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보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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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보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 /정리=이병철 기자
  • 승인 2011.03.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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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광령리 우리절(주지 인성 스님)은 대웅전 불사 1000일 기도 및 출가․열반재일 참회발원정진기도 회향을 맞아 지난 19일 보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을 초청, 법회를 마련했다.

이날 법회에서 보각 스님은 “참 된 기도는 잘못을 반성하고 중생을 이익 되기 위해 원력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문을 요약 정리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 발원해야 참 기도


어리석음과 타협하지 않는 원력 세워야


   
 
   
 
기도를 부처님께 부탁한다는 기복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불자들이 있는데 원력과 참회를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란 원력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발원하는 것입니다.《반야경》에 원력 없이 사는 것은 마구니 삶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기쁨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원력 없는 삶입니다. 즉, 자비(慈悲)가 실천 안 되면 무자비(無慈悲)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도도 남의 행복을 위하지 않았다면 무자비 한 것입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자(慈)이고,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비(悲)입니다. 남의 고통을 뽑아 없애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부처님 재세 시 바라문이 묻기를 “죄를 지은 자가 기도하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데 그 말이 맞습니까?”라고 묻자 이에 부처님이 저수지 주위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저수지에 던지시며 “기도해 보라. 기도한다고 해서 물에 가라앉은 돌멩이가 떠오르겠느냐? 열심히 물을 푸는 노력이 있어야 돌멩이를 끄집어 낼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올바른 기도란, 올바른 노력으로 정직한 결과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참회에서 참(懺)이란 ‘임의 지은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착함의 근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출가자가 깨달은 재가불자에게 절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질문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출가한 자는 깨닫지 못한 것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때 열심히 정진해 쉽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잘못을 반성하고 중생을 이익 되기 위해 원력을 갖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 물러나지 않게 하십시오. 어리석음에 타협하지 않게 하십시오”라는 원력입니다. 우리는 내 어리석음과 타협하려 합니다. 기도란 게으름이나 어리석음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복을 지으면 남의 이익과 행복을 지향하는 회향이야 말로 가장 뛰어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 가운데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승만경》과 말리카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말리카는 코사라 국의 왕인 파세나다가 여러 왕비 중 가장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파세나디왕이 말리카 왕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파세나디왕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소?”라고 묻자 말리카 왕비는 “대왕께서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지만 저 또한 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다. 파세나디왕은 “그렇소! 섭섭하지만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당신이 얼마나 진실한지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두 사람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그 일의 전말을 사뢰었는데 부처님은 “어디를 간다 해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대가 그러하듯이 남 또한 그 자신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따라서 모름지기 사람은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스러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권력이나 재력으로 남을 핍박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한 승만경에서 승만부인의 10대 서원은 첫째, 계를 범할 생각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둘째, 어른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셋째, 모든 이에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넷째, 질투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모든 것에 대한 인색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여섯째, 나만을 위해 재산을 모으지 않으며, 무릇 받는 것이 있다면 가난한 곤궁한 사람들을 성숙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일곱째, 자신을 위해서만 사섭법을 행하지 않을 것이며, 애욕에 물들지 않는 마음과 걸림 없는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이겠습니다. 여덟 번째, 고독한사람, 갇혀있는 사람, 질병이 있는 사람 등 고통과 재난을 당한 사람을 편안히 의리로써 이익 되게 하여 온갖 고통을 벗어난 뒤에야 떠나겠습니다. 아홉 번째, 살아있는 짐승을 붙잡아 기르거나 계를 범하는 것을 보면 제 힘이 닿는 데 까지 그들을 타이르고 거두어 나쁜 일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열 번째, 바른 법을 깊이 새겨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인과는 거짓이 없습니다. 중생들은 인과의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볼 때는 안 그런 척 하다가 누가 보면 나쁜 짓하고 한결같아야 하지만 누가 알아보지 않는다는 그 심리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열반하고 난 후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정진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하라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부처님의 법을 등불로 삼을 때 어두운 길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눈이 제 아무리 밝은 사람도 등불이 없으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부처님 법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바세계에 등불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도 그 향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업에 따라 좋고 나쁨이 있을 뿐입니다. 중생들에게는 결정업과 부정업이 있다고 합니다. 부정업은 자기 의지를 통해 바꿀 수 있지만 결정업은 부처도 바꿀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생에 열심히 노력하면 내생에 결정업은 바뀐다고 합니다. 금생에 복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내생에는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 씨앗의 열매를 걷을 수 있습니다.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것은 그동안 설한 계율을 스승으로 삼으면 부처님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 속에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공부해도 성과가 없습니다. 《아함경》에 왕이 수레에서 내려서 수행자에게 절을 합니다. 수행자가 “왕이시여! 수레에서 내려오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자 “저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절하는 것은 천상에 오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을 낮추면 내가 어리석고 무지한 덕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면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돼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제일 뛰어난 지혜는 경험만한 지혜가 없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그 경험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어른에 대한 교만함을 갖지 말고 어른은 미래의 내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승만 부인은 보리를 이룰 때까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삼독의 근본은 욕심입니다. 욕심대로 안되니까 성내고 어리석어 집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기대감 때문에 속상한 것입니다. 가깝다, 덜 친하다의 작용입니다. 남이 침 뱉으면 더럽다고 하지만 그 침은 내 입안에 가득합니다. 즉, 차별심입니다.

청하지 않아도 자청해서 벗이 되어주고,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보살입니다.

또한 인색한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불사는 부처님을 위함도 아니고 향후 부처님 법을 믿고 살 후세를 위함입니다. 절에 가면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되는데 이것이 윗세대의 덕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후손들이 더불어 잘 살게 위해 불사를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보면 부처님께 고개만 숙여도 성불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성불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절을 짓고 불사를 하는 것은 찰나 마음이라도 착한 마음을 내는 것이 성불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진흙으로 집을 지어도 법당을 지으면 불사 중에 가장 뛰어난 일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천하에 혼자만이라도 모든 중생이 부처님 법을 의지해서 원력을 세웁니다. 절을 짓는 이유도 원력의 마음을 갖는 참된 불사입니다.

스님이 열심히 불법을 바르게 법을 전할 수 있는 멋진 도량을 만들고 부처님 나를 아는 자, 보는 자 앞으로 내가 만나는 자 모두 행복하게 기도하십시오. 부처님 도량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불자들이 되십시오.



보각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교에서 25년 동안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복지 발전 및 후학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04년 사회복지법인 자제공덕회 이사장에 취임한 후 교계 사회복지의 지평을 넓히는 등 불교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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