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암도스님<전 조계종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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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암도스님<전 조계종 교육원장>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1.04.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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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불교정토거사림(회장 오상인)은 지난달 26일 창립 18주년 기념해 암도 스님(전 조계종 교육원장) 초청법회를 거사림회관에서 봉행했다.

이날 암도 스님은 “속물의 근성을 빼기란 수행자도 어렵지만 모든 중생들은 탐욕을 버려야 한다”며 “지나친 욕심과 탐욕을 버렸을 때 진정한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정리=이병철 기자



“최초로 꽃을 든 남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불성은 누구나 똑 같이 갖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불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정한 법(法)이나 도(道)는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경전은 단지 우리의 참된 면목을 바르게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부처님이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불교의 진수를 전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 등 3가지로 나눠집니다.

첫째, 다자탑전분반좌입니다. 다자탑은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 북서쪽에 있는데 이 탑은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깨달은 뒤에, 그의 아들딸 60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곳에서 설법하고 있을 때 가섭이 누더기를 입고 뒤늦게 오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얕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 절반을 가섭에게 양보해 거기 함께 앉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카스트제도의 영향으로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파격적으로 제자와 스승과 어떤 형식에 굴레 없이 나란히 앉았습니다.

왜 신분이 엄격하던 시절 부처님과 가섭이 옆에 앉힌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몸소 평등을 보이셨습니다. 평등은 즉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는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부처님의 눈도 옆으로 째졌고, 코는 밑으로 처졌습니다.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산회상거염화입니다. 부처님이 중인도 왕사성(王舍城) 북동쪽 10리 지점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부처님이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가섭만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즉, 염화미소(拈花微笑)입니다. 이 세상에 역사적으로 꽃을 든 남자는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왜 부처님이 꽃을 들고 가섭이 웃는 것도 다 마음과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고, 이 또한 같은 불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불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 됐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천처전심으로 자유․평등 설파


생명있는 모든 존재들 모두 불성 있어


진정한 法과 道 오직 마음으로 전해져


자유란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자를 씁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나로 말미암아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유는 분명히 책임이 뒤따릅니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처럼 2600년 전 자유를 확실히 보여줬고, 생명있는 모든 존재 평등하다고 설파하셨습니다. 개인 생명의 활동은 자유이고, 상호관계는 평등입니다.

세 번째, 사라쌍수곽시쌍부입니다. 석가가 북인도 쿠시나가라성[拘尸羅城] 북서쪽의 사라수(沙羅樹) 여덟그루가 둘씩 마주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涅槃)하자, 그 숲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가섭이 스승의 관 주위를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자,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열반 후 많은 제자들은 “우리는 어디에 의지해야 합니까”라며 웁니다. 그 당시 가섭이 포교 갔다가 늦었는데 오자마자 관이 딱 벌어지더니 두 다리가 나왔다는 내용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처님이 보이신 것은 평상시 생사(生死)에 대한 말씀입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생과 죽음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이 마음 편한 것입니다. 나머지는 마음 편안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온 인류가 마음이 평안하면 평화가 찾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가 되려면 전체가 화합해야 합니다.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그렀습니다. 그것이 연기법(緣起法)입니다. 화합이 되면 연기가 생하고 불화가 되면 연기가 파행으로 갑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가 연기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즉, 화합이 되려면 마음이 합쳐져야 됩니다.

실제로 합심이 되려면 심리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이는 마음이 삐딱하면 안 되고, 마음 작용이 좋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몸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합니다. 심리가 좋으려면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해탈(解脫)해야 합니다.

‘내가 최고다’, ‘나는 다른 놈과 다르다’라는 마음의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즉, 해탈이 돼야 자유가 있습니다. 털끝만큼의 아상(我相)도 버려야 합니다. 실제로 해탈하려면 탈속(脫俗) 해야 합니다. 탈속하려면 속물의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이보다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중생들은 물질에 대한 생각이 복잡합니다. 속물의 근성을 빼기란 수행자도 어렵습니다. 물욕을 버리려면 탐욕을 버려야 하는데, 바로 이 욕심과 탐욕을 버렸을 때 진정한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것입니다.



암도 스님은

스님은 193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955년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서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2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한 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스님은 1980년 백양사 주지, 1990년 중앙승가대 교수, 1997년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스님은 백양사로 돌아와 운문암 선방에서 산철을 나고 청량암에서 정진해 오다 최근 전남 담양 남산리 마하무량원장에 주석하고 있다.

스님은 동국대 졸업 후 전조계종 총무원 감찰원에 근무하던 1977년부터 상임 포교사를 시작으로 30여 년 간 6000여회의 법문을 설하는 등 포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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