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 길상사 전 회주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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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 길상사 전 회주 법정 스님
  • 승인 2009.04.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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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길상사는 지난 19일 봄 정기법회을 봉행했다. 이날 법정 스님은 법문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따라 꽃을 피우는 식물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김현정 기자








“자신과 정법에 의지해 ‘깨달음의 꽃’ 피워야”





   
 
   
 


지금 나무와 풀들은 봄을 맞아 저마다 자신의 꽃을 활짝 펼치고 있습니다. 나무도 처음 잎을 피울 때는 자기 특성과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자기 빛깔을 내뿜습니다. 처음 펼칠 때는 그 나무가 지닌 독특한 빛깔을 펼칩니다. 가지마다 새로 돋아나는 잎들도 그 나무가 지닌 특성을 마음껏 내뿜으면서 찬란한 봄을 이루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이 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대지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봄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침묵의 봄’을 두려워합니다. 요즘처럼 세계가 과소비로 치닫는다면 언젠가는 ‘침묵의 봄’이 올 것입니다. 해마다 우리는 계절을 맞이하지만 자꾸 달라지고 있습니다. 금년만 하더라도 여름 날씨가 봄에 오고 늦은 봄에도 눈이 내립니다. 예상할 수 없는 기상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꽃은 우연히 피지 않습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한송이 꽃이 피기까지 그 배후에 인고의 세월이 받혀주고 있습니다. 모진 추위와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 등 이같은 악조건에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온 나무와 풀들만이 시절인연을 만나서 참고 견디어 온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내고 있는 것입니다.


꽃과 잎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 자신은 이 봄에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꽃이나 잎만 구경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은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일찍이 뿌린 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꽃과 잎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뿌린 적이 있는지


어떤 꽃 피우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준비된 나무와 풀만이 때를 만나 꽃과 잎을 열어 보이게 됩니다. 준비가 없으면 계절을 만나도 변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준비된 자만이 시절인연을 만나 변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매화는 반 만 피었을 때 보기 좋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볼만합니다. 복사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가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에서 봐야 꽃의 자태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매화는 반개했을 때 남은 여백의 운치가 있고, 벚꽃은 남김없이 활짝 피어나야 여한이 없습니다. 복사꽃은 가까이서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 때문에 본질이 가려집니다. 봄날 분홍빛이 지닌 환상적인 분위기가 반감되므로 멀리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배꽃은 가까이서 바라봐야 그 맑음과 뚜렷한 윤곽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꽃이나 사물 뿐 아니라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두고 그리워하는 사이가 좋을 때가 있고, 때로는 마주 앉아 회포를 풀어야 정다워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사이라 할지라도 늘 한데 엉켜있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그립고 아쉬움이 받혀 주어야 그 우정이 시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물을 볼 때 인간사도 동시에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산마다 산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이 계절 온 국토에 산벚꽃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데 산벚꽃을 볼 때마다 나무의 지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의 조화와 신비로움 앞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자리에서 살아가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치도 옮겨갈 수 없는 꽃과 씨앗으로 자기 공간을 넓혀갑니다. 산벚꽃 자신이 꽃과 씨앗으로 펼쳐 놓았기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꽃은 벌들을 불러들여 열매를 맺게 하고, 버찌씨가 달짝지근한 것은 새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조화로움입니다. 새들은 버찌씨를 먹고 소화되지 않은 씨앗을 여기저기 배설하고, 배설된 씨앗에서 움이 터서 벚꽃을 피운 것입니다.





“도량서 익히고 닦은 기도·정진의 힘으로


가정·이웃에 기여하고 있는지 점검 필요”






여기에는 자연의 조화와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식물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이것 또한 봄날의 은혜입니다.


《천수경》〈도량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도량이 맑고 깨끗해서 더러움이 없으면 불법승 삼보와 천룡팔부신장이 도량에 오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줄여 말하면 청정도량에는 도량신이 상주한다는 뜻입니다. 도량신이 그 도량에 사는 사람이나, 도량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낱낱이 보살피고 지킵니다. 신앙심이 지극한 사람들은 일주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도량이 지닌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도량신은 그 도량에 필요한 존재는 사람이건 나무이건 그 도량에 머물도록 받아들이지만 그 도량에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는 거부합니다. 이런 현상은 굳이 반세기 남짓 크고 작은 도량의 은혜를 입고 살아온 제 자신의 체험적 진실입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량신이 도량을 주관하고, 도량신의 의지가 개인의 의지에 작용해 행동하도록 합니다.


승가의 생명력은 청정성에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정성은 진실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승가의 생명력은 청정과 진실에 있습니다.


길상사를 맑고 향기로운 근본도량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절이 맑고 향기로운 도량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 절에 사는 스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이 절에 의지해 드나드는 불자들의 삶이 저마다 맑고 향기로운가, 맑고 향기롭게 개선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과 진실을 말하고, 향기로움은 그 청정과 진실의 메아리인 사회적 영향력을 말합니다. 이 도량에서 익히고 닦은 기도와 정진의 힘으로 가정과 이웃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절이 생기기 이전에 수행이 있었습니다. 절이나 교회에는 의지를 가지고 다녀야지 습관적으로 다니지 마십시오. 왜 오늘 절에 가는가 등 스스로에게 물어서 의지를 가지고 절에 가야 자신의 삶이 개선됩니다. 일상적인 타성에 젖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도량에 사는 사람과 도량에 의지해서 드나드는 여러분의 삶이 맑고 향기롭게 개선돼야 비로소 도량다운 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은 한 때 머물렀다가 떠나는 나그네들입니다.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원래 자기 집이 없고, 절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은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들은 자신뿐 아니라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면서 그 도량을 가꾸면서 보살핍니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신앙심이 지극한 불자들이 곧 그 도량의 수호신입니다. 이런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재가불자들이 승가에 귀의한 것은 그 청정성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청정성이 승가의 생명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자기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법은 진리를 말합니다.


여기에 불교의 참면목이 있습니다. 냉혹한 것 같지만 그 밖의 다른 것은 허상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기댈 것은 본질적인 자아인 자기 자신과 진리 밖에 없습니다.


이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각자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꿔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길 바랍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했다. 1955년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56년 7월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9년 3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또한 스님은 1959년 4월 15일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하고 이후 지리산 쌍계사·가야산 해인사·조계사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을 등을 역임한 스님은 1994년 순수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의해 이끌었는데 1997년 12월 길상사를 창건, 회주로 주석하다 2003년 12월 스스로 물러나 현재는 길상사의 어른으로 주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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