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 수행법(4)
상태바
티베트불교 수행법(4)
  • /제주불교
  • 승인 2010.06.29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티베트불교 수행법(4)

1. 티베트불교의 역사적 개관-3

(1) 불교의 전래와 밀교-3



3) 밀교와 후전기 불교



한때 중국을 두렵게 했던 티베트왕국이 분열함으로써 티베트는 9세기 말에서 10세기 말까지 정치적인 혼란기를 맞이했다. 따라서 불교를 포함한 종교와 문화운동도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이 시기는 티베트인들이 진정으로 불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기이며, 현교와 밀교의 혼란 속에 여러 가지가 실험되던 시기였다.

티베트불교가 다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티베트가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이루면서 시작됐다. 중앙정부가 무너진 티베트는 씨족을 중심으로 서부와 동부 등지에 정치적인 집단들이 형성됐고, 이들 집단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불교를 지원해 많은 유학생을 인도에 보내 공부하게 했다.

유학생 가운데 린첸상뽀(Rin chen zang po)는 위대한 번역승이면서 동시에 티베트불교가 미래에 발전할 수 있도록 교화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티베트블교 부흥에 기여한 다른 한 승려인 아띠샤는 당시 인도 대사원의 하나인 위끄라마실라(Viklamasila)에 머물 때 티베트 서부지역의 아리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서기 1042년에 도착해 린첸상뽀를 만났다. 그는 유명한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을 저술해 이후 현교와 밀교에 대한 티베트불교 교학의 토대를 이루었다.



(2) 종파의 성립-1



1) 종파불교의 기원-까담파



아띠샤가 저술한 〈보리도등론〉은 당시 혼재해 있던 현교와 밀교의 교학에 대한 도차제를 정리하고, 사회적으로 타락한 양상을 보였던 무상유가부 밀교의 본질에 대한 대승불교적 관점을 조명하여 당시 티베트불교의 교학과 수행에 대한 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 기여했다.

아띠샤는 인도로 귀국하는 길에 재가거사인 돔된빠(1005~1064)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중앙티베트에 거주하여 주석하였다가 병을 얻어 도중에 사망했다.

스승 사망 후 돔된빠는 라뎅승원을 세우고 일파를 건립했는데 이를 까담파라고 한다. 까담파는 이띠샤를 개조로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따라보살과 부동존(不動尊)을 중시하여 까담파의 4보논이라 부르고, 경․율․논의 삼장을 더하여 까담파의 일곱 본존이라고 칭하였다.

돔된빠는 뽀또와와 체가와, 쿵빠와의 3인의 뛰어난 제가가 있었는데 뽀또와는 현교를 중시해 까담파의 6종전(宗典)을 강의하여 이 계통을 슝파(宗典派)라 불렀고, 이에 대해 다른 두 제자는 밀교를 중시했다.



2) 사대(四大)종파

①샤꺄파

샤꺄파는 꾼촉곌뽀에 의해 샤꺄 지방에 절을 세워 수행과 포교에 힘쓴 데서 비롯됐다. 샤꺄파의 교학과 수행의 기초는 아들인 꿍가닝뽀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밀교에 우의를 두어 수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모(母)딴뜨라인 〈헤바즈라만뜨라〉를 수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대의 꿍가곈첸은 현밀겸수(顯密兼修)로 샤꺄파의 교학체계를 세웠으며, 그의 조카인 로되곈첸은 원조(元祖)의 쿠빌라이의 신임을 얻어 1264년 원나라의 영향 하에 있던 티베트를 지배했다.

②까규파

까규파의 시조는 마르빠다. 그는 인도와 네팔을 전전하며 무상유가 딴뜨라의 비의를 전수받았으며, 그의 스승으로는 나란다대학 학장인 나로빠와 마이뜨리빠가 있다. 그의 제자로는 밀라레빠가 유명하다.

까규파의 전통은 밀라레빠의 제자인 의사출신 감뽀빠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다. 그는 처음에 까담파에서 수학앴으나 밀라레빠의 명성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됐다. 까규파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다시 독바까규, 디쿵까규, 까르마까규 등으로 나뉘어져 오늘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까규파의 수행은 그들의 시조들이 했던 것처럼 엄격한 계율을 통한 혹독한 수행이 특징이며, 3년 혹은 6년 동안 무문관(無門關)에 들어가 생사를 건 수행에 힘쓴다. 나로6법과 마하루드라의 수행은 까규파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③닝마파

닝마파는 전전기의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유일한 종파다.

때문에 닝마파는 초기의 무상유가부 밀교의 전승도 전해지고, 중국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은 점도 전해진다. 또한 전전기에 본교와 융합되어 변질된 밀교의 모습도 전해지고 있어 티베트불교의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다.

닝마파의 대표적 수행 체계인 대성취에 이러한 전통들이 반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 닝마파의 또 다른 특징인 매장서(埋葬書)의 존재로서 매장서는 예언이나 비기(秘機)를 담은 위작된 경전을 묻어 후손으로 하여금 발견토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으로 종교문화적 측면에서 티베트불교의 독특한 단면을 볼 수 있다.



④겔룩파

겔푹파는 ‘신까담파’라고 불린다. 이는 아띠샤를 시조로 하는 까담파의 후예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까담파가발전시킨 중관․유식․유가행중관파의 교학연구는 티베트불교를 교학적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오늘날 겔룩파의 교학체계를 확고하게 마련한 것은 쫑가빠다. 그는 1357년 티베트 북서쪽에 위치한 암도 지방에서 태어나 7살 때 계를 받고 많은 스승들에게서 현교와 밀교를 포함한 교학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1392년 문수보살을 본존으로 한 선정수행을 통해 많은 것을 체득했다고 한다.

그가 지은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과 〈비밀도차제론(秘密道次第論)〉은 지금도 겔룩파의 필독서로 각각 현교와 밀교의 수행차제를 일목요연하게 통일 정리한 것이다.

쫑가빠의 제자로 겔샵체와 케둡제가 유명하다. 그들의 저서는 현재 티베트 대장경의 문집부에 전해지고 있다.

한편 겔룩파를 정치적인 집단으로 성장토록 한 것은 달라이라마 3세인 소남갸초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겔룩파는 까르마파와 정치적 갈등관계에 있었는데 그는 겔룩파의 세력을 규합하여 대항했고, 특히 달라이라마 6세는 17세기 중엽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를 완전히 장악하여 이때부터 겔룩파가 티베트불교와 정치세력의 중추가 됐다. 지금의 달라이라마인 텐진갸초는 초대 달라이라마로부터 제14세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