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으로의 초대<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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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51>
  • /김승석
  • 승인 2010.06.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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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빌라 경 (AN5:201)



《경전》

1. 한때 세존께서는 낌빌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무셨다. 그때 낌빌라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낌빌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正法, saddhamma)이 오래 머물지 못합니까?”

“낌빌라여, 여기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는 비구들과 비구니들,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스승(부처님)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승가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공부지음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서로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낌빌라여,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이 오래 머물지 못한다.”

3.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도 정법이 오래 머뭅니까?”

“낌빌라여, 여기 여래가 반열반에 든 뒤에는 비구들과 비구니들,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스승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법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승가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공부지음을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서로서로를 존중하고 순응하며 머문다. 낌빌라여, 이러한 원인과 이러한 조건 때문에 여래가 반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이 오래 머문다.”



《해설》

낌빌라 존자는 인도의 강가 강 언덕에 있는 낌빌라 도시에서 출생하여 출가한 비구로서 숙명통을 증득하자 자신의 전생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 존자께서는 깟사빠 부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 사이의 중간에도 인간으로 태어나 출가수행을 하였는데, 그때에도 깟사빠 부처님의 교법이 쇠퇴하여 사부대중이 불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탄식하였던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본경에서 질문을 드리고 세존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쌍윳따 니까야』「유사(類似)정법 경」(누16:13)에서도 세존께서 마하가섭 존자에게 정법이 오래 머물지 못하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들고 있는데, 처음의 넷은 동일하나, 다섯 번째의 ‘서로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묾’ 대신에 삼매(samādhi)를 들고 있는 것이 다르다.

마하가섭 존자는 부처님이 반열반에 든 뒤에 교단을 이끌었던 분으로 법과 율을 서둘러 결집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정법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여 제1차 결집을 주도하셨다.

주석서에 의하면 정법이라 함은 세존께서 설하신 경(經)·율(律)·론(論)의 삼장을 말한다. 반면에 유사 정법이라 함은 마치 종교가 아니지만 종교를 닮은 것을 유사종교라 하듯이 정법이 아니지만 정법을 닮았다는 뜻으로, 세 번의 합송(결집)에서 세존의 교설로 인정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존의 가르침과 모순되기 때문에 비불설(非佛說)로 분류되는 위경(僞經)과 의경(疑經)이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가짜 경전이라는 뜻으로 ‘부모은중경’과 ‘우란분경’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후자는 그 진위가 의심되는 경전이라는 뜻으로 ‘인왕경’이 그 대표적이 예이다.

한편, 원효 성사의 주석서인 ‘금강삼매경론’의 원전인 「금강삼매경」도 위경으로 의심받고 있음에도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 탁월한 사상성 때문에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지닌다고 후학들은 평가한다.

위경과 의경 논쟁은 중국에서 선종이 등장하면서 사라졌지만, 새로운 부처로서 조사(祖師)의 어록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깨달음에 이른 자에 의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설해지느냐가 불설(佛說) 혹은 비불설(非佛說)의 판별 기준으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주석서에 의하면, “교학이 쇠퇴하면 수행이 쇠퇴하고 수행이 쇠퇴하면 (지혜의) 증득이 쇠퇴한다”는 표현으로 유사정법의 발로를 경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불교에서는 “좋은 법[진리]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에서야”라는 말로 교학의 상대적 가치를 폄하하고 있으나, 이는 사변적 논리일 뿐이다. ‘뗏목의 비유’에서처럼 세존의 교설은 진리[담마]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라는 말씀이고, 그 진리 자체를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불교의 신앙형태를 살펴보면, 대다수가 기복적일뿐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를 믿고 수행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에 뒤떨어졌고 방편으로써도 모자란다고 보아서 일부 대승논사들은 새로운 수행법을 고안하는 등으로 외도(外道) 수행을 조장하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신심을 증장시키려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초기경전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영위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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