.





“분별없이 사랑하는 업 지으면 즐거움 받고


분별하고 미워하는 업 지으면 괴로움 받아”





“우리들이 연기적인 삶 체험하고 실천하면


이 세상 모든 것 ‘나’ 아닌 것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망한 생각들을 모아서 허구적인 자아(自我)가 태어나 죽어간다는 착각 속에 살았기에, 세상 어디에 가나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모두가 무엇을 원하거나 사랑을 바라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여 ‘나’와 ‘당신’과 세계가 나누어진 것입니다. 나누어진 삶은 모양과 업연이 다릅니다.


사랑하는 업을 지으면 즐거움을 받고, 미워하는 업을 지으면 괴로움을 받습니다.


전생의 뜻에 따라 싫든 좋든 현생을 살며 그렇게 다음 생으로 기약 없이 흘러갑니다.


이러한 삶은 망념(妄念)으로서, 태어나고 죽음이 있으며, 끝없는 윤회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연기적 삶을 체험하고 실천한다면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 아닌 것이 없기에 생(生)과 사(死)는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지금 여기에 ‘나’와 ‘당신’, 그리고 세계는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인연의 끈으로 한 몸이 되어 있으니 온 우주가 참된 자아(自我)입니다.


이렇게 보면 태어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생사(生死)없이 인연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불·보살님의 경계입니다.


울고 웃으며 찡그리는 불완전한 삶에서 아름다움으로 완성된 부처는, 지금 여기에 계신 바로 당신입니다.





<경인불교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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