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큰스님 사자후를 하소서 - 운조당(雲照堂) 홍법(弘法) 스님 (1930~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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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큰스님 사자후를 하소서 - 운조당(雲照堂) 홍법(弘法) 스님 (1930~1978)
  • 제주불교
  • 승인 2009.05.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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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인 자비 실천해야 참 불자”




   
 
   
 




普於十方無等尊(보어시방무등존) 未曾一起輕慢(미증일기경만) 隨其所修功德業(수기소수공덕업) 亦復恭敬生尊重(역부공경생존중)-시방에 존귀한 일체의 존재에 대해 한번도 경건한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항시 어느 때나 공덕업을 따라 또한 공경하며 일체중생을 존중함이로다.





부처님께서는 일체를 평등한 마음으로 보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심지어 나무나 풀 한 포기도 사람을 대하듯 했습니다.


부처님이 되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모든 존재에 경만(輕慢)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없애야 함은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제일 필요한 조건이 아닌가 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때 갖게 되는 생각을 해보면 남이 나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때 받아야 되는 수치감이나 모멸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건 비단 어떤 몸짓으로의 업신여김보다는 말로 하거나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10가지 악업(惡業)을 말씀하심에도 입으로 짓는 것, 즉 남에게 상처를 주는 구업(口業)을 가장 경계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몸으로 짓거나 뜻으로 짓는 것보다도 조그만 입으로 짓는 게 가장 크다고 하십니다. 어른들께서 항상 입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所修一切諸功德(소수일체제공덕) 不爲自己及他人(불위자기급타인) 恒以最上信解心(항이최상신해심) 利益衆生故回向(이익중생고회향)-닦는 바의 모든 공덕은 자기를 위한 게 아니고 남을 위한 것이라, 항상 최고로 믿어 아는 마음으로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회향함이로다.





부처님의 일체의 행동하심이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부처님의 행동을 따라해야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바로 믿고 알고 난 후에 행동을 해야만 중생의 이익을 위해 회향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아집과 오만한 판단으로 부처님 말씀을 계량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은 중생의 얕은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우선 바른 앎을 전제로 합니다. 올바로 아는 지식이 없이는 바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바른 앎 전제로 하며, 올바로 아는


지식 없이는 올바른 행동 기대할 수 없어”






부처님의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를 네 단계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깊은 신심 즉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바른 이해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남에게 얘기해주어 남으로 하여금 잘못된 행동을 하게 하는 것만큼 큰 죄를 짓는 건 없습니다.


셋째, 그와 같은 믿음과 지식을 행동으로 옮겨 수행해야 합니다. 알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지식에 불과합니다.


넷째, 부처님께서는 지식을 기초로 한 지혜로운 행동을 권합니다. 그런 수행이 되어야만 비로소 증득함, 즉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未嘗暫起高慢心(미상잠기고만심) 亦復不生下劣意(역부불생하열의) 如來所有身等業(여래소유신등업) 彼悉請問勤修習(피실청문근수습)-아무리 자기보다 못한 이가 있다 해도 잠시라도 남을 업신여겨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여래께서 하신 바와 같이 똑같이 남에게 묻고 배워 따라 함에 잠시도 게으르지 않는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이 가졌다고 가난한 이를 무시한다거나 배운 바가 조금 있다 하여 못 배운 이를 낮추어 본다든지… 등등의 마음을 지녀서는 안됩니다. 더욱이 부처님의 법을 믿고 의지하여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은 절대로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잠시라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내서도 안됩니다.


그것이 설령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육도에 윤회함을 믿는 부처님 제자라면 감히 그런 생각을 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 제도 위한 방편으로


깨달음 쓰신 것은 근본진리인 자비의 표현”






윤회하는 중에 잠시 몸을 축생이나 아귀의 길에 맡겨둘 뿐 절대로 인간보다 못하다는 경만심, 즉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잠시라도 게으르지 않음으로써 부처님의 과보를 얻은 바와 같이 우리 중생도 그렇게 함으로 인해 과보로써 좀 더 나은 몸이나 부처님의 과보까지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或時示現處王宮(혹시시현처왕궁) 惑現捨家修學道(혹현사가수학도) 爲慾饒益衆生故(위욕요익중생고) 示其如是自在力(시기여시자재력)-어느 때 왕궁에 계시다가도 출가하여 도를 닦으시니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러한 자재력을 보이시도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도솔천 내원궁에 호명보살로 계시면서 중생의 아픔을 외면치 못하고 애민히 여기시는 마음에 사바로 오셔서 중인도 가비라성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중생의 입장에서는 왕자로 태어나심에 무엇이 아쉬워 출가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기 자신만의 편안함을 버리고 수행을 통해 사바세계에서 겪는 갖가지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왕궁에 계시면서 동서남북으로 나있는 문밖으로 출행을 하심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으며 벗어나지 못해 애타하는 중생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시고 집을 나오십니다.


그리하여 설산으로 들어가셔서 갖은 고행을 몸소 겪으심에 그 고통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끝내 납월 팔일 새벽 별을 보시는 시간에 천하를 감싸고도 남는 진리 중의 진리를 깨우치게 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자신의 깨우치심에 그치지 않으시고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그래서 그 어떤 방법을 갖고 중생을 제도함에도 늘 자비의 사상을 저버리심은 있을 수 없으니 부처님의 근본진리는 자비인 것입니다.


부처님하면 바로 자비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를 몸소 보이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도 합니다.


당신의 깨우치심을 상구보리 즉 위로는 자기완성을, 다음에는 하화중생을, 그 깨달음을 얻는 그것에서 만족치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으로 깨달음을 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표현입니다.


중생에 이익된 것이라면 자기 자신의 신명(身命)을 돌보지 않고 당신의 위신력을 자유자재로 쓰시면서 자비를 실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제자라고 하면 부처님 자비의 1000분의 1 아니 1만분의 1이라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홍법 스님





1930년 2월 9일 경북 영주군 안정면 생현리에서 출생


1948년 10월 15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조계종 전 종정 월하 대선사를 은사로, 방한공 스님을 계사로 득도


1952년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 혜일 대종사로부터 비구계 수지

1957년 8월 17일 통도사 강원에서 대교과 졸업


1957년 10월 26일 통도사 교무국장 취임


1958년 8월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경상남도 종회의원 피선


1967년 11월 27일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선임


1969년 9월 22일 통도사 조계전문강원 강주 취임


1971년 2월 22일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재선, 통도사 제5대 주지 취임


1978년 6월 27일 통도사에서 세수 49세, 법랍 31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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