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가 지역 어른으로 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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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사가 지역 어른으로 남으려면
  • 임창준 <세계일보 편집국 부국장․본사
  • 승인 2010.03.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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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차기 지방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도지사 선거 판세는 물론 정가가 요동치고 있다.

김 지사는 지방선거 때마다 현직 도지사가 출마하는 바람에 공직사회에 이편저편으로 분열되고 도민사회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직접적인 표현을 빌리면 “지금까지 제주도는 현직 도지사의 출마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어왔고 그런 갈등은 제주사회에 큰 부담이 되었으며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공무원들에게도 선거중립을 강조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불출마 선언은 고뇌에 찬 용단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리미엄이 많은 현직 도지사로서 다음 선거를 포기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감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김 지사의 이런 조치에 대해 대다수 도민들은 반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의 선거중립 내지 불개입을 통해 도민통합을 실현하고 화합과 보다 바람직한 제주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김 지사의 용단에 박수 쏟아지는데...



하지만 문제는 그 후의 김 지사의 행적이 이런 숭고한 불출마의 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하자 강택상 제주시장이 “김 지사가 이룬 특별자치도 대업을 승계하겠다”며 도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을 사퇴했다.

김 지사는 강 시장의 퇴임식장에서 특별자치도 제도를 완성시킬 적임자일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고 수 차례나 치켜세웠다. 이날 퇴임식장은 공무원 뿐 아니라 자생단체장, 민간유지 등 1500여명이 참석해 마치 강시장의 도지사 출마 출정식을 연상할 정도였다.

이런 자리에서 김 지사가 강 시장을 누누이 PR한 것에 대해 선거개입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부정적 시각을 표출하는 시민이 많다. 이는 김 지사가 선거중립을 이루고 선거로 인한 도민분열 등 갖가지 병폐를 개선광정(改善匡正)하려고 한다는 불출마의 변을 스스로 뒤엎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지사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경우 도리어 강 시장의 표를 깎아버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김 지사는 강 시장의 사퇴로 제주시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공모를 통해 후임자를 임명하기로 했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인 만큼 시정(市政)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그러나 김 지사의 이런 조치는 ‘무리수’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행 지방자치단체의 개방형직위 및 공모직위 운영규정을 보면 임용기간을 최소 2년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제주도는 이를 피하기 위해 ‘4개월 임기’ 행정시장이란 사항을 사전에 공지키로 했다. 일종의 ‘꼼수’가 아닐 수 없다.



‘김심’(金心) 없어야 불출마 뜻 빛나



공모-임명절차를 감안하면 빨라야 이 달 20일을 전후해 제주시장이 임명된다. 임기가 6월 말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석달짜리 시장’을 앉히는 것이다. 6월 2일 선거로 당선 도지사가 나오고 후임 제주시장도 러닝메이트로 동시에 결정되면 이번 임명될 시한부 시장의 임기는 불과 2개월 남짓하다. 김 지사에 의해 임명된 시장은 6월 한 달간은 그저 회전의자나 돌리게 됐다.

게다가 새 시장이 업무현황을 파악하는데도 상당 기간이 필요하다. 고작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2개월로 오히려 행정 혼란만 불러올 공산이 크다. 부시장 직무대리체제로 가면 될 것을 행정력까지 낭비하면서 강행하는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고위급 특정인의 승진과 후속인사로 마지막 인심을 쓰기 위한 포석(布石)’이라는 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제주도가 ‘시정 공백’을 막기 위해 시장을 임명해야한다지만 구차하다. 지난 2005년엔 당시 신철주 북제주군수가 타계하자 임기가 1년여 이상 남았음에도 현한수 부군수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됐지만 행정 공백 등의 부작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지사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용단을 내렸다면 남은 임기동안 상식선에서 행정을 운용해야 한다. 혹시 특정 후보를 밀어 그가 당선될 경우 커튼 뒤 상석에 앉아 후견인 노릇이나 하고, 영향력을 끼칠 생각이라도 있다면, 그의 숭고한 불출마 선언은 빛이 바래진다. ‘김심(金心)’은 선거종료 때까지 없어야 한다.

무릇 떠나는 사람은 뒤가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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