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신행 이렇게 해요<이경택·강경림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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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신행 이렇게 해요<이경택·강경림씨 가족>
  • 김현정 기자
  • 승인 2005.01.0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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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공직생활속에 소중히 이어온 ‘佛緣’

법장사 신도회장 소임 맡아 불사 원만회향 일궈

불교대학서 공부도…새벽 독경으로 하루 열어



   
 
  새벽마다 불경을 독경하며 수행정진에 여념없는 이씨 부부.  
 
법장사(주지 혜경스님) 신도 이경택(73·서귀포시 중앙동)·강경림(68) 씨 가족은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세월에 자신을 맡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 가족에게서 여유와 너그러움이 풍겨져 왔다. 이씨가 50여 년 동안 공직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인지 살림살이 역시 수수하고 소박하다.

고향이 대정인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절에 다니곤 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모슬포 대승사를, 대학생 때는 조계종 관음사 중앙포교당 등을 다니며 불연(佛緣)을 이어갔다.

그러다 입대하고 1962년도에 전역하면서 당시 4급 공채였던 농촌지도사 시험에 응시하고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직업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다보니 지금 살고 있는 서귀포시 중앙동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레 법장사를 자주 찾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91년에서 97년까지 법장사 신도회장을 지냈다. “단청불사라든가 주지실, 토굴불사, ‘염불소원성취경’ 법공양 불사 등의 제반 불사에 온 힘과 정신을 쏟아 부었다”는 이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이어 “스님과 신도들이 혼연일체가 돼 심혈을 기울였기에 지금의 위풍당당한 법장사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1991년에 법장사 근처에 오피스텔 공사를 하면서 법장사 구룡포 수절물에 탁한 물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 공사로 인해 물이 감소하고 흙탕물이 유입되자, 그는 절의 청정한 생수를 보호하기 위해 신도들과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오피스텔 공사는 중단됐다고 한다.

그 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재작년에는 법장사에서 공로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부인 강씨는 현재 법장사 여신도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씨는 “법장사 신도회는 초하룻날 정기적으로 예불을 보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신도들은 40여 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남은 1년여의 임기동안 신도들의 단합과 참여 유도에 힘을 기울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강씨는 서귀포불교대학 6기생이기도 하다. 처음엔 혜경스님이 서귀포불교대학 설립에 깊게 관여하면서 신도들과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를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어슴푸레 알았던 불교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 가고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는 강씨.

이씨 가족은 초·행·해·예·전서 등의 서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서예의 대가 소암 현중화(素菴 玄中和)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이 씨는 소암 선생에게서 서예 기초를 배웠고 선생이 손수 써준 서예작품도 여럿이다.

그 중 ‘처교약졸(處巧若拙) 처명약회(處明若晦) 처동약정(處動若靜)’, ‘숙용소(宿龍巢)’라고 적힌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처교약졸(處巧若拙) 처명약회(處明若晦) 처동약정(處動若靜)’ 작품은 이 씨가 청렴하고 중도를 지키며 공직생활을 하라는 마음에서 소암 선생이 써 준 것이라고 했다.

이들 부부는 30여 년 전에 계를 받았다. 이씨는 천왕사에서 혜봉(慧峯), 강씨는 영산법화사에서 보명화(普明華)란 법명을 받았다. 특히 “계를 받기 위해서 7일 동안 단식기도를 했다”는 강씨는 “배고프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며 그 때의 느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이씨 부부는 새벽마다 불경을 독경한다. 남편은 금강경을, 아내는 염불소원성취경을 독경하느라 새벽녘에 동쪽하늘에서 빛나는 샛별 마냥 창문에서 불빛이 떠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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