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오백 당오백-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효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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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오백 당오백-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효명사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0.06.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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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벗삼아 번뇌 씻겨내고 ‘본래 나’ 찾는다



40여년 전부터 토굴 수행처 역할 ‘톡톡’


지난 2005년 주지 부임 후 도량정비 창건


   
 
  효명사는 한라산 기운이 충만한 기도도량답게 수행터로서의 역할을 하다 5년 전 현송 스님이 주지 부임 후 본격적으로 불법을 펴기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지장.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법당.  
 
세파에 시달리다보면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가 있다. 그로 인한 번뇌를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자연 속에 피어있는 들꽃같이 중생들을 반기는 도량이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효명사(曉明寺)다.

제주시에서 5․16도로를 타고 성판악을 지나 남원읍 수망리로 향하는 삼거리 이전에 위치한 안내판이 효명사를 찾는 나그네를 안내한다.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자 5․16도로가 차안의 세계였다면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효명사 초입은 자연이 살아 숨쉬는 피안의 세계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과 지저귀는 새들을 벗삼아 효명사로 향하는 길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안겨주기에 손색이 없다. 500m 정도의 숲길을 지나 왔을까. 일주문처럼 보이는 하얀 건물이 효명사에 다다랐음을 말해준다.

주지 현송(睍松) 스님은 나그네를 맞을 채비를 했는지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쉼터에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원한 차 한잔과 나무 그늘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이곳이 극락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대변해 준다.

효명사는 두 갈래로 나뉘는 하천을 끼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물줄기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해 돈내코를 지나 쇠소깍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하천으로 경계를 삼다보니 효명사가 위치한 곳은 남원읍에 속한다고 한다.

봄이면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물소리와 새소리에, 가을이면 다람쥐들이 도토리 줍기에 분주하고, 겨울이면 모든 생명이 하얀색으로 치장한다고 한다.

효명사 주변의 뛰어난 자연환경이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서귀포시민들은 물론 국악인, 시인 등 예술인들의 발길도 잇따르고 있다.

스님은 “효명사에 적을 두고 있는 신도들은 많지 않지만 도량이 좋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는 불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효명사를 찾는 대부분의 불자들은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찾고 있는데 불자들에게 번뇌가 멈추지 못하는 까닭은 탐욕심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있다”면서 󰡒기도를 통해 탐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인지 효명사는 불자들이 절에 가는 날로 인식된 초하루 기도가 없다고 한다. 한라산의 기운이 충만한 기도영험 도량답게 효명사는 매월 16일 산신기도를 비롯해 매년 7월 중순에는 ‘지장산신 100일 기도’를 봉행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로 인도하고 있다.

산신각은 도량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예전에 일주문으로 사용했으나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산신각은 통유리로 되어 있는데 그 앞에 서면 한라산의 광활함이 숨을 멎게 할 정도로 벅차다.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 드리고 주장자를 세워 집고 앉아 있는 산신이 한라산 기슭에 앉아있는 형상이다. 왜 이곳에 산신각을 조성한 이유를 쉽게 짐작케 해준다.

   
 
  효명사의 산신각은 앞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한라산의 기운을 품은 듯 불자들에게 영험기도터로 유명하다.  
 
스님은 자신만의 기도처가 있다며 나그네를 안내한다. 넓적한 바위에 한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에는 마치 좌복처럼 평평한 자리가 펼쳐졌고, 계곡사이로 뻗은 나뭇가지들이 외호신장처럼 수행자를 시봉하는 듯하다.

눈앞에는 수량은 적지만 효돈천의 맥처럼 보이는 폭포 물줄기가 선방 수좌의 잠을 쫓는 죽비처럼 매섭게 내려치고 있었다. 절이 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처럼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마음이 자연을 담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40여년 토굴로서 뭇 스님들의 수행처 역할을 했을 만큼 효명사는 기도처로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현송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1년 여 동안 도량을 정비하고 효명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해 불법을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지난 2007년 4월 현재의 대웅전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 주불에 지장보살․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는 한편 일주문을 리모델링해 산신각으로 새롭게 조성한 후 도내 대덕 스님을 모시고 봉불 점안 법회를 봉행했다.

한편 대학시절 사진을 전공한 스님은 현재 선돌사진동우회(cafe.daum.net/sundophoto) 회장을 맡으며 사진을 통한 포교에도 앞장서고 있다.

스님은 “현재 카페에는 100여명의 동우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내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회원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며 “사진을 통해 불교 알리기에도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신만의 탈출구를 마련해 놓는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싶을 때 효명사가 그 탈출구가 되길 기대하며 산문을 나선다.



주지 현송 스님


“삶에 활력 불어넣은 열린 도량으로 조성”


   
 
   
 
“자연 속에서 얻는 평화로운 마음이야말로 불자들의 삶의 광합성 역할을 하게 됩니다.”

효명사 주지 현송 스님은 “자연 깊숙이 자리한 절은 불자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며 “효명사는 세속에서 묻은 때를 청정한 자연으로 말끔히 씻어주는 도량”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효명사는 기도하고 싶을 때, 내 자신을 숙연하게 만들고 싶을 때, 그 모든 시름 잊고 싶을 때 고요히 기도하고 가는 열린 도량”이라며 “저는 불자들이 기도로 풀어내지 못한 사연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풀어줄 뿐이며 효명사는 모든 불자들이 본래 부처였음을 확인시켜주는 도량”이라고 강조했다.

효명사 인근에 자리한 선돌암 주지 철환 스님이 속가의 아버지다. 처음에는 스님의 길을 거부했지만 새가 숲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스님은 자연스럽게 지난 1995년 구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 후 대구 팔공산 구화사에서 수행하다 지난 2004년 대만 불광사에서 1년 동안 수행한 후 효명사를 창건해 불법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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