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천사 회주 혜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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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 회주 혜인 스님
  • /정리=이병철 기자
  • 승인 2009.05.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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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찰불교회(회장 오영기)는 지난 10일 서귀포시 대포동 약천사 대적광전에서 약천사 회주 혜인 스님을 초청, 특별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혜인 스님은 “경찰들은 범법자를 자비심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강설했는데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한 생각 내어 마음 달라지면 운명도 변한다”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말합니다. 경찰불자 여러분들도 국민들에게 헌신하는 일을 선택함으로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부처가 되기 이전 완전한 인격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말도 하고 짜증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범법자를 어떻게 다스렸겠습니까. 부처님 당시 ‘앙굴마라’라는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앙굴마라는 바라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스승의 부인을 능욕했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스승이 앙굴마라를 파멸시키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는데 무려 99명을 살해한 뒤 마지막 100번째로 부모를 죽이려다 부처님에게 교화된 존자입니다.

바라문 스승은 앙굴마라에게 100명을 죽여 그 사람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도를 이루고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다고 거짓된 말을 합니다. 도를 이루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고자 했던 앙굴마라는 스승이 준 칼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에 어머니를 해치려는 순간 부처님이 나타나자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천천히 가는데도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앙굴마라는 부처님을 향해 “거기 멈추지 못해”라고 소리를 질렀고, 이에 부처님은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멈추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앙굴마라는 괴이하다는 생각에 “당신은 가면서도 멈춰있다고 말하고 오히려 나보고 멈추지 않는다니 당신은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못한 뜻을 말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일체중생을 해치려는 마음을 멈추었으나 너는 아직도 살생업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자비심에 머물러 있으나 너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게으름을 멈추지 못했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앙굴마라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후회하며 부처님이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앙굴마라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악명 높았던 앙굴마라를 알아보고 그를 몽둥이로 때리고 꾸짖었습니다. 부처님은 앙굴마라에게 ꡒ너는 아픔을 참아내야 한다. 너의 죄는 영겁동안에 걸쳐 받을 것이다ꡓ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앙굴마라는 사람들이 때리거나 폭언을 해도 칼이나 몽둥이로 맞서지 않고 이제 스스로 항복을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전날 악행을 범하였으나 훗날 다시 그것을 깨달아 참회하고 다시 범하지 않으면 구름을 헤치고 나온 보름달이 온 세상을 비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부처님 제자 가운데 늘 말썽을 피우는 6명의 육군(六郡) 비구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육군 비구에게 사람을 때리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등 하지 말하는 말이 보태져 256 비구계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제자들은 부처님에게 “부처님 열반 후 육군 비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부처님은 “묵빈대치(黙擯對治)하라”고 했습니다. 묵묵히 대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원수는 원수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보복을 통해서는 원수가 없어지지 않고 원한만 남을 뿐입니다.

한 거사가 부처님에게 “부모를 버리고 설산으로 도망친 것이 잘한 거냐”라며 욕을 하자 부처님은 그 거사가 쏟아내는 한 시간 동안 빙그레 웃고만 계셨습니다.

부처님이 하도 대답을 하지 않자 거사는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 따졌고, 이에 부처님은 “어떤 사람이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 대접을 했는데 손님이 그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의 음식입니까. 당신은 한 시간 동안 욕을 퍼부었는데 나는 욕을 안 먹었습니다. 그 욕을 넉넉히 소화하고 괴로운 마음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원수는 또 다른 원수를 낳듯 보복을 통해선 원수 사라지지 않고 오로지 원한만 남게 돼”


“모든 사람의 고통 나의 고통이며, 모든 이의 기쁨 내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참다운 불자”


이처럼 경찰들은 범법자를 대할 때 자비심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범법자라고 하지만 부모와 같은 위없는 사람의 마음을 내 주시길 바랍니다.

‘너는 죄를 지었으니 그에 합당한 죄를 받아야 된다’는 강압적인 자세보다 어떻게 하면 이 범죄자를 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지, 내 친동생처럼, 내 부모처럼 위없는 마음을 낼 수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경찰관이 되길 바랍니다. 앙굴마라처럼 한때의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 다시 죄를 범하지 않고 새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비심이 밑바탕에 정립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찰의 정신이자, 경찰들이 지녀야할 마음가짐입니다. 범법자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을 갖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스스로 할 수 없을 때는 부처님의 힘을 빌리십시오.

40여년 전 일이었습니다. 김모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이 매를 드니까 억울하다면서 담임선생의 눈을 실명하게 만들어 소년원에 가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오만가지 죄를 짓게 되는데 결국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변심한 줄 알고 생명까지 죽이게 됩니다.

때마침 신심이 두터운 경찰관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경찰관은 자비심을 가지고 그를 대했습니다. 경찰관은 김씨에게 “당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도 마음 한번 잘못 쓰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은 운전자와 같고 몸은 자동차와 같습니다. 우리가 운전을 잘하면 자동차는 사고 없이 잘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바로 잡아주면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올곧게 될 수 있습니다.

경찰관은 “몸의 흉터는 작은 병이고, 마음의 흉터는 큰 병”이라며 김씨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관은 그 다음에 《부모은중경》을 갖다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부모은중경》의 “아버지 높은 은혜 하늘에 닿으며, 어머니 넓은 공덕 땅에 닿을 건가. 아버지 품어주고 어머니 젖 주시어 이내 몸 하늘땅아래 태어났네…”라는 내용을 읽으며 김씨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김씨는 경찰관이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겠다며 관세음보살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동안의 죄를 참회하는 기도를 매일같이 부처님 전에 올리며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한 생각이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한 생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종교요. 마음을 보는 종교요. 마음을 아는 종교요. 마음을 깨닫는 종교요. 마음을 잘 사용하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달라지면 모습이 달라지고 관상이 바뀌면 내 운명이 달라집니다.”

늘 시간이 되면 이 게송을 독송하면서 나의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분명 관상이 달라지면서 하루 일과가 즐거워 질 것입니다.

김씨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복해 한 생각을 고쳐먹음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나 같은 놈은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며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밥을 먹을 수 없다며 죄를 참회했습니다.

김씨는 출감 후 대학을 졸업하고 전국 교도소를 다니면서 재소자들을 교화하기 시작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희망과 꿈을 갖고 살고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한 생각 바꿀 것을 강조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들이 새 생명을 살 수 있도록 경찰관 여러분들이 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 밑바탕에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이 자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며, 모든 이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경찰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저 피안의 동산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진정한 불자입니다.



혜인 스님은

지난 1943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서 출생했다. 스님은 1956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62년 가야산 해인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후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고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스님은 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108만배 기도를 성취했다. 1996년 서귀포시 대포동에 약천사를 창건했다.

현재 조계종 계단위원과 약천사․충북 단양 광덕사 회주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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