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의 마음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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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의 마음 공양
  • <김익수․제주불교문화대학 22기 야간
  • 승인 2010.06.2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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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 자란 시골 마을 초등학교와 인접해 있는 곳에 자그마한 절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환하게 보이는 마을 동산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시야를 거쳐 마음속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주변의 적막 속에 평온함으로 올라옵니다.

사찰 전각 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스님의 예불소리에 기를 받아서인지, 예불소리를 들을 때마다 답답한 가슴이 시원스럽고 홀가분하게 씻기면서 고단했던 하루를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농사철을 가려가며 정해진 재일(齋日)에는 몸단장하시고 단아한 차림으로 불공드리려 집을 나서곤 합니다. 마음 안팎의 경계가 적적해진다는 믿음으로 그 길을 평생 걸으며 닦고 닦은 마음공양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언제나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머님이 행동하는 모습 하나 하나에서 어머님의 마음을 쉽게 헤아려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아직도 살아 있는 모습처럼 너무나 생생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불기 2554년 부처님오신날. 저는 한라산 자락의 병풍처럼 둘러싸인 울창한 숲의 외호를 받으며 자리 잡은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에 발을 놓았습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양쪽 길섶에 늘어선 분홍빛 진달래 꽃봉오리가 이제 막 피어나려 이슬을 머금은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산사에 들어서는 모든 이들의 발길이 여유롭고 차분하게만 보였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일상생활에서 찌든 마음의 때를 훌훌 털어 버리며 마음먹고 산사를 찾은 사람들, 관음사에 적을 두고 있는 불자들, 성지순례 차 관음사 참배에 나선 불자와 관광객들의 마음은 모두 ‘부처님 같은 삶을 살자’라는 한 가지 서원으로 귀결된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봉축법요식은 1시간 여만에 끝났지만 관음사를 참배하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점심공양도 오후 4시까지 지속됐습니다. 하얀 쌀밥에 미역국, 시루떡, 은절미, 상추 겉절이, 무냉채, 산나물 등…. 산사의 음식으로 마음의 공양을 올리는 곳곳마다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불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흘리는 비지땀이 나눔과 베풂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많은 이들에게 ‘불자적인 삶’에 대한 마음자세를 가다듬게 했습니다.

그들은 무려 다섯 시간 넘게 앉았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면서도 서로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았고, 온 정성을 다해 울력을 소화해 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으로 5000명 이상의 점심공양을 소화해내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깊은 신심 때문이었습니다. 돈독한 신심과 나눔의 정성, 그리고 베풂의 자비가 한데 어우러지진 그 모습은 정말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부처님오신날 관음사를 찾은 불자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도민과 관광객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찬탄하고, ‘본래의 나’를 되돌아보는 마음수행을 통해 부처님 같은 삶을 살 것을 발원했을 것입니다.

이같은 마음수행을 통해 ‘지금의 나’와 ‘본래의 나’와의 대면 등 만남과 만남으로 인연을 맺고, 인연은 관계로 이어지면서 윤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오늘의 수행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렸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 보았던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을 되새기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간절함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마음자리에 가득 채우고, 그리고 자비로움의 옷을 겹겹이 껴입고 산사의 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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