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선재동자’와 스승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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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선재동자’와 스승의 만남
  • 성원 스님 <약천사 주지>
  • 승인 2010.08.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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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난 참으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어른이 되면 숙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욱 하루 빨리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꾸었다.

드디어 난 어른이 되었다.

매일 매일 숙제도 없고 자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갈 수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누군가 내 인생에 멍에 같은 숙제를 던지지는 않지만 스스로 내일의 꿈에 코뚜레 끼인 소와 같이 하루하루 끌려 다니듯 살아가고 있다. 또 스스로 정착하며 엮인 인연의 그물망은 어찌나 촘촘한지 하루는 고사하고 시간단위로 쫓기듯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이제와 다시 어린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어보지만 돌아올 수 없는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붓다를 만나 환희로움과 대 자유의 그리운 향수 때문에 집을 나왔다. 하지만 오늘도 붓다를 향한 끊이지 않는 환희는 매일 매일 나의 삶에 스스로 숙제를 만들어 낸다.

욕심인 듯 알면서도 사서 쌓아둔 부처님에 관한 책들과 챙겨 모은 영상물들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발급 때 늘어선 긴 행렬 마냥 대기하며 매일 나를 보채는 듯하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정말 어린이들은 꿈을 먹고산다는 말이 너무도 실감이 난다. 가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꿈들을 훔쳐보고 싶다.

상처 난 어린 시절의 꿈을 보상받을 수 없을까? 늘 생각해 본다.

얼마 전 빌게이츠의 강연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주제는 단순 명쾌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자신의 꿈은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유아 사망률을 줄이고자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학생들을 잘 가르쳐 그들 모두가 이 세상에서 희망찬 꿈과 희망을 가지고 좌절 없이 살아가도록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했다. 강연을 본 이후로 부자 빌게이츠는 내 머리 속에 위대한 인류로 각인되었다.

어린이들을 만나면 항상 약천사 리틀붇다합창단에 들어와 노래를 배우라고 권한다. 단순히 합창단의 운영을 염두 해서가 결코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부처님과 인연 지어주고, 부처님을 노래하면서 꿈꾸는 삶으로 인도하고 싶은 간절한 생각 때문이다.

어린 시절 좋은 인연으로 인해 그들이 언젠가 영원한 자유인, 대 자유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뿐이다.

장애인 요양시설 약천사 자광원에 입소해 있는 수진이는 24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어린 시절 정상아였는데 감기처럼 가벼운 증상으로 시작된 병균들이 뇌에 침투하여 온 몸이 부자유하고, 언어도 잃어버리고, 음식도 오직 호스를 통해서만 공급이 가능하다. 돌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아프다. 다행히 자광원 젊은 식구들이 너무나 정성껏 보살펴주어 언제나 그들이 존경스럽다. 젊은 시절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그들은 묵묵히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빌게이츠는 인생의 금전적인 행운으로 선행을 하지만 소명감을 가지고 어린 수진이를 돌보는 자광원 식구들과 매주 어린 불자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법회를 이끌어 가는 식구들은 그들에게만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루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당당히 펼쳐주는 내 마음에서 선재동자가 만난 스승들이라는 생각을 늘 해본다.

겨울의 시원한 설경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오늘 이 무더위가 더욱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을 보듬으며 살아가야 할 나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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