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하 스님이 전하는 ‘낭의 소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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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하 스님이 전하는 ‘낭의 소리’ <7>
  • 제하 스님
  • 승인 2009.04.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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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걷어내고 존재실상 바로 봐야”


무화과 나무 숲 속에서 꽃을 찾아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존재를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보는 수행자는

이 세상 저 세상을 모두 버린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 숫타니파타 사품.

   
 
  제주시 화북2동 팽나무  
 


꽃이다.

꿈처럼 꽃이 피었다.

사방에 흩날리는 꽃잎.

바람되어 꽃은 길 떠난다.

제주섬이 꽃섬이라고 외친다.

꿈결처럼 눈감고 꽃비에 젖는다.

눈뜨면 꽃잎은 없다.

눈앞에 가득 잎이다.

꽃 보다 더 여린 잎새들.

햇살에 유리알처럼 빛나는 새잎.

다시 꿈속이다.

내가 본 것이 꽃인가, 잎인가.

꽃 세상도 잎 세상도 아니다.

꽃이 잎이고 잎이 꽃이다.

꽃은 꽃이고 잎은 잎이다.

실체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마야(maya), 환(幻)이다.

꽃이 없어 무화과가 아니라 무화과가 그대로 꽃이다.

무화과가 꽃이고 꽃이 무화과이다.

무화과는 무화과이고 꽃은 꽃이다.

나는 잎에서 사라진 꽃을 찾는다.

무화과나무 숲 속에서 꽃을 찾다 지친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모두 버린 눈 푸른 납자가 그립다.

꽃에서 잎을 보고 무화과에서 꽃을 보는 눈 밝은 납자가 그립다.

꽃 그늘 아래서 눈감으면 걸망 지고 휘적휘적 산길을 걷던 내가 보인다.

꿈처럼 아득하게 내가 보인다.

눈뜨면 꽃비처럼 쏟아지는 일상.

다시 봄이다.

그리고 꽃이 진다.

꿈같은 꽃이 꿈처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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