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 서울 무설정사 조실 혜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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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 서울 무설정사 조실 혜경 스님
  • /정리=이병철 기자
  • 승인 2009.07.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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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병원 불교법당 석가모니불 봉불 점안 및 개원법회가 지난달 21일 봉행됐다. 이날 개원법회에서 초청 법사로 나선 무설정사 조실 혜경 스님은 ‘불교호스피스와 보시’를 주제로 법문을 했다. 스님은 법문을 통해 “너와 내가 다르다는 분별심을 없애나가는 것이 바로 보시”라고 전제한 후 “보시의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동체대비 자비심 모두 행복해지는 지름길”


   
 
   
 
우리는 불교 호스피스를 할 때 흔히 봉사라고 쓰는데 저는 보시(布施)라고 써야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보시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원래 보시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금강경》에서도 삼천대천의 금은보화를 보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속으로 남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보시하면 어떤 눈에 보이는 현상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진심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보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이 어떻게 생활해야 가장 행복한지를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불자들은 복을 비는 종교로 과오를 범하기도 했지만 사실 복이라는 것은 빌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연못에 바위를 떨어뜨린 후 떠오르라고 아무리 빌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보시를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남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반야․지혜라고 합니다. 보시는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알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길을 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손과 발에 상처가 났습니다. 이때 손이 발에게 너 때문에 다쳤다고 말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이 발을 어루만져 줍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즉 동체대비(同體大悲), 너와 내가 한 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떨어뜨려 놓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분별력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어릴 때는 너와 남을 구분하지 않지만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알아볼 때부터 분별은 시작됩니다. 그 분별심(分別心)이 차츰 커지면서 점차 남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나이가 들면서 ‘철 들었다’라는 것이 참으로 불행한 말인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은 분별심을 가장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 꽃이 있습니다. 뿌리는 물과 영양분을 받아들이고, 잎은 태양 광선에 의해 광합성을 할 때 비로소 꽃이 핍니다. 이 가운데 이 한 가지라도 없으면 꽃은 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조건들이 두루 갖춰졌을 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몸은 70%의 물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와 내 몸 속에 존재하는 물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분별심 때문입니다. 이 분별력을 차츰 없애나가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바로 업(業) 때문입니다. 업에는 선업과 악업이 있습니다. 악업은 우리 조상이 저질러온 나쁜 습관을 내가 그대로 받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 안에 DNA라는 유전자의 본체가 우리 역사를 기록합니다. 내 안에 버릇이 형성돼 있는데 우리가 의식할 때는 나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이 보시이고, 이것이 선업을 쌓는 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나에게 좋은 말은 귀 기울이고 그렇지 않으면 듣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악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시는 남을 위해 행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는 죄악이지만 남을 위한 기도는 아상(我相)을 없애 줍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보리심(菩提心)이 생기는 것이고, 만약 나를 위한 기도만 계속하면 나에 대한 집착만 생깁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업 때문이므로 이를 사전예방하기 위해 보시 등 선업 쌓아야”


“재물이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베풀 수 있기에 남 위해 베풀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 배게 돼”


이처럼 나를 위한 기도는 아상을 살찌게 하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한다면 공덕은 내 것이지만 다 같이 행복해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ꡐ너와 내가 하나ꡑ라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좇는 기도가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기도가 돼야 할 것입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약왕보살(藥王菩薩)이 나옵니다. 일체중생들이 이 보살님만 만나면 마음이 기쁜데 약왕보살은 향유를 마시고 온 몸에 불을 붙여 자신의 몸을 오랫동안 태웁니다. 어둠을 헤매는 중생들은 양왕보살의 몸이 타면서 발하는 빛을 보고 정토세계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을 받기 위해 등을 밝히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등불을 켜는 진정한 이유는 이 등불을 보고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데 있습니다.

제가 20여년 전 경상도의 한 사찰에서 큰 법회에 초청 받아 가게 됐는데 그 날 법사님이 조계종정을 역임하신 월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살님들이 스님께 같이 사진 찍자며 스님에게 몰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어느 쪽으로 서면 좋겠습니까. 보살님들이 원하는 대로 제가 포즈를 취해드리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월하 스님은 “스님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생이 있어야 스님이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그 후 내가 있는 목적, 내가 사는 목적은 바로 중생교화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하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병원법당이 개원된 만큼 불자들이 환자와 환자가족들을 위해 ‘봉사한다’가 아닌 ‘보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진정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자비(慈悲)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자비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 베풀다 보면 자비는 자연스레 몸에 배이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남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둘이 만나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을 흉보는데 시간을 허비합니다. 남을 비방하면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지혜와는 자꾸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조사들은 삶을 살면서 자꾸 남을 칭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면상무진공양구(面上無瞋供養具) 구리무진토묘향(口裏無瞋吐妙香) 심리무진시진보(心裏無瞋是眞寶) 무염무착시진여(無染無著是眞如)-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 없는 그 마음이 진귀한 보배이고, 오염 없고 때 묻지 않아 언제나 변함없는 부처님 마음일세.’

문수보살의 게송입니다. 이처럼 가진 것을 베푸는 것은 재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없어도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베풂이 있습니다.

첫째, 밝은 얼굴 둘째, 친절한 말 셋째, 따뜻한 마음 넷째, 호의를 갖고 바라보는 것 다섯째, 친절히 가르쳐 주는 것 여섯째, 양보하는 마음 일곱째, 깨끗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등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윗사람만 좇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는 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혜경 스님은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했고,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승사에 출가한 후 용문사 대경 스님에게 구족계를, 야옹 스님에게 건당해 회옹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법화종으로 이적한 스님은 재단법인 법화종 유지재단 이사, 법화종 총본산 무량사 조실, 재단법인 한국불교법화종 이사장 등의 소임을 맡았었다.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 불교교리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스님은 현재 서울 무설정사, 경기도 양주 화담정사 조실과 서귀포시 지역 불자들의 경전모임인 ‘흰 연꽃들의 모임’ 회주를 맡는 등 불법홍포와 불교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법화경 이야기’·‘법구경 입문’·‘법화삼부경’·‘무량수경’ 등 다수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법화삼부경 강설 10권’을 저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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