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 -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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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 -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 승인 2009.07.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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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산방사(주지 벽공 스님)는 지난 3일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을 초청법사로 모시고 ‘생전예수시왕생칠재’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혜초 스님은 “우리가 어떤 생을 받더라도 제도하지 않으면 모든 업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 몸이 무상한 줄 알고 보리도를 행하기 위해 죽기전에 미리 부지런히 닦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정리=김현정 기자


“부처님 가르침 올곧게 믿고 실천해야 참 불자”

   
 
   
 


재(齋)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맑히고 삼보께 귀의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항상히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몸이 무상한 줄 알고 보리도를 행하려면 죽기 전에 미리 닦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생전예수시왕생칠재입니다.

중생들은 삼계(욕계·색계·무색계) 육도(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를 윤회합니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도 제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시 어떤 생을 받더라도 제도하지 않으면 모든 업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인불과(佛因佛果)-수행을 원인으로 해서 얻는 부처의 경지를 얻는 과보’라고 했습니다. 선인선과(善人善果)요 악인악과(惡人惡果)라는 말씀처럼 선인은 반드시 선과를 받게 되고, 악인은 반드시 악과를 받습니다.

《법화경》〈방편품〉에 ‘삼계무안(三界無安) 유여화택(猶如火宅) 중고충만(衆苦充滿) 심가포외(甚可怖畏)-삼계가 편안함이 없으니 마치 불타는 집과 같아서 많은 고통이 충만하니 심히 가히 두렵구나’라고 했습니다.

삼계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불난 집에 사는 사람처럼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고통이 충만해 두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고통이 많은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이고득락(離苦得樂) 해서 다함께 구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삼계에 생사가 유전되는 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4월 윤달이 들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난 뒤 많은 복을 쌓기 위해 생전예수재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부처님 생전에 49재 대법회를 설판(設辦)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후 인도 마가타국 빔비사라왕이 15세에 왕위에 오르면서 25번에 걸쳐 18년간 예수시왕 49재를 올렸는데 재위 18년간 재앙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18가지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삼생에 걸쳐 부귀창성 만대유전을 성취했다고 하는 것이 생전예수재의 근본 유래입니다.

그 후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양 무제가 예수재와 수륙재를 봉행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또한 당나라 태종 정관 16년 삼장법사 현장이 서역에서 《수생경((壽生經)》을 구해 온 후 중국에서 생전예수시왕 49재가 많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생전예수재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예수재를 모시는 공덕은 동참하는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욕계·색계·무색계 삼계를 벗어나고 고해를 뛰어넘는 것이며, 그 공덕이 구류중생,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성문·연각·보살·불세계까지도 닿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고통의 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 구제하려는
보살의 마음 지니며 실천하려는 원 세워야”


중생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빚을 진다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빚은 돈·말·마음 등 3가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첫째, 돈에 대한 빚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전거래에 의한 것입니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으면 언젠가는 갚아야 됩니다. 자신이 갚지 못하면 자식이 갚아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말에 대한 빚입니다. 인간들이 살면서 약속을 어긴다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언질을 준다든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 등도 큰 빚이 돼 언젠가는 갚아야 됩니다.

셋째, 마음에 대한 빚으로 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다룹니다. 마음에 대한 빚은 남을 속인다든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든지, 정신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것 등인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나중에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사뿐 아니라 현재도 알게 모르게 빚을 지는 일이 많습니다. 때문에 생전예수재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진 빚을 다 갚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생전예수재에 참여하는 분들은 대신심(大信心)으로 원을 발해야 합니다. 부처님도 원이 없는 무원중생(無願衆生)은 제도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생전예수재 동안 대원을 해서 모든 빚을 갚고, 선망부모 모두 왕생되도록 발원하며, 내가 이 세상 죽을 때까지 고통이 사라지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에서는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라. 욕지내생사(欲知來生事)인데는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라.’ 이는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내가 받고 사는 것을 보고,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짓는 것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은 스스로 받게된다는 사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아 나쁜 업 따라다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고통의 세계입니다. 고통의 세계를 살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의 마음을 가지고 중생을 돌보면서 중생과 같이 제도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보시라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보시는 재물만이 아니고 친구 등 상대편 마음을 감동시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움을 주어 그 선행이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 주는 것도 보시입니다.

‘가사백천급(袈裟百千給) 소작업불멸(所作業不滅) 인연해후시(因緣邂逅時) 과보환자수(果報還自受)-가사를 백천급 짓는다 하더라도 짓는 바 업력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을 모아서 받을 때에 과보를 도리어 받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선업을 지으면 선과를 받고, 악업을 지으면 악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하는데 지은 업은 그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그 업을 만나는 인연이 있습니다. 과보(果報)라고 하는 것은 업을 지으면 언젠가는 돌려받는 것입니다. 많은 중생들한테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은 모두 어수룩하다’고 했습니다. 어수룩하기 때문에 과욕(過慾)을 부린다고 합니다. 욕계라고 하는 사바세계를 살아가려면 욕심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욕(財欲·色欲·食欲·名譽欲·睡眠欲)으로 인해 여러 가지 죄를 짓게 되고, 이것이 업이 돼 고통의 세계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런 업을 무리하게 짓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중생들은 누구든 자신이 지은 업을 자신이 받게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습니다. 업은 남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인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중생입니다. 때문에 소욕(小慾)의 마음을 갖고 이에 만족할 줄 알아야 됩니다. 물질적으로 조금 부족한 게 있더라도 마음이 만족하면 부자입니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慾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라-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 싶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 일체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알면서도 믿지를 않습니다. 신구의 삼업을 청정히 해야 나쁜 업이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지계는 삼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계를 잘 지키는 것보다 더 장엄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수구섭의신막범(守口攝意身莫犯)하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데 입을 잘 지키고 뜻을 잘 거두어서 몸을 함부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악업이 되지 않도록 신구의 삼업의 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이를 실천해야 좋은 업을 지을 수 있습니다.



혜초 스님은

193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해 1945년 진주 청곡사에서 청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46년 해인사 강원에서 사교과를 수료한 스님은 1956년 해인대학(현 경남대학) 종교학과를, 1960년 일본 임제대학(현 화원대학) 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불교조계종(현 태고종) 중앙종회의원, 태고종 총무원 사회부장·부원장·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스님은 8·9세 종정을 역임한 대륜 스님과 13·16세 종정 덕암 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은 독신비구로서 태고종의 위상과 수행가풍 진작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스님은 지난 2004년 6월 태고종 제17세 종정으로 추대된 데 이어 올해 6월 원로회의의 만장일치로 제18세 종정으로 재추대됐다. 현재 스님은 태고총림 선암사 무우전에 주석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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