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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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
  • /이병철 기자
  • 승인 2009.05.1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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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기 품은 도량…무명 어둠 절로 걷히네


조선중기까지 존재했던 두타사 터에 1982년 창건


제주도문호재 대적광전 등 불교문화재 다수 보유


   
 
   
 
‘선방(禪房)’ 이란 단어 자체만으로도 청정 기백이 절로 느껴진다. 선방은 사찰 안에 있지만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금단(禁斷)의 땅’이라는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탁악세의 때 묻지 않은 곳이어 선지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처럼 청정함으로 다가온다.

이같이 청정한 깨침의 수행도량을 꿈꾸는 서귀포시 상효동 선덕사(주지 학균 스님)를 지난 8일 찾았다. 선덕사는 전통가람 형태를 지닌 도내에서 몇 안 되는 사찰이다.

선덕사의 가람형태는 영험한 한라산을 감싸 앉은 형국으로 타지방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닌다. 대부분의 전통가람 형태는 일주문과 대웅전이 일직선으로 마주보지만 선덕사의 경우 일주문이 한라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선덕사는 조선중기까지 존재했던 두타사 터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두타사는 한라산 등반로에 위치해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일주문이 한라산 정상을 향하고 있는 것은 두타사의 법맥과 함께 한라산 정상을 향하듯 깨달음의 길로 중생들을 인도하기 위함일 것이다.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면 각각 4.5m와 5.1m 높이의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이는 언제나 세간의 소리를 관찰하는 관세음보살님이 온갖 고난을 겪는 중생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을 보살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金剛門)을 마주하게 되는데 부리부리한 눈을 뜬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세속의 번뇌(악귀)를 제거하니 오온이 청정한 듯하다. 금강문 옆으로는 선덕사 창건 당시 공덕을 세운 조사와 신도들의 부도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앞에는 타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육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백천가지 모습으로 나투는데 대표 시현인 육지장을 형상화 해 놓았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높이 12m의 약사여래불이 중생들을 보살피고, 사천왕문에 들어서자 2층의 대적광전이 제 형상을 드러낸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사천왕문을 통과해야 부처님을 참배할 수 있는데 이는 중생들이 불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작은 욕망마저도 내려놓으라는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대자대비하신 대적광전의 불보살들이 마주하고 주변으로는 전각들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그네를 감싼다.

   
 
   
 
대적광전 앞에는 9층석탑이,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5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9층석탑에는 3․4․6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고암 대종사가 전한 부처님 전골 진신사리 3과가, 그리고 5층석탑에도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모셔져 있다.

대적광전 주변으로 범종각․옥칠불전․요사채․범천각이 조성돼 있고, 뒤편에는 칠성각․삼성각, 그리고 최근 선방까지 건립돼 여법한 도량을 장엄하고 있다.

이같은 불사는 지난 1982년 창건 당시 고암 대종사가 손상좌인 학균 스님에게 “후손들에게 남겨줄 만한 불교문화재를 짓는 다는 마음으로 불사를 이어가라”고 당부한데 기인한다. 선덕사는 모든 전각들은 목조로 건축하는 등 전통방식으로 불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선덕사 법당에는 인간문화재 송봉구 스님과 그 제자들이 5년여에 걸쳐 제작한 후불탱화․신중탱화․오백나한 탱화가 봉안돼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명장 112호 성종사 원광식씨가 국내 처음으로 통일신라시대 밀랍주조법으로 재현한 범종과 금고(金鼓)도 봉안하고 있다.

밀랍주조법으로 재현된 범종은 소리의 여운이 길고, 금고는 소리가 작지만 웅장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번뇌로 가득 찬 예토(穢土)에서 벗어나 정토세계로 향하게 만드는 듯하다.

선덕사는 전통가람 양식을 잇고 있어 2005년 서귀포시 향토유형유산 제3호로 지정됐고, 같은 해 대적광전이 제주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등록됐다. 또한 고암 대종사가 전수한 ‘묘법연화경’ 3종도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 보호되는 등 선덕사는 도내 불교문화재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선덕사는 지난 1870년 대 쌍월․응월 두 화상의 수행터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82년 선덕사 개원 당시 고암 대종사가 3년동안 주석하시면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어갈 선불장을 일으켜 세울 것을 학균 스님에게 권했다.

학균 스님은 그 뜻을 잇기 위해 지난 1982년 학전선원을 개산한 후 명맥을 이어오다 1993년에도 비구니선원을 개원했지만 1997년 IMF로 아쉽게도 수좌스님들을 모시는 것을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선덕사 뒤편에는 조선시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두타사 터가 남아있다. 두타사 터는 향토기념물유산 제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올가을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발굴조사 결과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학균 스님은 두타사지 발굴조사가 끝나면 비구스님을 위한 선방을 개산하고, 현재의 선방은 비구니스님을 위한 선방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한라산 영실에 자리한 영원사(오백나한전)도 여름철 선방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스님은 “선(禪)은 모든 번뇌망상을 제거시켜 때가 묻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본래의 마음을 찾는 일”이라며 “선덕사를 무한경쟁으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현대인들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도량으로 일궈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덕사 주지 학균 스님


“불자들의 안식처 같은 청정한 도량 조성 최선”


   
 
   
 
“한라산 영실은 제주불교의 성지입니다. 선덕사 창건 화주 조보현월보살은 1970년 후반 영실휴게소가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타종교에서의 매입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며 “한라산 영실이 오늘날 불교성지로 남아 있게 된 것은 조보현월보살의 공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학균 스님은 “조보현월보살은 불심으로 영실을 지켜냈고 그 후 산행(山行)바람이 불면서 휴게소 영업이 활기를 띠게 됐고, 선덕사 창건의 밑바탕이 됐다”고 영실과 선덕사의 인연을 소개했다.

조보현월보살은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재를 털어 선덕사 불사에 매진하는 등 대작불사의 원천이 되고 있다.

스님은 “현재 선덕사는 선학원 소속으로 등록돼 있다”면서 “향후 선덕사가 제주불교발전이 밑거름이 되고 불자와 후손들에게 청정도량으로서 마음의 안식처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청정한 기운이 넘치는 선방 수좌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이야말로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라며 “고암 큰스님으로부터 전수한 선맥을 잇고, 그 선맥의 청정기운으로 제주도에 항상 평화로움만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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