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 남국선원·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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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 남국선원·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 승인 2009.05.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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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TV ‘무상사’는 불기 255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난달 30일 남국선원장 겸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인 혜국 스님을 초청, 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스님은 ‘한 마음 깨치면 부처’를 주제로 법문을 설했는데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정리=김현정 기자








“자기자신 되돌아보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계시다 이 지구에 오신 까닭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오직 마음 하나 깨닫게 하기 위해 중생들에게 《화엄경》을 설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4구게가 ‘약인욕유지(若人欲有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戒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일 삼세의 일체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입니다.


이 우주의 진리를 알고 싶거나,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알고자 할 때 경전이나 어록에서 하시는 말씀이 “남과 싸워서 백 번 이겨봐야 다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내 마음 안에 있는 감정, 내가 내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면 행복·해탈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마음임을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마음이고, 마음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에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우울했던 일, 남을 미워했던 일, 그리고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전부 내 마음에서 파생된 불순물이었음을 깨달아 이러한 번뇌 망상을 연꽃 향기로 바꿔야 합니다.


태양은 대통령이든,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전혀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비춥니다. 여기서 말하는 태양은 진리입니다. 진리 속에 우리가 숨을 들여 마시고, 진리 속에 살면서도 진리의 고마움을 모르고 마치 차별대우를 당하는 것처럼 불평·불만을 품는 원인은 내 마음 안에 있는 조그만 욕망, 번뇌망상 때문입니다.


태양도, 새소리도, 바람도, 공기도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지혜의 세계)과 중생세간(衆生世間, 인간의 세계), 기세간(器世間, 물질의 세계) 등 삼종세간 전체가 우리를 똑같이 평등대우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평등성중(平等性中) 무피차(無彼此), 대원경상(大圓鏡上) 절친소(絶親疎)-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고, 둥글고 큰 지혜의 자리엔 가깝고 멀고가 끊어진다’는 그러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내 업, 내 감정, 내 속의 번뇌망상이라는 업을 길들이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했는데 이를 황벽 스님은 “모든 부처님과 일체중생은 한 마음일 뿐 거기에 다른 어떤 법도 없다. 이 마음은 본래로부터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으며 푸르거나 누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고 새롭거나 낡음을 따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삼종세간 전체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지만


중생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채 살고 있을 뿐”






마음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어떤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시원찮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들에게 희망이란 없을 것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빨리 깨달을 것이고, 못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늦게 깨달을 것인데 황벽 스님은 우리 마음은 똑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황벽 스님은 “이 마음이란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넘어 그 몸 그대로 일뿐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을 움직였다면 곧 어긋나 버린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며 재볼 수도 없습니다. 이는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뚱이는 모양이 있지만 몸뚱이를 이끌고 다니는 마음은 모양이 없어 허공성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부처임을 확실히 행으로 실천해서 깨달은 사람은 ‘본래청정고’라고 하지만 지식으로만 알고 참구를 해서 화두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이 그 말인데 본래청정고가 어떻게 답이 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답과 답 아닌 것을 벌써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화두참선법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법을 믿고, 믿지 않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내가 부처라는 것을 알고 내 마음의 눈을 뜨면 내가 바로 부처인데 내가 부처인줄 모르고 부처를 새로 만들어 부처가 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사는 것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황벽 스님은 “한 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밖에서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는 것이다.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 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붙잡는다면 겁이 지나고 몸이 다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마음을 쉬고 생각을 잊어버리면 부처는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마음 그대로 부처요, 부처가 곧 중생이다”라고 했습니다.





“삼종세간 전체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지만


중생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채 살고 있을 뿐”






여러분들은 부처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금생에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는 마음 닦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죽음과 삶을 초월하는 부처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입니다. 신라와 고려로 내려오는 불교문화, 정신문화, 마음문명으로 물질을 끌고 가는 즉 정신문명을 먼저 깨워나간다면 현재의 위기는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경제, 즉 자본주의시대는 이제 한계가 왔다고 합니다. 정신문명으로 이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문제에 봉착해 있는데 만일 유럽이 참선법을 받아들이면 엄청날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전개되더라도 마음은 그대로인데 우리들의 욕망이 어려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항상 평안하고, 안심입명(安心立命)이며, 항상 행복한데 우리들이 그것을 포기하고 욕망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의 세계에서 보면 오는 바도 없고, 가는 바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 생각 안에 삼천세계가 다 들어 있는데 여러분들이 화두참선 쪽으로 운전하면 부처의 세계에, 지옥 쪽으로 운전하면 욕망의 세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한 생각 안에 삼천세계가 다 들어 있기에 내가 어느 쪽을 운전하느냐의 차이일 뿐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황벽 스님은 “부처와 중생은 한마음으로 다름없음이 허공과 같아서 그것에는 잡됨과 무너짐도 없고 온누리를 비추는 햇살과도 같다. 해가 떠올라 온 천하가 두루 밝아질 때라도 허공은 한번도 밝은 적이 없으며 해가 져서 어둠이 온 천하를 덮을지라도 허공은 어두웠던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허공 자체는 거울처럼 밝음과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입니다. 허공의 성품은 그대로일 뿐입니다.


한 생각 돌려 오늘 이후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 같은 나를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남이 어떤 모함을 하더라도 내 귀로 내 소중한 그릇에 남의 억울함을 담아두지 않고, 내 옥 같은 눈으로 남의 허물을 보지 않으며, 입으로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하십시오.


억울함 등을 담아두는 것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의 말씀처럼 내 소중한 몸뚱이라는 그릇에 남을 원망하고, 남을 미워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등 불순물을 담아 두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불자가 돼서 자기 마음을 한 번 닦아보지 못한다면 이 또한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참 나’, 자기를 돌아보는 자신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이같은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신 여러분들처럼 불제자가 된 것은 크나 큰 복입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마음 부처를 믿는 것이고, 내 이성, 순수이성이 끊어진 허공을 믿는 것입니다. 허공은 가고 옴이 없고 그대로의 존재일 뿐입니다.








혜국 스님은


지난 1961년 해인사에서 출가해 일타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0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1994년까지 제방 선원을 돌며 참선 수행에 매진하며 수십 안거를 성만했다. 1994년 서귀포시 상효동에 남국선원을, 1997년에는 부산 홍제사를 개원하며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지난 2004년에는 충주 석종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국선원장·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면서 전국선원수좌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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