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상효동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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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상효동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
  • /정리=이병철 기자
  • 승인 2009.04.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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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불”


개원을 기념해 ‘금강경 독송 100일 기도 및 10인 고승 초청 법회’를 진행한 제주시 오등동 오등선원(주지 제용 스님)은 회향날인 지난달 18일 마지막 법좌로 서귀포시 상효동 남국선원장 혜국 스님(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을 초청, 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스님은 법문을 통해 “세상의 진리는 마음으로 보아야 존재의 실상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우주 진리를 확연히 깨달은 후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을 차례로 설하시고 대학 과정으로 《금강경》을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중생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관이 생긴 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픔은 무엇입니까.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받는 고통입니까. 제가 느끼는 아픔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강호순․유영철 같은 사람들과 같은 인연이 있어서 한 시대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 그 자체입니다. 아픔은 내 마음의 병을 말합니다. 욕망․집착․시기․질투 등 ‘내 안에 있는 나’를 되짚어 보면 몸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은 아픔 중에 큰 아픔입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인생의 근본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내야 하겠습니까.

《금강경》 경구 가운데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 마땅히 어떻게 머물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합니까)’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러한 경전을 볼 때 경전이 우리 곁에 있다는 자체가 아름답다는 느낌입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고 잘 살까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내가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항복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중생들 눈으로 본 것을 실상으로 알고 믿기에 평생 자기 자신에 속는 줄 모르고 살아가게 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지 못한다면 남과 싸워 이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지금처럼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같은 마음이요, 이후에 경제상황이 100배 좋아지더라도 내 마음을 길들이지 못한다면 행복은 오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항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인간이 최소한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는 흔히 ‘집안에 환자가 없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등의 외적 요소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찰나일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이기고 항복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나’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ꡐ이것은 정말 얼마되지 않는 ꡐ나ꡑ구나ꡑ라고 생각하면 내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양은 살인마에게 적게 비춰주고,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많이 비춰주는 것은 아니라 모두 똑같이 비춰줍니다. 공기와 바람도 같습니다. 이 자연이 우주의 진리라면, 우주의 진리는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평등하다는 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縟多羅三藐三菩提) 즉 비로자나불,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평등 속에 살기 때문에 진리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욕망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들의 생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은 생각을 어떻게 길들이고 있는가. 내 마음의 수를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가를 잘 지켜보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래로서 너희들의 벗으로서 너희들의 생각을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 즉 제법(諸法)의 실상을 ‘십여시(十如是)’로 표현하는데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보는 모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양이 다르면 그 안에 있는 기운도 다릅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벗어나 고통 없는 자리인 ‘내몸의 주인공’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기도”


이같은 모양이 다른 가운데서 평등을 여시(如是)라고 합니다. 펭귄의 다리는 짧고 학이 다리는 긴데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평등입니다. 《금강경》에 여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알맹이가 있습니다.

《금강경》 사구게에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이나 귀로 듣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약속부호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기 감정에서 한 번 벗어나서 눈으로 보는 세계, 귀로 듣는 세계를 믿지 말아보자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저 물건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네, 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다시 불을 끄시고 “뭐로 보이느냐”라고 물으시자 저는 “깜깜한데 어떻게 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성철 스님께서 “부엉이나 올빼미는 깜깜할수록 잘 보는데 너는 부엉이 눈보다 못하단 말이냐”며 질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진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귀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 진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눈으로 본 것이 실상인줄 알고 믿어버립니다. 그래서 평생 자기가 자기한데 속는 줄 모릅니다. 이 때문에 여시(如是)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에게 속는 것을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에게 평생 속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슬퍼지면 슬픈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기쁘면 기쁨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감정에 속는 것이고 마구니에게 속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주인 노릇을 못하는 것이고, 평생 감정의 노예로 사는 것입니다. 그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금강경》입니다.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분침․시침 등이 조화를 이뤄 시계가 되고, 우리 몸 역시 지수화풍(止水火風)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는 영원불멸의 내가 아니라 변해 가는 나이기 때문에 《금강경》 사구게에서 말하는 것처럼 ‘껍데기일 뿐 그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눈사람을 만들어 놓으면 햇빛에 녹아 가는 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내 자신을 다스리는 철학입니다.

그렇다면 자식들이 조금 애를 먹이고 가족 가운데 누가 아프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 저 아이에게 지은 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라며 ‘마음의 대화’를 해 보십시오.

한 방울의 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물은 액체․고체․기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바다로 흘러들어 갔을 때 똑같은 바닷물로 존재하듯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불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문제조차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흙에서 고귀한 연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릅니다. 부처의 향기는 고통을 헤쳐 나갈 때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거쳐야 향기를 발산할 수 있고, 아무런 고통 없이는 향기를 뿜을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 어려움을 이겨내고 얼마만큼의 향기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눈으로 보는 세계에 빠지지 않고 내 몸의 주인공,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나’를 찾아서 스스로 감정이 일어날 때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벗어나 고통 없는 자리인 ‘참 나’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내가 당장 달라질 수 있는 것은 바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입니다.



혜국 스님은

지난 1961년 해인사에서 출가해 일타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0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1994년까지 제방 선원을 돌며 참선 수행에 매진하며 수십 안거를 성만했다. 1994년 서귀포시 상효동에 남국선원을, 1997년에는 부산 홍제사를 개원하며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지난 2004년에는 충주 석종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국선원장․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면서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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