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불교의 근본교리-12
상태바
불교교리 불교의 근본교리-12
  • /제주불교
  • 승인 2009.11.25 1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2절 세계관


1. 우주의 생성과 전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우주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이 우주의 시간적인 생성과 전개,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의 경과가 어떤지를 알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공간적인 규모와 구성 및 그 유한함과 무한함에 대해서도 알고자 한다.

이러한 관심은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대개의 종교는 이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처럼 우주에 관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주론의 핵심이 되고 있는 최초의 우주 창조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유한․무한에 대해서는 무기(無記)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을 보아도 이런 주제에 대해 부처님의 답을 찾기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먼저 우주의 ‘창조’에 관한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 창조라는 뜻이 무(無)로부터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할 때는 그러하다. 불교는 우주가 무로부터 창조되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도인들이 일반적으로 간직한 사유형태다. 즉 인도인들은 완전한 무로부터 유가 존재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有)는 오직 유에서 나온다’는 것은 논리 법칙 중에서 일종의 동일률(同一律)을 충족하는 것이다. 또한 ‘유는 무에서 나온다’는 것은 논리 법칙 중에서 모순율(矛盾律)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것은 동일률과 모순율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다.

인도인들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이고, 불교는 더욱더 합리적인 종교다. 따라서 논리적 법칙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로부터 유의 창조’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의 유신론인 바라문교에서도 우주는 유(有. sat)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인도적 사유에 바탕을 두는 불교에서도 우주의 무로부터의 창조는 부정되고 있다.

그리고 ‘태초’라는 시간 설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우주론적 시간에 있어서 절대적인 시간의 시작이라는 것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일부의 불교, 예를 들어 밀교에서는 본초(本初)라고 하여 우주의 최초를 의미하는 개념이 있으나 일반적인 불교의 입장은 그러한 절대적인 시초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시초라는 말도 인도인들의 시간관념을 바탕에 두고 있다. 시작 또는 시초를 뜻하는 가장 보편적인 인도말은 ‘아디(adi)’인데 이 말은 ‘잡는다(取)’는 어원적인 뜻이 있다. 시작을 왜 잡는다는 뜻으로 파악했을까. 사실 시간은 아무런 의식이 없다. 덧없이 무한히 흘러갈 뿐이다. 단지 우리 인간이 무한한 우주의 어느 한 점을 잡을 때 그때가 시작일 뿐임을 뜻한다. 이것은 시간이나 그 시간의 시작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불교에서 태초의 우주 창조와 같은 것을 살펴볼 수는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