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제주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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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제주도 인사
  • /임창준 세계일보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0.09.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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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통한 낙마는 공직 인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공직자를 널리 구하고 등용하는 인사권자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직인사를 보는 국민의 눈높이와 의식수준이 향상되고 날카로워졌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직을 담당하는 공직사회의 도덕성을 다시금 일깨우는 교훈적 사건이라 할 수도 있다.

권력자가, 인사권자가 제 마음대로 공직인사를 주무르는 관행적 인사행태에 대한 국민적 반동이 이번 국무총리 후보자 등에 대한 낙마를 부른 것이다.

최근 제주도가 실시한 인사에 대해 말이 많다. 도지사 후보시절,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주요 요직을 모두 꿰찼다. 제주시․서귀포시 양대 시장, 환경부지사, 정책보좌관, 심지어 정치색깔이 탈색되어야 할 문화예술재단이사장과 차관급인 제주발전연구원장, 그리고 서귀포의료원장 등 주요 직책에 모두 우근민 후보를 도운 사람들이 차지했다.

최근 제주도가 도 감사위에 감사를 의뢰해 감사가 실시된 제주도개발공사장, 그리고 하이테크산업원장 자리에 누구 누구가 이미 내정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또한 우근민 지사 취임 후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도 김태환 지사 때 간부들은 거의 추풍낙엽처럼 일선에서 사라지고 우 지사 취향의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특히 서귀포의료원장에 발탁된 오 모씨는 우 지사가 총애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정년퇴임 6개월을 앞두고 사직, 우 선거캠프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3년 임기의 의료원장에 취임함으로써 2년 6개월을 더 재직하게 됐다.

의료원장 공모방식이 문제였다. 통상적으로 공모 내용에 대해 보도자료를 냄은 물론 신문공고를 내 다수인이 응모토록 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다. 하지만 제주도는 도 자체의 인터넷 공고만으로 간단히 갈음했다. 공모한다는 사실조차 그 흔한 보도자료로 내지 않았는데 오씨 1명만이 응모, 자동적으로 그를 임명했다는 게다.

제주도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충청남도는 서산의료원장을 공모했는데, 공모 광고를 지방일간지는 물론 중앙 일간지에까지 냈다. 제주도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앞과 같은 여러 자리를 놓고 제주도는 공모를 했지만 결국 모두 우 지사 선거캠프 인사들이 낙점됨으로써 내정자를 미리 정해놓고 공모라는 형식만 거쳐 결국 순진한 응모자만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직접 맘에 드는 사람을 인선했어야 했다는 게다.

우 지사는 최근 공무원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대통령도 당선되면 선거 때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뭔가 잘못된 해석이다. 원래 미국에서는 ‘엽관주의(Spoil System)’라고 해서 당선된 대통령이 측근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에서 승리한 팀이 전리품을 나눠 갖는다고 해서 엽관주의(獵官主義) 인사란 얘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로 정무직에 해당되는 자리에 선거참모들을 임명하는 것이다. 정치․행정․외교․통상무역․과학기술․국방 등 국정분야가 넓디넓고 특수전문가가 필요한 중앙무대에서 이런 엽관주의가 적용될 소지가 크지, 좁디좁은 제주도 같은 지역에선 이런 엽관주의를 꼭 그렇게 ‘넓은 폭’으로 적용해야 할는지?

우 지사가 취임 후 처음 실시한 8월초 인사에서 옛날 ‘우파’ 인사들이 요직을 대부분 꿰찼다. 김태환 도지사 때 주요 인사들은 추풍낙엽처럼 도정 전면에서 거의 사라졌다.

이래서 공무원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도지사 후보를 미리 파악해 줄을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잘못하면 4년간 찍혀 승진은커녕 말단 사업소에 배치되기 일쑤다. 잘못 줄 서거나 선거운동 안하면 승진은 끝난다는 생각을 갖는 공무원들이 세월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 문제가 있다. 25년간 도내 행정기관을 출입하며 취재해온 필자는 요즘 이런 문제에 상도(相到)하면 고민이 크다.

지난 8월 퇴직한 김 모 서기관은 떠나면서 도청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렸다. 도청에서 사무관을 단지 만 15년이 되어서야 겨우 가장 늦게 서기관이 됐다고. 󰡒민선시대가 열리면서 (당선될) 도지사 선거운동에 미리 개입해서 사무관이 된지 7~8년만에 서기관으로 승진하는 후배들, 그리고 도지사 주변 ‘실세(實勢)’ 그룹의 감시와 견제를 받으며 마치 독재시대를 민주투사들이 암울했던 시대로 기억하듯이….󰡓 그만둘 생각도 몇 십 번 했단다. 도청을 오래 출입한 필자가 관찰한 그는 육사 중퇴로 과묵하고 자존심도 강한 대신 사교성도 없다. 하지만 업무에는 철저한 공무원이었다.

요즘 우 지사가 선거운동 때 협력했던 여러 사람들의 청탁에 시달린다는 얘기가 도청 주변과 측근으로부터 자주 나온다. 우 지사를 도왔다 해서 한 자리 노리거나 도(道)발주 공사 몇 건 따려는 사람은 진정 우 지사를 돕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목적으로 선거운동 했다면 그것은 반대급부(보상)를 노린 상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 지사를 좋아한다면 당선된 사실로 만족하고 그를 자유롭게 놔두는 게 진정으로 우 지사를 돕는 일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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